진실화해위원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조사개시 결정 임박 기자회견
- 2023년 5월 17일(수) 오전 10시 30분, 진실화해위원회 앞 -
이날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정여름 감독(오른쪽)과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진준엽 배우(왼쪽)
발언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한베평화재단 이사, 법무법인 해마루)
<기자회견문>
하미학살 사건 조사 개시,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의로운 결단을 요구한다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5월 24일 <진실화해위원회>가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하미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하미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실화해위원회>의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지난 2023년 2월 7일, 한국 사회는 사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건의 진실과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은 물론 이웃나라 일본과 전 세계 언론이 주목했을 정도로 전쟁과 학살 문제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 역사적인 판결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사회는 하미학살 사건 조사 개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를 주목했습니다. 사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인정했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 개시조차 회피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지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은 최근의 승소 판결 소식을 듣고 하미 사건에 대한 희망을 봤다고 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 개시를 촉구하는 편지에서 그는 1심 판결 이후 항소한 국방부에게 “역사의 진실 앞에 솔직해야 할 것”이라며 쓴소리를 전했고 “명예를 잃을 것이 두려워 진실규명을 거부한다면 우리 베트남의 수천 명에 달하는 피해자·유가족들에게 계속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금전에 대한 빚이 아니라 목숨에 대한 빚입니다.”라며 <진실화해위원회>가 하미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조속히 추진해주길 요청했습니다.
1심 판결에 국방부가 항소하자 베트남 정부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난 3월 베트남 외교부는 공식 논평을 통해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항소한 점을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은 한국이 역사의 진실을 엄숙하게 인식하고 존중하길 제의한다”고 밝힌 점을 고려할 때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학살 사건 현지 조사에 베트남 정부도 협조할 것으로 보입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건 조사가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외교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던 우려의 목소리가 근거를 잃은 것입니다.
1968년 2월 24일, 135명이 넘는 주민들이 희생된 하미학살 사건을 한국 시민 사회가 주목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미 사건은 한국군이 주민들을 3개 지점으로 집합시킨 후 집단사살을 한 참극이었으며 당시 한국군의 총구 앞에는 대부분 여성, 노인, 어린아이였습니다. 희생자 가운데 10세 이하 어린이가 58명, 여성은 100명이었으며 생후 1~2개월에 불과한 3명의 ‘무명 아기’도 있습니다. 더욱이 학살 피해 다음날 한국군은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하였고 현재 희생자들의 유골들은 신원불명 상태로 집단묘지에 합장되어 있습니다. 학살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한국군이 저지른 행위는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여지마저 강탈한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의 표현)"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학살 피해 다음날 벌어진 참극을 학살 피해보다 더욱 분개해하며 지금까지도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 개시 결정을 미루는 사이 하미학살 유가족 응우옌탄지가 90세(2022년 11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살 피해로 12명의 가족과 친척을 잃은 그는 2018년 시민평화법정에서 하미 사건을 증언한 바 있습니다. 하미학살의 진실을 들으러 자신의 집을 찾았던 한국인들을 늘 따스하게 맞이해주었던 응우옌탄지였지만 살아생전 한국 정부에게 그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현재 하미마을에는 수많은 학살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생존해 있지만 대부분이 고령으로 하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조속한 진상 조사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폭력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었던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진실을 밝혀내는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이어왔습니다. 그러한 발걸음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로 이어져야 함을 한국 시민 사회가 원하고 있고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대가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24일 전원위원회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의로운 결단을 통해 하미학살 사건 조사가 결정되고 베트남 피해자의 오랜 염원이었던 공식조사와 진실규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번 조사 개시 결정에 수많은 한국 시민들의 마음이 연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일동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T/F,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수요평화모임, 아카이브평화기억,
아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한베평화재단
하미 사건 조사 개시의 주요 쟁점을 설명하고 있는 김남주 변호사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T/F, 법무법인 도담)
다낭에서 화상 연결로 발언하고 있는 피해자 응우옌티탄
피해자 고(故) 팜티호아(진실규명 신청인 응우옌럽의 어머니)의 유품 목발 공개
유품을 들고 있는 이정란 활동가(한베평화재단), 팜티호아의 사진을 들고 있는 아침 활동가(한베평화재단)
진실화해위원회에 하미 사건 조사 개시를 촉구하며
피해자 팜티호아 할머니의 유품을 공개하며
권현우 활동가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목발은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팜티호아 할머니의 유품입니다. 팜티호아는 바로 2022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하미학살 유가족 응우옌럽의 어머니입니다.
저와
이정란 활동가는 지난 2월 하미학살 55주기 위령제에 참석했고 응우옌럽 님을 뵈었으며 참가자들과 함께 팜티호아 할머니의 제단에 향불을 바쳤습니다. 학살 피해 당시 마흔살이었던 팜티호아는 한국군의 수류탄에 두 발목을 잃었고 다섯 살배기 딸과 열 살짜리 아들을 잃었습니다. 2013년에 타계한 팜티호아는 1999년부터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당시부터 약 15년간,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만났던 베트남의 피해자였습니다.
“한국군에 대한 원한은 없지만, 한국 친구들이 어머니 팜티호아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응우옌럽 님이 어머니의 유품을 한베평화재단에 기증할 때 해주신 말씀입니다. 그 순간 저는 꼬박 10년 전, 팜티호아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유언이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원한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갈 거야. 그러니 나 없어도 한국 친구들이 찾아오거든 잘 대해줘". 이 말은 임종을 앞둔 팜티호아가 한국 시민들에게 건낸 용서의 말이기도 했습니다.
학살 피해 이후 팜티호아가 몸을 추스르는데만 5개월이 걸렸습니다. 전쟁 시기라 방공호에서 2년을 살았습니다. 그 후에는 호이안에서 3년을 구걸하며 살아야했습니다. 전쟁 중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종전 후 1년 뒤에 큰아들 응우옌럽은 한국군이 주둔했던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지뢰가 터져 파편에 눈을 다치고 맙니다. 이후 팜티호아는 목발을 짚고 나가 남의집 일을 거들어 주며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이 만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살 피해 그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사건 이후 살아남아 생을 이어갔던 시간이 더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보통 피해자들이 겪은 사건에만 집중합니다. 이 목발은 바로 학살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떠나지 않았던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목발은 그러한 고통에 굴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려 했으며, 가해국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증언을 하며, 그날의 진실만은 지켜내려 했던 피해자들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호소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한베평화재단이 팜티호아의 유품을 공개한 이유가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과 이 자리를 지켜보는 많은 분들께서 베트남의 피해자들이 55년의 세월동안 감내해온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단 한번도 인사를 한 적도, 안부를 물은 적도, 당시 사건에 대해 물은 적도 없지만, 피해자들은 ‘원한’은 이제 없으니 진실만은 제발 밝혀달라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찾은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원한의 마음을 정리하고, 용서의 마음까지 품었지만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진실화해위원회>를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진실화해위원회>가 1년 째 조사 개시 결정을 미루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참담할 따릅입니다.
오는 24일에 있을 전원위원회에서 마땅히 위원들이 하미 사건에 대한 조사를 결정해야 합니다. 평화의 마음을 품고 한국 시민들을 24년째 맞이해주고 있는 하미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마음에 한국 사회가 응답해야합니다. ‘진실’과 ‘화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 다운 정의로운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 발언하고 있는 심아정 박사(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시민사회 네트워크 운영모임)
진실화해위원회는 움직여라, 소임을 다하라, 정의에 대한 태만을 멈춰라!
아정(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아카이브평화기억)
지난 2월, 하미마을 피해생존자와 유족분들을 만나 뵙고 진화위에서 “조사 개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도대체 어떤 말로 당사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미위령제에 갔을 때, 1968년, 학살당한 바로 그 해에 태어나 이름도 채 지어지기 전에 죽은 아기들의 존재가 위령비에 줄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겁니다. 또 하나 눈에 띄었던 것은 위령비 양 옆쪽으로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흙으로 덮인 ‘집단무덤’이었습니다. 한국군은 학살 이튿날 불도저로 시신을 훼손하여 망자들의 마지막 가는 길의 존엄까지 유린하였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살아남은 이들에게서 적절한 의례를 치르는 애도의 여지마저 앗아가는 극대화된 국가폭력이자 반인도적 전쟁범죄입니다.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이들이 마을로 돌아와 뒤엉킨 시신들을 마주하고 느꼈을 충격과 슬픔은제겐 상상조차 가 닿기 힘든 상실의 영역입니다. ‘집단무덤’ 앞에서 망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고유한 삶과 죽음을 호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뭉뚱그려진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합니다. 하미마을에서 죽음의 더미를 마주했을 때, 살아있었을 적 그들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고 삶을 지우고 “학살은 없었다”며 죽음마저 없었던 일로 만든 책임을 한국군과 정부당국에 물으려고 합니다.
진정 접수 후 1년이 지났습니다. 하미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55년이 지났습니다. 자그마치 55년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실을 규명하라는 요구도,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외침도, 국가적 층위의 사과나 배상을 주장하는 것도 아닌, 겨우, 기껏해야, “조사를 개시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고작 조사를 시작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 하는 지금의 이 상황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고, 무엇보다 부끄럽습니다.
진화위가 조사를 개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외교나 국방을 들먹이며, 베트남전쟁 참전국이자 패전국으로서 마주해야 할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군과 정부 당국이 일관되게 부정하며 ‘정의’에 대해 줄곧 태만함으로 버티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김광동 위원장의 제안으로 지난 10일 진화위 2소위에 상정된 하미사건 진실규명 신청 건은 4명 중 2명이 반대해 조사 개시 의결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사 개시에 반대한 진화위 위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에게 ‘과거사’는 국경 안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한정해서 규정되는 것입니까? 외교/국방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니 소위 말고 전원위에서 결정하자, 민주화운동 과정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진화위 취지에 맞지 않다, 판도라의 상자이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행기정의’ 운운하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에 대해 조사하면서도,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에 대해서는 왜, 무엇 때문에 조사 개시조차 하지 않습니까? 국경 밖에서 비국민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을 들추는 것은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은폐하고 묻어둬야 합니까? 규명해야 할 진실을 도대체 언제까지 유예하며 버틸 작정입니까? 조사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진화위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유지되어야 합니까?
5월 24일에 열리는 전원위에서는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7명이 모두 참여하여 조사 개시에 대해 표결을 한다고 합니다. 진화위는 여야가 각각 추천한 위원수가 3:3이니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이 키를 쥐고 있다며, 이러한 해석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언급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십시오. 표결이 여야로 나뉘어 사안이 계류되는 것이 자랑입니까? 이러한 작태는 사건의 진상규명 그 자체보다는 각 당의 정치적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어디서, 감히, 억울한 죽음들을 정치화하고 앉았습니까?
진정을 접수하고도 긴 ‘침묵’을 이어온 진화위에 보낸 서신에서 진정 신청인 응우엔 티 탄은 ‘조사할 용기’를 내 달라고 말합니다. 이제 조사 개시는 ‘용기’까지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진화위는 움직여야 합니다,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정의에 대한 태만을 지금-당장 멈춰야 합니다!!!
* 사진 김창섭(이코노미21, 소박한자유인) *
진실화해위원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조사개시 결정 임박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