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남성 퐁니·퐁넛학살 유가족 판머우

▶ 판머우(Phan Mậu), 1928년생 (2021년 6월 타계)
▶ 1968년 2월 12일(양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퐁넛학살 (Vụ thảm sát Phong Nhất-Phong Nhị, phường Điện An, thị xã Điện Bàn, tỉnh Quảng Nam) 유가족
▶ 판머우(당시 40세)는 한국군의 학살로 아내와 두 딸을 잃었다. 사건 당일 이른 아침, 판머우는 아들 판반타인(14세), 판반랑(5세)을 데리고 먼저 집에서 멀지 않은 그의 어머니 집으로 피신하여 학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내와 두 딸, 아기였던 막내아들은 집에 남았는데 돼지와 닭에게 먹이를 준 후 뒤따라오려 했다. 그러나 아침 8시경 아내와 아이들은 한국군에게 붙잡혀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응으 할아버지의 마당으로 끌려가 학살 피해를 당했다. 아내 응우옌티리에우(40세), 딸 판티홍(8세), 딸 판티다오(6세)가 목숨을 잃었고 아내의 품에 있었던 막내아들 판반하인(생후 약 2개월)는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아내는 한국군의 수류탄에 맞아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는데, 막내아들은 아내의 배 밑에 깔친 채 상처 하나 없이 살아 있었다.
학살 피해로 집과 가재도구마저 모두 불타버려 생계가 막막해진 판머우는 큰아들 판반아인과 다낭으로 갔고 다른 아이들은 퐁니에 계속 살았다. 판머우는 목수일을, 큰아들은 허드렛일을 하여 고향에 있는 아이들에게 쌀을 보내주곤 했다. 고향에 남은 세 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판반타인은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돌봤다. 사정이 되지 않아 판머우가 쌀을 보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굶거나 콰이미(구황작물) 등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막내아들 판반하인이 13세가 되던 해에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막내아들을 호치민시의 친구 집에 맡겨야 했다. 아내가 목숨을 바쳐 구한 막내를 집에서 떠나보낼 때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2019년 4월, 판머우는 16명의 퐁니·퐁넛학살 피해자 및 유가족과 함께 청와대에 청원서를 보냈으며 그의 두 아들 판반타인, 판반랑도 청원에 동참했다.
▶ 2019년 3월, 구수정 촬영
▶ 꽝남성 퐁니·퐁넛학살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