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응아이성 프억빈학살 유가족 응우옌떤시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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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우옌떤시(Nguyễn Tấn Sỹ), 1956년생 

▶ 1966년 9월 27일(음력), 꽝응아이성 선띤현 띤선사 프억빈학살 (Vụ thảm sát Phước Bình, xã Tịnh Sơn, huyện Sơn Tịnh, tỉnh Quảng Ngãi) 유가족

▶ 응우옌떤시(당시 10세)는 한국군의 프억빈 학살로 누나 응우옌티전(12세)을 잃었다. 사건 당일 프억빈 마을의 집에는 어머니 똔티판(52세), 두 명의 누나 응우옌티또안(16세)과 응우옌티전, 여동생 응우옌티호아(8세) 그리고 집에 잠시 머물고 있었던 부이트아(41세)의 가족들이 있었다. 아침 8시경, 마을로 들이닥친 한국군은 방공호에 숨어 있던 가족과 부이트아의 가족 등 10명을 밖으로 끌어내 사탕수수 더미가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끌려가던 중 어머니는 한국군이 방심한 사이 여동생 응우옌티호아를 데리고 도망쳐 집근처의 샛강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했다. 한국군은 집 근처의 사탕수수 더미가 있는 곳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총을 난사했는데, 이때 누나 응우옌티전은 사망했고 누나 응우옌티또안은 사람들 뒤 쪽에 있어 총탄에 맞지 않았고 시체 더미들 사이에서 죽은 척을 하여 목숨을 구했다. 당일 응우옌떤시는 결혼하여 분가한 누나 응우옌티쑤언(28세)의 집에 건너가 있었고 아버지 응우옌턴(59세)는 인근 마을에 사는 작은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당일 아침 집을 떠나 화를 면했다. 
   사건 다음날 응우옌떤시는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한국군의 보복이 두려워 누나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사나흘 뒤 아버지가 마을로 돌아와 주검을 수습했으나, 그때는 이미 개나 고양이들이 시체를 물어뜯어 엉망이 된 상태였다. 학살 피해로 집과 마을이 불타 그의 가족은 띤탕사의 전략촌(현재 선띤병원이 있는 곳)에 이주하여 살았다. 그의 부모는 낮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띤탕사로 돌아와 잠을 자는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딸 응우옌티전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하던 그의 아버지는 1984년에, 어머니는 1987년에 병사했다. 
   2019년 4월, 응우옌떤시는 프억빈학살 피해자·유가족 17명과 함께 청와대에 보낸 청원서에서 피해자인 누나의 무덤을 개보수할 수 있도록 한국이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도 함께 당부했다. 

▶ 증언 출처: 2019년 3월 5일 응우옌떤시 인터뷰(진행: 구수정), 2019년 3월 7일 응우옌떤시 인터뷰(진행: 쩐티타오꾸옌)

▶ 사진: 2019년 3월 5일, 구수정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