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왕래가 어려웠던 지난 2년의 시간. 다낭에 살고 있는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에게는 그 누구보다 답답하고 힘겨웠던 시기였습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준비한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신청서 작업에 응우옌티탄은 열의와 진심을 보였고 지난 19일(화)에 열린 온라인 좌담회에서도 응우옌티탄의 그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자와 유가족 5인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 신청서 제출(4월 25일)을 앞두고, 온라인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에게 하미 사건의 진실규명신청 소식과 성찰의 지점을 함께 나누고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58명이 좌담회 참석을 신청해주셨고 당일 행사에서는 줌과 유튜브로 약 50명이 접속하여 평화의 시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번 좌담회는 1부 하미 사건 진실규명 신청서 이야기, 2부 피해자 응우옌티탄과의 대담으로 진행되었고, 응우옌티탄의 증언으로 제작된 무빙툰 '하미마을 탄 이야기' 감상, 시 '하미의 농부' 낭독 등의 시간도 함께 가졌습니다. 저녁 7시30분부터 총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였는데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당일 좌담회 영상을 한베평화재단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 구독하기 버튼 꾸욱 눌러주세요!
이번 좌담회의 하이라이트는 응우옌티탄 님과의 대담이었습니다. 탄 님이 좌담회에 와준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며 직접 고른 사진 6점을 보며 약 45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대담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과의 대담
- 베트남전 하미학살 피해자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 좌담회에서 -
진행: 김남주 변호사 / 발언: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티탄
통역: 응우옌응옥뚜옌 (다낭외대 한국학과 교수)
[김남주]: 서울에서 있었던 2018년 시민평화법정 사진이에요. 한국군이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을 방공호로 몰아넣은 후) 수류탄을 터트리고 그랬을 당시 기억을 증언하셨던 장면의 사진입니다.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여하는 게 무섭지 않으셨는지, 어떻게 용기를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응우옌티탄]: 제가 한국에 갈 용기가 생긴 것은 저와 하미 마을 사람들이 학살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들어온 한국군이 저희 가족과 친지 5명을 죽였는데 그들이 우리를 방공호로 밀어놓고 수류탄을 던져 죽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피와 살점이 저를 덮쳤고 저 역시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그 피해로부터 강한 용기가 생겨서 제가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모든 진실을 말하러 한국에 가기 위해 많은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남주]: 그때는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무섭지만 하미학살 당시 희생된 135명을 대신해서 왔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군인들이 그날의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란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 이런 마음으로 한국에 오셨던 걸까요?
[탄]: 당시 저의 마음은 바로 방금 변호사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2번 사진: 시민평화법정에서 소견 발표를 하고 있는 응우옌티탄(좌) / 3번 사진: 법정에서 승소 판결 이후 기뻐하며 발언하고 있는 모습(우)
[남주]: (2번 사진) 법정에서 사건 피해 증언 이후 말씀하실 때인데, 이때는 많이 진정이 되셔서 아주 강단있게 말씀해주셨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3번 사진) 법정이 끝나고 재판부가 대한민국이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선고를 한 이후에 기뻐서 말씀을 하시는 장면인데 이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탄]: 당시 제 심정은 너무도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에서 승소했기에 기뻤고 즐거웠는데 제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간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재판부의 승소 판결을 들었을 때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남주]: 지금 퐁니‧퐁녓 사건의 국가배상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하미의 응우옌티탄 님도 국가배상소송을 하고 싶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탄]: 저에게 우리 마을 주민 135명의 죽음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한국 친구들이 저와 계속 동행하여 소송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번 사진: 베트남 피해자 103인 청원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응우옌티탄
[남주]:(4번 사진) 응우옌티탄 님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냈죠. 그래도 한국의 민주적 성향의 정부라서 전향적으로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당시 기대를 어느 정도 하셨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탄]: 당시 저는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제가 법정에서 이야기하고 증언했던 모든 것들을, 제가 겪은 학살 사건을 한국 정부가 진실로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남주]: 국방부에서 진상규명에서 대해서 사실상 거부를 했고 좌절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것인데요,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를 만나신다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탄]: 우리가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우리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한국 측의 답변을 기대했습니다. 2019년 9월 답변을 받았는데 저는 너무 슬펐고 너무 실망했습니다. 국방부의 답변서를 읽으면서 정말 슬펐는데,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들이 증언하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임을 위원회가 규명해주길 희망합니다. 우리들이 저번처럼 실망하지 않도록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선을 다하여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남주]: 2019년 국방부 회신을 받고 나서 탄 선생님께서 “내가 직접 경험한 사람인데, 어째서 나를 조사도 하지 않고 결론을 어떻게 내느냐”,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꼭 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탄]: 국방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청원을 거절했습니다. 이번에는 만약 한국 측에서 필요하다면 저에게 찾아와 직접 물어본다면 제가 모든 것을 직접 진술할 것입니다.
[남주]: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베트남전 학살 문제 관련해서 베트남이 진상규명이나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서서 진상규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탄]: 만약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측이 사과를 필요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학살 피해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은 이들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우리 피해자처럼 고통스럽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많은 친지들을 잃었고 유년시절을 상실했으며 학업의 기회도 잃었고 부모로부터 사랑도 받지도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피해자가 그들이 왜 그런 이야기(베트남은 사과를 필요하지 않는다)를 하는 지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를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피해자들처럼 고통스럽지가 않은 것입니다.
[남주]: 2019년 11월 영국 BBC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참전군인과 만났을 때의 사진인데요. 한국에 오셨을 때 참전군인 만나셨던 일인데 이때 어떤 말씀을 들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탄]: 2019년 11월 BBC 초청으로 한국에 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갔는데 당시 BBC가 저를 정말 많이 인터뷰했고 그 참전군인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보기에 지나간 과거의 일임에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고, 저에게도 진심 어린 이야기를 간절하게 말하여 저의 고통도 조금은 누그러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전쟁 당시 그는 하미 마을에는 오지 않고 호이안, 퐁니 마을을 갔었는데, 당시 전장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고 했었고, 그가 퐁니 마을에서 도로변에 나열되어 있는 시신들과 마주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끌어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심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느꼈고 그날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주]: 이 문제에 다양한 반응과 관심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고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탄]: 2년간 거대한 역병의 시기를 지나면서 한국과 베트남이 교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대로 잊힐까 두려웠습니다. 오늘 좌담회를 할 예정이라고 한국에서 전화가 왔을 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우리들과 동행하여 진실을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2년간 역병의 시기가 지났는데 하미학살 사건이 이대로 잊힐까, 더 이상 평화활동을 하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우리 피해자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우리와 동행하여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정서에 담은 학살 피해 문제를 인정해주길 희망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4월 25일(월) 오전 11시 진실화해위원회 앞(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에서 개최합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해주실 분들, 연대발언 해주실 분들의 신청(이메일 답장으로 부탁드려요)을 받습니다. 당일 응우옌티탄 님도 화상 연결 발언을 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 * * * * * * *
이번 좌담회에 모인 평화의 마음은 그대로 4월 25일(월) 11시에 있을 진실규명신청서 제출 기자회견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다음번 이야기, 평화의 외침! 한베평화재단은 또 열심히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자회견 보도자료 보기
* 이번 좌담회는 한베평화재단과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주최로 진행되었습니다.
+ 알고 계신가요? 한베평화재단은 응우옌티탄 국가배상소송 관련 변호인단과의 소통 및 통·번역 업무, 베트남 현지 자료 조사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피빈을 통해 한베평화재단의 2분기 평화활동을 응원해주세요. 해피빈 후원하기(클릭)
피해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 어떻게 들을 것인가
- 하미학살 피해자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 좌담회(2022.4.19) -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온라인에서 진행된 이번 좌담회에 줌과 유튜브에서 50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하미가 한국 사람들에게 이대로 잊혀질까 두려웠다."
코로나19로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왕래가 어려웠던 지난 2년의 시간. 다낭에 살고 있는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에게는 그 누구보다 답답하고 힘겨웠던 시기였습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준비한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신청서 작업에 응우옌티탄은 열의와 진심을 보였고 지난 19일(화)에 열린 온라인 좌담회에서도 응우옌티탄의 그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자와 유가족 5인의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 신청서 제출(4월 25일)을 앞두고, 온라인 좌담회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에게 하미 사건의 진실규명신청 소식과 성찰의 지점을 함께 나누고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58명이 좌담회 참석을 신청해주셨고 당일 행사에서는 줌과 유튜브로 약 50명이 접속하여 평화의 시간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이번 좌담회는 1부 하미 사건 진실규명 신청서 이야기, 2부 피해자 응우옌티탄과의 대담으로 진행되었고, 응우옌티탄의 증언으로 제작된 무빙툰 '하미마을 탄 이야기' 감상, 시 '하미의 농부' 낭독 등의 시간도 함께 가졌습니다. 저녁 7시30분부터 총 2시간 동안 진행된 행사였는데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당일 좌담회 영상을 한베평화재단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좋아요, 구독하기 버튼 꾸욱 눌러주세요!
이번 좌담회의 하이라이트는 응우옌티탄 님과의 대담이었습니다. 탄 님이 좌담회에 와준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며 직접 고른 사진 6점을 보며 약 45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대담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과의 대담
- 베트남전 하미학살 피해자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 좌담회에서 -
통역: 응우옌응옥뚜옌 (다낭외대 한국학과 교수)
[김남주]: 서울에서 있었던 2018년 시민평화법정 사진이에요. 한국군이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을 방공호로 몰아넣은 후) 수류탄을 터트리고 그랬을 당시 기억을 증언하셨던 장면의 사진입니다.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여하는 게 무섭지 않으셨는지, 어떻게 용기를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응우옌티탄]: 제가 한국에 갈 용기가 생긴 것은 저와 하미 마을 사람들이 학살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마을로 들어온 한국군이 저희 가족과 친지 5명을 죽였는데 그들이 우리를 방공호로 밀어놓고 수류탄을 던져 죽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피와 살점이 저를 덮쳤고 저 역시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그 피해로부터 강한 용기가 생겨서 제가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모든 진실을 말하러 한국에 가기 위해 많은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남주]: 그때는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고요. “무섭지만 하미학살 당시 희생된 135명을 대신해서 왔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군인들이 그날의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란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 이런 마음으로 한국에 오셨던 걸까요?
[탄]: 당시 저의 마음은 바로 방금 변호사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남주]: (2번 사진) 법정에서 사건 피해 증언 이후 말씀하실 때인데, 이때는 많이 진정이 되셔서 아주 강단있게 말씀해주셨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3번 사진) 법정이 끝나고 재판부가 대한민국이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선고를 한 이후에 기뻐서 말씀을 하시는 장면인데 이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탄]: 당시 제 심정은 너무도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에서 승소했기에 기뻤고 즐거웠는데 제가 베트남에서 한국까지 간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재판부의 승소 판결을 들었을 때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남주]: 지금 퐁니‧퐁녓 사건의 국가배상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하미의 응우옌티탄 님도 국가배상소송을 하고 싶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탄]: 저에게 우리 마을 주민 135명의 죽음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한국 친구들이 저와 계속 동행하여 소송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주]:(4번 사진) 응우옌티탄 님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2019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의 청원서를 냈죠. 그래도 한국의 민주적 성향의 정부라서 전향적으로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당시 기대를 어느 정도 하셨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탄]: 당시 저는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제가 법정에서 이야기하고 증언했던 모든 것들을, 제가 겪은 학살 사건을 한국 정부가 진실로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남주]: 국방부에서 진상규명에서 대해서 사실상 거부를 했고 좌절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것인데요,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를 만나신다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탄]: 우리가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우리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한국 측의 답변을 기대했습니다. 2019년 9월 답변을 받았는데 저는 너무 슬펐고 너무 실망했습니다. 국방부의 답변서를 읽으면서 정말 슬펐는데, 이번에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들이 증언하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임을 위원회가 규명해주길 희망합니다. 우리들이 저번처럼 실망하지 않도록 진실화해위원회가 최선을 다하여 어떻게든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남주]: 2019년 국방부 회신을 받고 나서 탄 선생님께서 “내가 직접 경험한 사람인데, 어째서 나를 조사도 하지 않고 결론을 어떻게 내느냐”,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꼭 탄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탄]: 국방부가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의 청원을 거절했습니다. 이번에는 만약 한국 측에서 필요하다면 저에게 찾아와 직접 물어본다면 제가 모든 것을 직접 진술할 것입니다.
[남주]: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베트남전 학살 문제 관련해서 베트남이 진상규명이나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서서 진상규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탄]: 만약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측이 사과를 필요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학살 피해와 같은 상황을 겪지 않은 이들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들은 우리 피해자처럼 고통스럽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많은 친지들을 잃었고 유년시절을 상실했으며 학업의 기회도 잃었고 부모로부터 사랑도 받지도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피해자가 그들이 왜 그런 이야기(베트남은 사과를 필요하지 않는다)를 하는 지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를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피해자들처럼 고통스럽지가 않은 것입니다.
[남주]: 2019년 11월 영국 BBC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참전군인과 만났을 때의 사진인데요. 한국에 오셨을 때 참전군인 만나셨던 일인데 이때 어떤 말씀을 들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탄]: 2019년 11월 BBC 초청으로 한국에 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갔는데 당시 BBC가 저를 정말 많이 인터뷰했고 그 참전군인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보기에 지나간 과거의 일임에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고, 저에게도 진심 어린 이야기를 간절하게 말하여 저의 고통도 조금은 누그러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전쟁 당시 그는 하미 마을에는 오지 않고 호이안, 퐁니 마을을 갔었는데, 당시 전장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고 했었고, 그가 퐁니 마을에서 도로변에 나열되어 있는 시신들과 마주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끌어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심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느꼈고 그날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주]: 이 문제에 다양한 반응과 관심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고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탄]: 2년간 거대한 역병의 시기를 지나면서 한국과 베트남이 교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대로 잊힐까 두려웠습니다. 오늘 좌담회를 할 예정이라고 한국에서 전화가 왔을 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우리들과 동행하여 진실을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2년간 역병의 시기가 지났는데 하미학살 사건이 이대로 잊힐까, 더 이상 평화활동을 하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우리 피해자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우리와 동행하여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정서에 담은 학살 피해 문제를 인정해주길 희망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채록 및 베트남어 재번역 권현우 활동가
+ 하미 사건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 신청 관련 칼럼/기사
[한겨레] 대한민국 내로남불 과거사 청산, 임재성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9573.html
[오마이] '우린 도우러 왔는데'... 한국군의 오판이 낳은 결과, 김종성
http://omn.kr/1ydj7
[오마이] 한국군 민간인학살 베트남 피해자들, 진정서 낸다, 권현우
http://omn.kr/1ybd0
+ 나누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
[일다] 피해 중심의 서사가 아닌 ‘가해자의 자리를 묻다’, 심아정
han.gl/DBgve
+ 25일(월) 11시 기자회견 및 연대발언에 함께 해주세요!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4월 25일(월) 오전 11시 진실화해위원회 앞(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에서 개최합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해주실 분들, 연대발언 해주실 분들의 신청(이메일 답장으로 부탁드려요)을 받습니다. 당일 응우옌티탄 님도 화상 연결 발언을 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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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좌담회에 모인 평화의 마음은 그대로 4월 25일(월) 11시에 있을 진실규명신청서 제출 기자회견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다음번 이야기, 평화의 외침! 한베평화재단은 또 열심히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자회견 보도자료 보기
* 이번 좌담회는 한베평화재단과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등이 참여하고 있는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 주최로 진행되었습니다.
글 | 짜노 (권현우 활동가)
사진 | 한베평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