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거예요
[인터뷰]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거예요_인턴 김예현
3월, 온 곳에 피어나는 꽃과 함께 한베평화재단과 피스북스에 인턴이 왔다.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는 고등과정 3학년이 되면 3개월간 학교를 떠나 인턴십을 한다. 대체로 자율적인 교육과정 중 몇 안 되는 필수과정이라고 했다. 쑥스러움과 장난스러움이 동시에 담긴 눈빛. 두 손을 ‘짝’ 모으며 자신을 김예현, 열아홉, 자유로운 영혼이라 소개하는 예현을 만났다.

김예현, 열 아홉, 자유로운영혼 ⓒ예현
김인턴의 일과는 어떤가요?
-일단 아침에 개인일지를 씁니다. 학교 숙제 같은 건데 매일 무얼 했고 느꼈는지를 써요. 어느 날은 한 줄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귀찮아요(웃음). 그리고 전날 아카데미 수업이 있었으면 수업기록을 보고 인턴일기를 써요. 그런데 요즘엔 인턴업무보단 인턴과정 마무리 작업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김인턴의 인턴일기>
https://www.facebook.com/peacebookskr/posts/1994884440617214
https://www.facebook.com/peacebookskr/posts/1911648422274150
인턴십 선택이 늦은 편이라고 지난번에 말했어요. 고민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답답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나가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게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거예요. 그래서 현실을 피하고 안 보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바보 같은 생각인데 인턴십을 가면 그 단체에 맞춰서 제 진로를 정해야 할 것 같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한발 한발 떼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다 진로와는 관계 없는 곳으로 인턴십을 간 친구들을 보고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피스북스를 알게 된 게 작년 12월이었는데 그때 연락을 드렸으면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다른 평화단체들도 많은데 왜 이곳을 오기로 결정 했어요?
-평화여행과 대학이 있어서 관심이 갔어요. 분야마다 사업을 하는 단체들은 있지만, 그것들이 피스북스라는 곳에 모여있다는게 신기했고 그 옆에는 한베평화재단이 있잖아요. 제가 베트남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곳으로 오기로 했어요.
베트남에 관심이 많아요?
-네, 다방면으로(웃음) 베트남 사람들도 궁금하고 역사도 다시 배우고 싶고, 베트남과 한국이 비슷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음식도, 음식도 좋아서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살고 싶어요.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고 싶어요. 열여섯 살 때 여행을 갔었는데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러다 열여덟 살 때 다시 여행 갈 기회가 있어서 친구들이랑 갔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그때 공부를 깊게 하고 가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베평화재단과 같이 했던 일은 광주 고경태 기록전 오프닝 행사, 군비축소 기자회견, 월례강좌 정도가 있었네요. 광주에서 베트남 피해자분들과 직접 만났잖아요. 그날 함께했던 느낌이 어땠어요?
-약간 마음이 복잡했어요. 힌베평화재단을 통해서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참전군인들이 집회하는 것도 처음 본 거에요. 조금 무섭기도 하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아직 베트남 전쟁이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학살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그날 응우옌티탄님들을 보게 되어서 좋았어요. 이후에 사무실에도 오셨잖아요. 그렇게 편한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어요. 광주 전시는 정말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복잡함과 동시에 ‘아, 진짜 공부해야겠다.’ 하는.

재단을 방문한 탄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예현 ⓒ길담
지난번 저에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이 어떤지 물었잖아요. 제가 청소년이 지난 지 좀 됐거든요.(웃음)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해보려고요. 청소년이 보기에 주변 친구들이 평화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저와 비슷하게 대안 교육을 받는 친구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라던가 통일, 난민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공부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도 모르고요.
한베평화재단이 하는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어렵긴 한 것 같아요. 사실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게 다 어려운 부분이 있고 간단하게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어려운 느낌이 있어요. 또 한국이 베트남과의 역사에서는 가해자의 입장에 있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어려워서 생각하다 보면 더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면 어려우니까 그만 생각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 돌아가서 무언가를 해보는 건 어때요?
-아,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번에 석미화 사무처장님 인터뷰를 할 때 저의 눈으로, 제 언어로 친구들과 함께 이 문제를 알려라, 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일단 이 일을 알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대자보를 써서 붙이든지...
대자보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닌가요? (웃음)
-그건 그래요. 진짜 재미없는 게 대자보이긴 한데(웃음) 고민이 되네요. 어떻게 알릴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간단하게 책모임 같은 거? 베트남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쉽게 말을 못 드리겠어요. 어렵네요, 돌아가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피스북스와 함께 일하는 예현 ⓒ길담
피스북스와 일을 많이 했잖아요. 피스북스와 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정말 좋은 기회가 피스북스에 있으면서 온 것 같아요. 그중에 평화 대안대학의 미리보기 강좌 ‘평화의 언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어요.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된 수업이었어요. 피스빌딩이라고 일상의 관계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공부하는 수업이에요. 예를 들어 자기의 의사표현을 어떻게 명확하게 하고 어떻게 함께 협력할 수 있는지 또는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중재를 할지.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어떤 것이 잘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건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쉬운 게 없네요. 다 어렵다고 하고(웃음) 저 스스로 많이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나의 표현이 어떠했는지 이전에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근데 이 수업을 또 영어로 했거든요. 나중엔 선생님이 한국어를 더 많이 쓰긴 했지만(웃음) 재미있는데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 수업을 함께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도 있을 거고 기대했던 것과 완전 다른 부분도 있었을 텐데. 예현을 건드린 건 뭐가 있을까요?
-사실 평화여행을 하는 곳이라 여행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인턴과정에선 못하게 되었어요. 그게 처음엔 아쉬웠는데 인턴이 끝나고 7월에 함께 미얀마를 다녀왔어요.
인턴을 하면서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알게 되고 직접 경험하면서 이게 진짜 사실이구나 하고 확 와 닿았던 것은 광주 전시였던 것 같아요. 전시 오프닝에 함께 했던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직접 볼 수 있었고. 그리고 한베평화재단과 피스북스 두 단체를 알게 되고 여러 기회를 주시고 선생님들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해요.
지내면서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어요?
-‘밍글라바(미얀마어로 안녕)’라고 미얀마 평화여행 기획단 분들이 계세요. 정말 미얀마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하시거든요. 미얀마도 여성과 남성의 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빨래도 함께 하는데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힘들지만 아시아의 나라 모두 여성의 인권이 더 나아지고 더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 없이 누군가를 돕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각자 본인의 일들이 있는데 시간을 내어서 모이시거든요.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3개월간 함께 했어요. 평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평화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항상 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제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 했는데 어제부터 하루 종일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딱 정의할 수 없고 정말 인턴 기간 동안 뭘 고민한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저는 ‘편안한 만남’인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고 후회하면 어쩌죠. 나중에 마음에 안 들고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평화는 다 다르고 그래서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젠가 유학을 가지 않고 외국에서 사는 방법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금방 졸업을 할 테고 스무 살이 되잖아요. 저는 열아홉 살 때 스무 살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무서웠거든요. 예현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제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고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냥 제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이 세상에는 저밖에 없는데, 나라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자꾸 특별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에 골똘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걸 하고 재미있게 사는 게 저에게는 제일 특별한 삶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겁니다. 네, 남들 다 가는 그 여행(웃음) 조금 더 알아봐야 하는데 1년 동안 북미나 남미에서 난민이나 평화 이슈에 관해 공부하고 일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살아가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런 걸 해보는 건 어떨까 싶고 일단 대학은 올해 안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년엔 시작하고 싶어요. 저도 스무 살이라는, 성인이라는 말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어차피 뭐 어쩌겠어요. 오는 건데, 나이는 드는 거고(웃음)
질문들이 끝이 났어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한베평화재단과 저? 어...진짜...
학교에 돌아가서 동아리 같은 거 만들어요.
-저 한 학기가 남기는 했는데 벌여놓은 게 너무 많아서(웃음) 뭘 함께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뭐든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뭐든 함께 할 수 있죠.
-어렵네요. 안 어려운 게 없네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관련한 운동을 제가 지지하고 한베평화재단에서 지속하는... 근데 그게 함께 하는 걸까요?
마음이 함께 하는 거죠.(웃음)
-아, 마음이 함께 하네요.(웃음) 더 생각이 나면 말할게요.
좋아요. 함께 할 수 있는 일 일이 있으면 연락할게요.
-네, 좋아요.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인턴십을 마친 예현은 학교로 돌아갔다. 추가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적어 보낸 질문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다른 글이 왔다. ‘잘 모르겠어요. 평화단체를 왔으니 내 안에서 평화가 정리되거나 정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어려워요... 남들이 말하는 것도 맞지만 내 언어로 어떻게 말할지 고민이 돼요. 그래서 평화란 무엇인가 찾기 위해 앞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에요.’ 세상에는 수 만 가지의 평화가 존재한다. 누군가 꺼내놓은 단어를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예현은 삶의 고민들 사이에서 평화를 찾아 가고 있다. 아직은 어려운 것이 많다는 열아홉, 스무 살을 지나 그의 단어로 만들어질 평화가 궁금해졌다.
뒷이야기
맞다, 저 사실 그 영상을 봤어요. 소아암 환자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무대 위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영상이요.
-아, 어떻게 보셨어요? 그게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전교생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인데 제 순서가 와서 뭘 할까 고민을 했어요. 전 항상 머리카락이 길었거든요. 그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었는데 너무 상해서 기부가 안 되더라고요. 그럼 이걸 전교생 앞에서 잘라버리고 기부를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했어요. 그게 15살 때였어요.
어쩌다 머리카락 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함께 살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한 친구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게 생각나서 돈이나 봉사 이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나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처음 기부를 했어요. 2~3년 기른 머리를 기부하고 다시 그 정도 머리를 길었는데 길어진 머리를 보니까 또 기부하고 싶은 거예요.(웃음) 근데 기부할 수 있는 길이 기준이 25cm인데 그만큼 길지 않았거든요. 그때 든 생각이 ‘아, 이게 삭발을 하면 기준이 넘네?’ 그래서 삭발을 했어요. 삭발을 해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작년 7월에 한 번 더 기부했어요. 지금 이만큼 다시 기른 거예요. 이젠 빨리 길어서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또 머리카락이 길면 기부하고 싶을 것 같기도 해요.

ⓒ 예현
글_길담 사진_길담, 예현
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거예요
[인터뷰]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거예요_인턴 김예현
3월, 온 곳에 피어나는 꽃과 함께 한베평화재단과 피스북스에 인턴이 왔다.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는 고등과정 3학년이 되면 3개월간 학교를 떠나 인턴십을 한다. 대체로 자율적인 교육과정 중 몇 안 되는 필수과정이라고 했다. 쑥스러움과 장난스러움이 동시에 담긴 눈빛. 두 손을 ‘짝’ 모으며 자신을 김예현, 열아홉, 자유로운 영혼이라 소개하는 예현을 만났다.
김인턴의 일과는 어떤가요?
-일단 아침에 개인일지를 씁니다. 학교 숙제 같은 건데 매일 무얼 했고 느꼈는지를 써요. 어느 날은 한 줄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페이지를 쓰기도 하고. 귀찮아요(웃음). 그리고 전날 아카데미 수업이 있었으면 수업기록을 보고 인턴일기를 써요. 그런데 요즘엔 인턴업무보단 인턴과정 마무리 작업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김인턴의 인턴일기>
https://www.facebook.com/peacebookskr/posts/1994884440617214
https://www.facebook.com/peacebookskr/posts/1911648422274150
인턴십 선택이 늦은 편이라고 지난번에 말했어요. 고민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답답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나가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게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큰 거예요. 그래서 현실을 피하고 안 보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바보 같은 생각인데 인턴십을 가면 그 단체에 맞춰서 제 진로를 정해야 할 것 같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봐 한발 한발 떼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다 진로와는 관계 없는 곳으로 인턴십을 간 친구들을 보고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피스북스를 알게 된 게 작년 12월이었는데 그때 연락을 드렸으면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다른 평화단체들도 많은데 왜 이곳을 오기로 결정 했어요?
-평화여행과 대학이 있어서 관심이 갔어요. 분야마다 사업을 하는 단체들은 있지만, 그것들이 피스북스라는 곳에 모여있다는게 신기했고 그 옆에는 한베평화재단이 있잖아요. 제가 베트남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곳으로 오기로 했어요.
베트남에 관심이 많아요?
-네, 다방면으로(웃음) 베트남 사람들도 궁금하고 역사도 다시 배우고 싶고, 베트남과 한국이 비슷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음식도, 음식도 좋아서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살고 싶어요.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고 싶어요. 열여섯 살 때 여행을 갔었는데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러다 열여덟 살 때 다시 여행 갈 기회가 있어서 친구들이랑 갔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그때 공부를 깊게 하고 가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베평화재단과 같이 했던 일은 광주 고경태 기록전 오프닝 행사, 군비축소 기자회견, 월례강좌 정도가 있었네요. 광주에서 베트남 피해자분들과 직접 만났잖아요. 그날 함께했던 느낌이 어땠어요?
-약간 마음이 복잡했어요. 힌베평화재단을 통해서 베트남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참전군인들이 집회하는 것도 처음 본 거에요. 조금 무섭기도 하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아직 베트남 전쟁이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학살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돌아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그날 응우옌티탄님들을 보게 되어서 좋았어요. 이후에 사무실에도 오셨잖아요. 그렇게 편한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어요. 광주 전시는 정말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복잡함과 동시에 ‘아, 진짜 공부해야겠다.’ 하는.
지난번 저에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이 어떤지 물었잖아요. 제가 청소년이 지난 지 좀 됐거든요.(웃음)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해보려고요. 청소년이 보기에 주변 친구들이 평화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 저와 비슷하게 대안 교육을 받는 친구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라던가 통일, 난민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공부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도 모르고요.
한베평화재단이 하는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어렵긴 한 것 같아요. 사실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게 다 어려운 부분이 있고 간단하게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어려운 느낌이 있어요. 또 한국이 베트남과의 역사에서는 가해자의 입장에 있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어려워서 생각하다 보면 더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면 어려우니까 그만 생각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 돌아가서 무언가를 해보는 건 어때요?
-아,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번에 석미화 사무처장님 인터뷰를 할 때 저의 눈으로, 제 언어로 친구들과 함께 이 문제를 알려라, 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일단 이 일을 알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대자보를 써서 붙이든지...
대자보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닌가요? (웃음)
-그건 그래요. 진짜 재미없는 게 대자보이긴 한데(웃음) 고민이 되네요. 어떻게 알릴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간단하게 책모임 같은 거? 베트남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쉽게 말을 못 드리겠어요. 어렵네요, 돌아가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피스북스와 일을 많이 했잖아요. 피스북스와 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정말 좋은 기회가 피스북스에 있으면서 온 것 같아요. 그중에 평화 대안대학의 미리보기 강좌 ‘평화의 언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어요.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된 수업이었어요. 피스빌딩이라고 일상의 관계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공부하는 수업이에요. 예를 들어 자기의 의사표현을 어떻게 명확하게 하고 어떻게 함께 협력할 수 있는지 또는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중재를 할지. 소통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어떤 것이 잘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건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쉬운 게 없네요. 다 어렵다고 하고(웃음) 저 스스로 많이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나의 표현이 어떠했는지 이전에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근데 이 수업을 또 영어로 했거든요. 나중엔 선생님이 한국어를 더 많이 쓰긴 했지만(웃음) 재미있는데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 수업을 함께한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도 있을 거고 기대했던 것과 완전 다른 부분도 있었을 텐데. 예현을 건드린 건 뭐가 있을까요?
-사실 평화여행을 하는 곳이라 여행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인턴과정에선 못하게 되었어요. 그게 처음엔 아쉬웠는데 인턴이 끝나고 7월에 함께 미얀마를 다녀왔어요.
인턴을 하면서 제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알게 되고 직접 경험하면서 이게 진짜 사실이구나 하고 확 와 닿았던 것은 광주 전시였던 것 같아요. 전시 오프닝에 함께 했던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직접 볼 수 있었고. 그리고 한베평화재단과 피스북스 두 단체를 알게 되고 여러 기회를 주시고 선생님들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해요.
지내면서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어요?
-‘밍글라바(미얀마어로 안녕)’라고 미얀마 평화여행 기획단 분들이 계세요. 정말 미얀마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하시거든요. 미얀마도 여성과 남성의 일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빨래도 함께 하는데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힘들지만 아시아의 나라 모두 여성의 인권이 더 나아지고 더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 없이 누군가를 돕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각자 본인의 일들이 있는데 시간을 내어서 모이시거든요.
평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3개월간 함께 했어요. 평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평화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항상 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제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 했는데 어제부터 하루 종일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딱 정의할 수 없고 정말 인턴 기간 동안 뭘 고민한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저는 ‘편안한 만남’인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고 후회하면 어쩌죠. 나중에 마음에 안 들고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평화는 다 다르고 그래서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젠가 유학을 가지 않고 외국에서 사는 방법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금방 졸업을 할 테고 스무 살이 되잖아요. 저는 열아홉 살 때 스무 살이라는 말이 싫었어요. 무서웠거든요. 예현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제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고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냥 제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이 세상에는 저밖에 없는데, 나라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자꾸 특별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에 골똘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걸 하고 재미있게 사는 게 저에게는 제일 특별한 삶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스무 살이 되면 여행을 갈 겁니다. 네, 남들 다 가는 그 여행(웃음) 조금 더 알아봐야 하는데 1년 동안 북미나 남미에서 난민이나 평화 이슈에 관해 공부하고 일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살아가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런 걸 해보는 건 어떨까 싶고 일단 대학은 올해 안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년엔 시작하고 싶어요. 저도 스무 살이라는, 성인이라는 말에 부담감과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어차피 뭐 어쩌겠어요. 오는 건데, 나이는 드는 거고(웃음)
질문들이 끝이 났어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한베평화재단과 저? 어...진짜...
학교에 돌아가서 동아리 같은 거 만들어요.
-저 한 학기가 남기는 했는데 벌여놓은 게 너무 많아서(웃음) 뭘 함께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뭐든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뭐든 함께 할 수 있죠.
-어렵네요. 안 어려운 게 없네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관련한 운동을 제가 지지하고 한베평화재단에서 지속하는... 근데 그게 함께 하는 걸까요?
마음이 함께 하는 거죠.(웃음)
-아, 마음이 함께 하네요.(웃음) 더 생각이 나면 말할게요.
좋아요. 함께 할 수 있는 일 일이 있으면 연락할게요.
-네, 좋아요.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인턴십을 마친 예현은 학교로 돌아갔다. 추가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적어 보낸 질문엔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다른 글이 왔다. ‘잘 모르겠어요. 평화단체를 왔으니 내 안에서 평화가 정리되거나 정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어려워요... 남들이 말하는 것도 맞지만 내 언어로 어떻게 말할지 고민이 돼요. 그래서 평화란 무엇인가 찾기 위해 앞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에요.’ 세상에는 수 만 가지의 평화가 존재한다. 누군가 꺼내놓은 단어를 가져와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예현은 삶의 고민들 사이에서 평화를 찾아 가고 있다. 아직은 어려운 것이 많다는 열아홉, 스무 살을 지나 그의 단어로 만들어질 평화가 궁금해졌다.
뒷이야기
맞다, 저 사실 그 영상을 봤어요. 소아암 환자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무대 위에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영상이요.
-아, 어떻게 보셨어요? 그게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전교생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인데 제 순서가 와서 뭘 할까 고민을 했어요. 전 항상 머리카락이 길었거든요. 그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었는데 너무 상해서 기부가 안 되더라고요. 그럼 이걸 전교생 앞에서 잘라버리고 기부를 하겠다고 다짐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했어요. 그게 15살 때였어요.
어쩌다 머리카락 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우며 함께 살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한 친구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게 생각나서 돈이나 봉사 이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나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처음 기부를 했어요. 2~3년 기른 머리를 기부하고 다시 그 정도 머리를 길었는데 길어진 머리를 보니까 또 기부하고 싶은 거예요.(웃음) 근데 기부할 수 있는 길이 기준이 25cm인데 그만큼 길지 않았거든요. 그때 든 생각이 ‘아, 이게 삭발을 하면 기준이 넘네?’ 그래서 삭발을 했어요. 삭발을 해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작년 7월에 한 번 더 기부했어요. 지금 이만큼 다시 기른 거예요. 이젠 빨리 길어서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또 머리카락이 길면 기부하고 싶을 것 같기도 해요.
ⓒ 예현
글_길담 사진_길담, 예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