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평화연대고경태 작가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 일본어판 출간

사진 출처: 출판사 人文書院 트위터


2015년 2월 첫 출간, 2020년 6월 베트남어판 출간, 그리고 2021년 8월 일본어판 출간!!

올해 2월 개정판으로 출간된 고경태 작가(한베평화재단 이사)의《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 : 베트남 퐁니·퐁녓 학살 그리고 세계》가 일본어 번역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인 1명, 일본인 3명, 모두 4명의 번역자가 약 2년의 시간에 걸쳐 꼼꼼한 번역과 감수 작업을 진행하였고, 드디어 출간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일본어판 제목은 [베트남전쟁과 한국, 그리고 1968 (ベトナム戦争と韓国、そして1968)]입니다. 저자의 일본어판 서문을 공유합니다. 



[그날 하루의 베트남전쟁사]


일본 독자들을 만나 기쁩니다.

2015년 2월 <<1968년 2월12일>>초판을 한국에서 출간한 직후 저는 언젠가 이 책의 외국어판을 낼 날을 꿈꿨습니다. 첫 순위로 떠올린 나라는 일본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의 베트남전 보도에 관한 일본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겪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일본인들의 과거 투쟁을 알게 되었고, 역으로 일본을 취재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드디어 일본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일본어판을 출간합니다. 진심으로 기쁩니다.

서울의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와 만난 기자와 연구자 등 여러 일본인을 기억합니다. 1999년과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한겨레21> 기자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보도를 담당하던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온 방문자들은 베트남전 보도의 배경과 여파에 관해 세세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중엔 1968년 학생운동의 리더로 도쿄대 투쟁을 이끈 50대 교수가 있었습니다. 30대의 주간지 프리랜서 기자가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종전 뒤 태어난 앳된 20대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느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은 보편적인 역사 교양임을. 

거기에 비하면, 한국인들의 무관심은 기이할 정도였습니다. 총인원 32만명의 군인을 8년간 베트남에 파병한 나라임을 상기한다면 말입니다. 제 또래의 네다섯 명 중 한 명은 친척의 형님이나 삼촌이 전장에 다녀왔을 만큼 한국은 베트남전과 멀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쟁이었는데도 남의 전쟁 취급을 해왔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전쟁을 나쁘게 말하는 건 금기에 속했습니다. 별다른 토론이나 논쟁 없이 서서히 망각되었습니다. <한겨레21>의 보도는 그 무관심과 무지를 깨뜨리는 데 한 획을 그은 셈입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남베트남 학생운동가들의 사랑과 방황을 그린 응우옌반봉 Nguyễn Văn Bổng의 소설 <<사이공의 흰 옷>>(개정판 제목은 ‘하얀 아오자이’)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본어 중역을 거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의 혁명노선에 관한 책을 함께 읽고 친구들과 세미나를 한 적도 있습니다. 베트남전쟁을 제3세계 혁명 모델 또는 박정희 정권의 탐욕이 빚은 비극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내부의 저항을 시작으로 남베트남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고, 그곳으로 간 한국의 젊은 군인들 중 5천여명이 죽거나 1만여명이 다쳤으니까요. 한국군이 적 5만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을 봤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적 5만명 사살’ 너머에 또 다른 통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 책은 그 너머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을 만난 베트남 인민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겨레21> 기자 시절에는 고발과 폭로를 중심에 놓았습니다. 민간인학살의 존재 여부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10여년간 관련 보도에서 발을 뺐는데, 어느 시점에 다시 베트남에 가게 됐습니다. 2013년 2월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신문스크랩 26권을 재료로 (나중에 <<대한국민현대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쓰며 현대사 공부에 몰입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빛 바랜 옛날 신문 속에서 1960년대의 세계정세에 눈을 뜨게 됐는데, 이것이 긴 역사의 호흡으로 베트남전에 관한 글을 써 책으로 묶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 마을로 본 베트남전쟁사’입니다. 시공간의 무대는 1968년 2월12일 남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퐁니.퐁녓촌(두 개의 촌이지만 실제로는 한 마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날 하루, 마을에서 군인과 주민으로 조우했던 양국 사람들을 다시 처음부터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2015년 한국어판이 나오고 나서도 201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의 세밀화에 책 절반을 할애했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전체 희생자 9,000여명(1999년 구수정 具秀姃 박사 통계)에 비하면 이 사건 희생자 74명은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 부분에 밀착해 전체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카메라 앵글에 비유하면 ‘클로즈업’입니다. 한국군 파병의 이면과 한반도 남북대결 상황, 한미관계, 미국과 유럽의 68혁명을 넘어 체 게바라의 최후까지 짚었습니다. ‘줌아웃’으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세계적 인과관계를 탐구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아, 여기엔 스펙터클한 일본 반전운동도 포함됩니다. 

2013년 가을, 다시 일본인들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3박4일 휴가를 내어 오사카와 도쿄로 찾아갔지요. 베평련(ベ平連,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의 신화를 쓴 고 오다 마코토小田實 선생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었습니다. 그의 부인 현순혜 玄順惠 선생을 만나 남편의 생애와 베평련의 미군 탈영운동에 관한 증언을 듣고 자료를 얻게 된 일은 첫번째 행운이었습니다. 베평련 산하 자테크(JATEC, 반전 탈주 미군병사 원조 일본기술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프랑스에서 배운 여권위조 방법으로 탈영 미군을 밀항시킨 다카하시 다케모토 高橋武智 선생(전 릿쿄대 교수)을 인터뷰한 일은 두번째 행운이었습니다. 2008년 서울에서 처음 만난 인연으로 두 행운의 출발점이 되어준 교토대 대학원 이토 마사코伊藤正子 교수께 특별히 감사를 표합니다.

인권은 국가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국민 중심주의’를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운 일본 사회주의자들은 그 전범입니다. 일제의 강제 격리조치로 고통을 당했던 전남 고흥 소록도 한센인들의 피해보상 운동을 진행해온 도큐다 야스유키德田靖之 변호사는 2005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일본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베트남전TF에 속한 변호사들은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벌여왔습니다. 이 책의 본문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1968년 2월12일 퐁니.퐁녓 마을에 들어갔던 해병제2여단 1중대 1,2,3소대장에 대해 1969년 11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대통령 특명으로 조사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들은 조사 문건의 목록을 공개하라고 3년8개월전에 소송을 냈고, 이에 대해 법원은 다섯번에 걸쳐 민변 변호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난 직후인 2021년 4월5일, 결국 국정원은 조사 문건의 목록을 공개했으나 그 결과는 허망하고 장난스럽기까지 합니다. 국정원이 공개한 것은 1,2,3소대장들의 이름과 거주지를 적은 달랑 15글자였습니다. 국정원이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퐁니.퐁녓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변호사들은 긴 정보공개 소송 싸움을 다시 준비하며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응우옌티탄을 원고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외국어판을 일본어판으로 꿈꿨지만, 2020년 6월에 베트남어판이 먼저 나왔습니다. 한 베트남 독자가 책을 들고 퐁니.퐁녓 위령비 앞으로 가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았습니다. 외국어판 출간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일본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합니다. 일본어판 번역을 제안한 규슈국제대학 기무라 다카시 교수, 가고시마 대학 히라이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일본어판 출간과정에서 의사소통을 도맡아준 규슈국제대학 강신일 교수와 같은 대학의 또다른 번역자 야마다 교수, 그리고 책을 펴낸 인문서원에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은 한국인들에게 거울입니다. 불편한 거울이자, 유용한 거울입니다. 욕을 하며 거울을 깨뜨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의 위선과 이중성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거울은 너부터 잘하라고, 네 얼굴부터 들여다보라고 말합니다.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 가해국의 일원으로서 거울 앞에서 성찰해왔고, 이젠 한국인들이 빚어온 이 거울의 기록 앞에 선 모든 일본 독자 여러분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읽히는 글이 되길 기대합니다.

자,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2021년 5월

서울에서 고경태 高暻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