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피해자 반쑤언꽁

▶ 1966년 2월 15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 (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피해자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반쑤언공(당시 14살)은 이 빈안학살 중에서도 2월 15일에 일어난 까인브엄 들판 학살의 생존자다.
사건 당일 빈안사에서 한국군과 유격대의 전투가 벌어지자 반쑤언꽁과 가족 친지 모두 9명은 집의 방공호로 몸을 피신했는데 오후 3~4시경이 되었을 때 한국군이 방공호를 발견하였다. 한국군은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을 땅 위로 끌어내 심문을 한 뒤 다시 방공호로 들어가게 한 후 수류탄을 던져 피해가 발생했다. 반쑤언꽁은 이마에 부상을 입고 비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고 어머니 호티띠엔(약 40~50세)은 팔에 큰 부상을 입었고 할아버지 반투이(약 70~80세)도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방공호에 있던 큰 아버지 반봉(약 30~40세), 큰 어머니(약 30-~40세, 반봉의 아내), 친척 형 반쑤언아인(12세), 3명의 사촌 동생 반쑤언떤(7세), 반쑤언흥(6세), 반쑤언방(약 2~3세) 등 6명의 친인척이 사망했다.
한국군이 떠난 후 반쑤언꽁은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진료소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친인척의 시신은 주민들이 깐븜 들판 뒤쪽에 매장했다. 당시 한국군에게 살해당할 것이 무서워 주민들은 사건 당일 밤 서둘러 시신을 매장하고 자리를 피했다. 사건 피해 1개월이 지났을 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고 이후 떠이선현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으며 피난민의 삶을 살았다. 어머니 호티띠엔은 사건 약 2년 뒤에 사망했다. 그는 약 3개월간 지역 게릴라들을 위해 군량을 운반하는 운전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게릴라들과 한국군의 전투로 한국군이 사상을 입게 되자 분노하여 학살을 저지른 것 같다며 한국 정부가 사과를 한다면 그 마음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은 누구에게나 가혹했다며, 더 이상의 원한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가 피해자인 자신의 남은 여생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 증언 출처: 2020년 10월 30일, 2020년 11월 20일 반쑤언꽁 인터뷰(진행: 흐아흐우응이)
▶ 사진: 2020년 11월 15일, 한베평화재단 촬영
▶ 까인븜 들판 학살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