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낌따이학살 유가족 응우옌티민응우옛(Nguyễn Thị Minh Nguyệt)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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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우옌티민응우옛(Nguyễn Thị Minh Nguyệt), 1950년생(주민등록상 1951년)


▶ 1966년 1월 9일(양력), 빈딘성 안년시 년퐁사 낌따이학살 (Vụ thảm sát Kim Tài, xã Nhơn Phong, thị xã An Nhơn, tỉnh Bình Định) 피해자


▶ 1966년 응우옌티민응우옛(당시 15세)은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학살 사건 전날 밤 한국군이 대규모로 마을에 진입했고, 다음 날에는 수많은 헬리콥터가 날아오고 탱크까지 들어오자 주민들은 방공호로 몸을 숨겼다. 


현재 낌따이 위령비가 있는 자리는 당시 주민들이 직짝(Dịch Trạc)이라고 부르던 아저씨의  집이었다. 그곳에는 큰 방공호가 있어 인근의 주민들도 피신했다. 장을 보고 돌아온 응우옛의 시어머니 응우옌티안(61세)과 시누이 쩐티땀은 마을에 들어온 한국군을 보고 놀라 직짝 아저씨 집의 방공호에 몸을 숨겼다. 다음날 집안의 제사를 준비한 음식과 물품을 확인하기 위해  시누이만 방공호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학살이 벌어져 시어머니는 목숨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유격대와의 교전 중 한국군 몇 명이 사망하자, 이에 격분한 한국군이 방공호에 있던 주민들을 총과 수류탄으로 학살했다고 이야기했다. 응우옛은 방공호 안에서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주민이 3명가량 있었다고 들었지만, 이들이 이후 생존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응우옛과 가족들은 집 방공호에 숨어 있다가 한국군의 명령으로 밖으로 나왔다. 수백 명의 주민이 마을의 언덕에 집결되었고, 1박 2일 동안 그곳에서 감시를 받으며 지냈다. 앉은 채 잠을 자야 했고, 용변도 자유롭게 볼 수 없었다. 한국군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먹던 통조림을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응우옛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은 음식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에 대한 폭행은 없었으며, 다음 날 한국군이 철수한 뒤 주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응우옛은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 강가로 나갔다가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주민들이 집결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도망치다 한국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이었다. 응우옛과 어머니는 물 위에 떠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건져 집으로 돌아와 매장했다. 마을 곳곳에는 다른 희생자들의 시신도 흩어져 있었다. 현재 위령비에는 희생자 37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응우옛은 마을 곳곳에서 숨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00여 명에 달하며, 자신의 아버지처럼 희생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도 많다고 했다. 


학살 이후 폭격으로 집이 불타면서 가족은 고향을 떠나 빈딘, 뀌년, 냐짱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피난 생활을 했다. 1975년 전쟁이 끝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1976년 그는 쩐쫑깡(희생자 응우옌티안의 아들)과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현재는 남편과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냈으며, 혼자 살면서 집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밤마다 방공호에서 잠을 자야 했던 기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언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폭탄과 포성이 이어지는 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응우옛은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증오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군인들이 서로 싸우다 희생되는 것과 죄 없는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것은 다르다며, 한국이 이 문제를 인정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보상해 주기를 바랐다. 또한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낌따이 마을을 찾아와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증언 출처: 2026년 6월 10일, 7월 1일 응우옌티민응우옛 인터뷰(진행: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5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낌따이학살 위령관


낌따이학살 희생자 명단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낌따이학살 피해 지역은 현재 지아라이성 안년박동(phường An Nhơn Bắc, tỉnh Gia Lai)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