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피해자 판티부이

202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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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티부이(Phan Thị Bui), 1923년생 (2008년 타계 추정)

▶ 1966년 2월 15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피해자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판티부이는 이 빈안학살 중에서도 2월 15일에 일어난 까인브엄 들판 학살의 생존자다. 
   피해 당일 판티부이(당시 43세)는 한국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가족, 이웃들과 함께 땅굴에 숨었는데 이를 발견한 한국군이 최루탄을 던져 넣었다. 땅굴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쉬지 못해 참지 못하고 땅 위로 올라가면 한국군이 차례로 총을 쏴서 죽였다. 당시 판티부이는 땅굴에서 밖으로 기어오르다 머리에 총을 맞고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는 혼절했으나 살아남았고 함께 있던 딸 레티쑤언(당시 23세)도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당시 땅굴에 함께 있었던 판티부이의 외손자와 외손녀를 포함한 11명은 한국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판티부이의 어머니도 같은 날 다른 땅굴에서 한국군 학살 피해로 목숨을 잃었다. 
  1999년 당시 판티부이의 왼쪽 관자놀이에는 총탄구멍이 깊게 뚫려 있었고, 등에도 총상을 입은 흉터가 남아 있었으며 땅굴로 굴러 떨어지면서 부러진 팔은 뼈가 어긋나 쓸 수가 없었다. 그는 1999년 6월, 한겨레21에 학살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사위 응우옌반저(29세)도 자신의 아이 둘(7살, 3살)을 학살 피해로 잃은 것을 증언했다. 2008년 경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 1999년 6월 22일, 구수정 촬영

▶ 증언 출처: 한겨레21(1999.09.02.) “저주의 욕설, 화해의 술잔”

▶ 비고: 판티부이의 증언이 언급된 한겨레21 
기사에 언급된 안칸마을의 정확한 지명은 '떠이빈사 안빈1촌 안카인마을(xóm An Khanh, thôn Anh Vinh 1, xã Tây Vinh)'로 까인브엄 학살 피해가 있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