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음리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걷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전쟁 다크투어 in 대한민국, 2025년 두 번째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지난 9월 20일(토),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전쟁 관련 대표적인 연구자인 사회학자 윤충로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진행된 이번 여행에 32명이 신청해주셨고 당일 25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약 32만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습니다. 그중 약 23만 명의 참전군인들이 오음리에 있었던 파월장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오음리의 훈련장에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라는 기념시설이 200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200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기념관, 추모비, 평화수호 참전 기념탑, 식당, 운동장(현 야구장), 병영체험동, 옛 취사동(복원) 준공, 구찌터널, 월남재현마을 등을 갖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매우 넓은 부지에 조성되어 있었고 사업비 179억원이 들어갔을 정도로 다양한 기념 시설과 관련 관광 장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 오음리 다크투어 일정 *
08:00-10:30 춘천으로 이동 10:30-11:10 춘천시 월남전참전기념탑 방문 11:10-11:30 식당으로 이동 11:30-12:30 점심식사 12:30-13:00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이동 13:00-14:30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다크투어 14:30-16:00 마을 해설사 이승범 선생님과 오음리 탐방 16:00-18:00 서울로 이동 | |
오음리로 가는 길에 기행단은 춘천시에 있는 월남전참전기념탑을 방문했습니다. 현재 현충시설로 공식 등록된 베트남전쟁 관련 기념비는 77개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기념비,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합으로 기념하는 비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1992년경부터 베트남전 기념탑 건립이 각 지역의 참전군인단체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민간인학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2000년 이후부터는 더 많은 기념비 건립이 이어졌습니다.
보통의 전쟁 관련 기념비에는 전몰자의 이름을 새기는데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는 참전자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기념비가 추모비의 성격보다는 일종의 ‘성덕비’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윤충로 선생님이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자신이 겪은 전쟁의 역사가 당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평화운동은 그러한 열망을 오히려 더 촉발하게 된 양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월남전참전기념탑 일대 모습
춘천에서 만난 참전 기념비의 내용은 여타의 참전 기념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앞서 4월의 다크투어에서 둘러봤던 전쟁기념관의 성격과도 비슷했습니다.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한 참전임을 명예롭게 기념하고 있었고 참전의 경제적 기여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대 당시 대한민국이 참전군인들에게 외쳤던 참전의 명분과 의미가 기념비에는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기념비가 진실과 정의, 평화의 가치와 충돌하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윤충로 선생님은 이날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한국 사회에 고립되어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참전군인들은 기억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돈과 사람을 모아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기념비 건립을 이뤄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공 이후부터는 망각이 시작된 것입니다. 현재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대한민국의 웬만한 도시에 다 건립되어 있는데, 정작 시민들은 이러한 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충로 선생님은 “기억을 잇게 할 수 없는 기념은 오히려 망각을 재촉한다”라면서 한국의 여러 기념시설들이 “기념 공간을 만든 후부터는 망각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며,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베트남전 기념탑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쟁이라는 과거를 닫아가는 방식인가”라는 물음과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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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수호 참전 기념탑과 윤충로 선생님 | 월남 재현 마을 입구 |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에 도착한 후, 윤충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가자들은 오음리라는 공간에 얽혀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그물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오음리 훈련장에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건립된 것은 단순한 베트남전 기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강원도 일대의 안보 관광 바람 속에서 1997년 강원도 의회의 제안으로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윤충로 선생님은 기념탑과 달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의 경우 안보 관광이라는 지역의 이해관계 속에서 건립된 점을 강조했습니다. 32만 파월 장병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념 시설과 부대 시설을 통해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기억의 장소를 관광과 상업화의 목적하에 조성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전쟁 기념과 안보 관광의 만남은 이곳에 월남 재현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고 이날 참가자들은 이곳을 직접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베트남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공간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전쟁 당시 참전군인이 마주했던 베트남 현지 마을을 재현한 공간인데 전쟁 당시의 반공주의를 그대로 반영한 안내 문구와 전시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는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베트남 여성의 마네킹이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한 모양새로 서 있었는데 너무도 부조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한국군이 마을 주민 혹은 베트콩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조형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는 기념과 관광의 욕망이 만들어낸 베트남 마을을 둘러보며 이것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월남(越南) 참전기념관 모습
이어서 참가자들은 ‘월남(越南) 참전기념관’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 그리고 오늘날 한베 양국 관계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의 전시입니다. 기념관의 이름에는 원래 ‘베트남’이 적혀 있었지만 개관 후 참전자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월남(越南)’으로 명칭이 변경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참전군인들이 그 시대에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참전을 한 것인지 이름을 통해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기념관의 전시들은 현재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관 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음리의 전시는 2008년 개장 후 계속 유지된 것으로 전쟁기념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전과 전투에 관한 상세한 전시들이 있었고 참전군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참전 일기, 증언 기록 등도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크투어’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몇몇 전시 내용의 문제점을 짚어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관람을 하기도 했고, 전쟁기념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참전군인들의 여러 기억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오음리 출신 주민인 이승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음리에서 태어나 자란 이승범 선생님은 베트남전 파병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한 오음리의 산 증인이었고 현재는 오음리 관련 해설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훈련장 진입로 건설을 위해 국토건설단이 동원된 당시 이야기, 훈련소가 만들어지고 마을에 수많은 술집, 다방, 윤락업소 등이 성행한 것, 종전 이후 그러한 업소들이 줄어들며 마을이 쇠락한 과정, 훈련을 마친 군인들의 환송식에 태극기를 들고 수십 차례 동원되었던 마을 학생들의 경험 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승범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이 군인들은 물론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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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리 출신 주민 이승범 선생님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강원도지부 참전군인 세 분 |
이번 일정에서는 춘천에 살고 계신 참전군인 세 분과의 짧은 만남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강원도지부 지부장과 사무국장, 춘천시 지회장을 맡고 있는 세 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참전자회가 미리 한베평화재단에 연락을 주셔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갖고 참가자들에게 전쟁 시기 한국군이 민간지원을 위해 노력한 점을 알리고 싶다고 하여 만남을 가졌습니다.
세 분께서는 참가자들이 먼 곳에서 오음리까지 찾아와준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이어서 참전군인들이 전쟁 시기 전투만 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주민들을 돕는 여러 일들도 한 점을 시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여러 통계 수치를 직접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한국군이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투를 해야 했던 점을 강조했고 시민들이 생각하는 그런 계획적인 학살은 없었음을 호소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끝으로 한베평화재단과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와주고 잠깐이나마 소통을 한 것을 의미있게 생각한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한베평화재단에서도 방문단을 정중히 맞아주신 것에 감사를 전했고, 세 분에게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던 베트남전 토론회 자료집을 드리며 여기에 수록된 민간인학살 문제는 물론 참전군인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내용과 시민사회의 고민을 살펴봐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차후 베트남전쟁 관련 토론회와 같은 공론장을 열어 참전자회를 초대하면 꼭 응해주시길 부탁드렸고 양자가 견해 차이가 확연해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을 하는 자리를 하는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 읽을거리 추천
[소논문] 오음리의 베트남전쟁, 윤충로, 역사비평, 2024,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09208
이번 오음리 다크투어를 통해 참전자분들이 어떠한 기억의 욕망을 갖고 있고, 그분들이 어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평화운동에 연대하는 시민들과는 확연히 다른 베트남전쟁에 대한 세계관과 마주하는 시간은 결코 편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기념비와 기념시설을 만들었고 또 잊혀져 가고 있는 참전군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이해하고 또한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베트남전쟁 관련 기억의 장소를 찾는 다크투어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시민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이번 오음리 다크투어의 기획과 진행, 해설 등에 정말 많은 수고를 해주신 윤충로 선생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 : 짜노
사진 : 두부

오음리에서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걷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전쟁 다크투어 in 대한민국, 2025년 두 번째 프로그램이 열렸습니다. 지난 9월 20일(토),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전쟁 관련 대표적인 연구자인 사회학자 윤충로 선생님의 해설과 함께 진행된 이번 여행에 32명이 신청해주셨고 당일 25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약 32만명의 대한민국 청년들이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습니다. 그중 약 23만 명의 참전군인들이 오음리에 있었던 파월장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오음리의 훈련장에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라는 기념시설이 200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200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기념관, 추모비, 평화수호 참전 기념탑, 식당, 운동장(현 야구장), 병영체험동, 옛 취사동(복원) 준공, 구찌터널, 월남재현마을 등을 갖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매우 넓은 부지에 조성되어 있었고 사업비 179억원이 들어갔을 정도로 다양한 기념 시설과 관련 관광 장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 오음리 다크투어 일정 *
08:00-10:30 춘천으로 이동
10:30-11:10 춘천시 월남전참전기념탑 방문
11:10-11:30 식당으로 이동
11:30-12:30 점심식사
12:30-13:00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이동
13:00-14:30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다크투어
14:30-16:00 마을 해설사 이승범 선생님과 오음리 탐방
16:00-18:00 서울로 이동
오음리로 가는 길에 기행단은 춘천시에 있는 월남전참전기념탑을 방문했습니다. 현재 현충시설로 공식 등록된 베트남전쟁 관련 기념비는 77개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기념비,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합으로 기념하는 비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1992년경부터 베트남전 기념탑 건립이 각 지역의 참전군인단체들에 의해 추진되었고 민간인학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2000년 이후부터는 더 많은 기념비 건립이 이어졌습니다.
보통의 전쟁 관련 기념비에는 전몰자의 이름을 새기는데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는 참전자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기념비가 추모비의 성격보다는 일종의 ‘성덕비’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윤충로 선생님이 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자신이 겪은 전쟁의 역사가 당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시작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평화운동은 그러한 열망을 오히려 더 촉발하게 된 양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월남전참전기념탑 일대 모습
춘천에서 만난 참전 기념비의 내용은 여타의 참전 기념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앞서 4월의 다크투어에서 둘러봤던 전쟁기념관의 성격과도 비슷했습니다. 자유와 세계 평화를 위한 참전임을 명예롭게 기념하고 있었고 참전의 경제적 기여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독재 시대 당시 대한민국이 참전군인들에게 외쳤던 참전의 명분과 의미가 기념비에는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기념비가 진실과 정의, 평화의 가치와 충돌하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윤충로 선생님은 이날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한국 사회에 고립되어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참전군인들은 기억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돈과 사람을 모아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기념비 건립을 이뤄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공 이후부터는 망각이 시작된 것입니다. 현재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대한민국의 웬만한 도시에 다 건립되어 있는데, 정작 시민들은 이러한 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충로 선생님은 “기억을 잇게 할 수 없는 기념은 오히려 망각을 재촉한다”라면서 한국의 여러 기념시설들이 “기념 공간을 만든 후부터는 망각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며, 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베트남전 기념탑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쟁이라는 과거를 닫아가는 방식인가”라는 물음과 고민을 나눠주셨습니다.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에 도착한 후, 윤충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가자들은 오음리라는 공간에 얽혀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욕망의 그물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오음리 훈련장에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건립된 것은 단순한 베트남전 기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강원도 일대의 안보 관광 바람 속에서 1997년 강원도 의회의 제안으로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윤충로 선생님은 기념탑과 달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의 경우 안보 관광이라는 지역의 이해관계 속에서 건립된 점을 강조했습니다. 32만 파월 장병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념 시설과 부대 시설을 통해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기억의 장소를 관광과 상업화의 목적하에 조성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전쟁 기념과 안보 관광의 만남은 이곳에 월남 재현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고 이날 참가자들은 이곳을 직접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베트남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공간을 둘러보며 참가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전쟁 당시 참전군인이 마주했던 베트남 현지 마을을 재현한 공간인데 전쟁 당시의 반공주의를 그대로 반영한 안내 문구와 전시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는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베트남 여성의 마네킹이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한 모양새로 서 있었는데 너무도 부조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한국군이 마을 주민 혹은 베트콩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조형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는 기념과 관광의 욕망이 만들어낸 베트남 마을을 둘러보며 이것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월남(越南) 참전기념관 모습
이어서 참가자들은 ‘월남(越南) 참전기념관’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 그리고 오늘날 한베 양국 관계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의 전시입니다. 기념관의 이름에는 원래 ‘베트남’이 적혀 있었지만 개관 후 참전자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월남(越南)’으로 명칭이 변경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참전군인들이 그 시대에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참전을 한 것인지 이름을 통해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기념관의 전시들은 현재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관 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오음리의 전시는 2008년 개장 후 계속 유지된 것으로 전쟁기념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전과 전투에 관한 상세한 전시들이 있었고 참전군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참전 일기, 증언 기록 등도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크투어’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몇몇 전시 내용의 문제점을 짚어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관람을 하기도 했고, 전쟁기념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참전군인들의 여러 기억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오음리 출신 주민인 이승범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음리에서 태어나 자란 이승범 선생님은 베트남전 파병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한 오음리의 산 증인이었고 현재는 오음리 관련 해설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훈련장 진입로 건설을 위해 국토건설단이 동원된 당시 이야기, 훈련소가 만들어지고 마을에 수많은 술집, 다방, 윤락업소 등이 성행한 것, 종전 이후 그러한 업소들이 줄어들며 마을이 쇠락한 과정, 훈련을 마친 군인들의 환송식에 태극기를 들고 수십 차례 동원되었던 마을 학생들의 경험 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승범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이 군인들은 물론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정에서는 춘천에 살고 계신 참전군인 세 분과의 짧은 만남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강원도지부 지부장과 사무국장, 춘천시 지회장을 맡고 있는 세 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참전자회가 미리 한베평화재단에 연락을 주셔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갖고 참가자들에게 전쟁 시기 한국군이 민간지원을 위해 노력한 점을 알리고 싶다고 하여 만남을 가졌습니다.
세 분께서는 참가자들이 먼 곳에서 오음리까지 찾아와준 점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이어서 참전군인들이 전쟁 시기 전투만 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주민들을 돕는 여러 일들도 한 점을 시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며 여러 통계 수치를 직접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한국군이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투를 해야 했던 점을 강조했고 시민들이 생각하는 그런 계획적인 학살은 없었음을 호소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끝으로 한베평화재단과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와주고 잠깐이나마 소통을 한 것을 의미있게 생각한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한베평화재단에서도 방문단을 정중히 맞아주신 것에 감사를 전했고, 세 분에게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렸던 베트남전 토론회 자료집을 드리며 여기에 수록된 민간인학살 문제는 물론 참전군인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내용과 시민사회의 고민을 살펴봐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차후 베트남전쟁 관련 토론회와 같은 공론장을 열어 참전자회를 초대하면 꼭 응해주시길 부탁드렸고 양자가 견해 차이가 확연해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을 하는 자리를 하는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 읽을거리 추천
[소논문] 오음리의 베트남전쟁, 윤충로, 역사비평, 2024,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09208
이번 오음리 다크투어를 통해 참전자분들이 어떠한 기억의 욕망을 갖고 있고, 그분들이 어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평화운동에 연대하는 시민들과는 확연히 다른 베트남전쟁에 대한 세계관과 마주하는 시간은 결코 편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기념비와 기념시설을 만들었고 또 잊혀져 가고 있는 참전군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이해하고 또한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베트남전쟁 관련 기억의 장소를 찾는 다크투어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시민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이번 오음리 다크투어의 기획과 진행, 해설 등에 정말 많은 수고를 해주신 윤충로 선생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 : 짜노
사진 : 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