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남성 투이보학살 유가족 쯔엉더우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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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쯔엉더우(Trương Đấu), 1956년생 

▶ 1967년 12월 20일(음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토사 투이보학살(Vụ thảm sát Thủy Bồ ở xã Điện Thọ, thị xã Điện Bàn, tỉnh Quảng Nam) 유가족

▶ 쯔엉더우(당시 12세)는 투이보학살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동생을 잃었다. 그가 11살 때, 어머니는 그를 다낭의 고모 집으로 피난을 보냈다. 그후 얼마 뒤 그의 누나 쯔엉티더우(13세)와 남동생 쯔엉매(9세)도 고모의 집으로 와 세 사람은 함께 살았다. 그런데 며칠 뒤 고모로부터 고향인 투이보 마을에 남아 있던 가족들이 학살 피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베트콩으로 의심을 받아 미군에게 붙잡혀 다낭에서 노역 중이던 아버지가 지인들을 통해 고향에서 벌어진 일을 수소문 했는데, 집에 남아있던 할머니 응우옌티쭛(54세), 어머니 쯔엉티응온(33세), 남동생 쯔엉반사우(약 6세), 여동생 쯔엉티스아(2세)가 이웃인 히에우 할아버지의 집으로 끌려가 살해당했고,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룰 수 없어 주민들이 돗자리에 시신을 말아서 매장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쯔엉더우는 하루 종일 누나 쯔엉티더우, 남동생 쯔엉매와 얼싸안고 통곡을 했다. 
    고모의 집에는 아이들이 많아 쯔엉더우와 누나는 돈벌이를 해야만 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누나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했으며, 남동생 쯔엉매는 고모의 집에서 지냈다. 그런데 고모네 집에 아이가 많고 고모가 바빠 남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서 1972년에 남동생 쯔엉매가 강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노역장에서 도망쳐 나와 남동생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주었고, 이 때 학살로 죽은 가족의 무덤을 찾았다. 1975년에 전쟁이 끝나고 쯔엉더우는 아버지, 누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학살 사건 당시 한국군이 집을 불태워 집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은 대나무로 막집을 짓고 살아야 했다.
    쯔엉더우는 2019년 3월, 누나 쯔엉티더우를 포함한 4명의 투이보학살 유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청원서를 보냈다. 

▶ 증언 출처: 2019년 3월 18일, 2019년 3월 20일 쯔엉더우 인터뷰(쩐티타오꾸옌 진행)

▶ 사진: 2019년 3월 15일, 구수정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