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이티농(Bùi Thị Nồng), 1957년생
▶ 1966년 5월 14일(양력), 푸옌성 동호아시 호아히엡남구 토럼학살(Vụ thảm sát Thọ Lâm, phường Hòa Hiệp Nam, thị xã Đông Hòa, tỉnh Phú Yên) 유가족
▶ 1966년 당시 부이티농의 가족은 토럼 마을의 '쏨소이(xóm Soi)'에 살고 있었다. 전쟁의 불길이 거세지며 많은 이들이 피난을 떠났지만, 조상 대대로 일궈온 논밭이 삶의 전부였던 농의 가족과 다수의 주민은 마을을 차마 떠나지 못한 채 묵묵히 땅을 일구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이티농(당시 9세)은 토럼학살로 오빠 부이반루언(16세)과 여동생 부이티딴(2세)을 잃었다. 사건 당일 아침, 두 살배기 막냇동생을 등에 업고 논둑에 서 있던 농은 도랑 너머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한국군을 보고 놀라서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은 집집마다 수색하며 주민들을 공터로 불러 모았다. 그런데 한 민가에서 유격대가 숨어 있는 방공호가 발견되었고, 그가 던진 수류탄에 남베트남군 통역병이 사망하고 한국군 몇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한국군은 공터에 모여 있던 무고한 주민들을 향해 거치대가 달린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농과 어머니 부이티껌(44세), 그리고 두 여동생 부이티찐(6세)과 부이티딴은 총구의 방향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엎드려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고 죽은 척하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총알은 비껴갔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두 살배기 아기 딴(Tản)이 몸을 일으켰다가 그만 날아온 총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격 시작 전에 도망쳤던 오빠 루언은 들판에서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일주일 후 감염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오빠 부이반뉴(14세)는 당일 아침 소를 몰고 마을 밖에 있어 화를 면했다. 사격을 마치고 한국군이 집들에 불을 지르자 농의 가족은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 이를 발견한 한국군이 다시 총을 쏘았으나, 어머니만 어깨에 경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시 공터에 모여 있던 주민들을 향해 참혹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고, 그 외에도 도망치던 주민 5~6명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농의 가족은 인근 푸럼 마을로 이주했다. 피난민이 되어 남의 집에 얹혀살며 어머니는 날품팔이를, 아버지는 건설 노동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다. 생전에 어머니는 그날의 참혹했던 기억을 자식들에게 자주 들려주었고, 1992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이티농은 토럼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쳤고, <한겨레21>과 다큐멘터리 <미친 시간> 등을 통해 토럼학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증언해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만류하는 이웃들도 있었으나, 그는 진실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기꺼이 아픈 기억을 꺼내어 들려주었다. 이제 은퇴한 교사인 농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면서도, ”전쟁이 반복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간절한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 증언 출처: 2026년 2월 24일, 4월 1일 부이티농 인터뷰 (진행: 구수정,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4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 붕따우·토럼학살 위령비
▶ 토럼학살 희생자 명단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피해 지역 명칭은 현재 닥락성 부온호시 호아히엡동(phường Hòa Hiệp, thị xã Buôn Hồ, tỉnh Đắk Lắk)으로 편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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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이티농(Bùi Thị Nồng), 1957년생
▶ 1966년 5월 14일(양력), 푸옌성 동호아시 호아히엡남구 토럼학살(Vụ thảm sát Thọ Lâm, phường Hòa Hiệp Nam, thị xã Đông Hòa, tỉnh Phú Yên) 유가족
▶ 1966년 당시 부이티농의 가족은 토럼 마을의 '쏨소이(xóm Soi)'에 살고 있었다. 전쟁의 불길이 거세지며 많은 이들이 피난을 떠났지만, 조상 대대로 일궈온 논밭이 삶의 전부였던 농의 가족과 다수의 주민은 마을을 차마 떠나지 못한 채 묵묵히 땅을 일구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이티농(당시 9세)은 토럼학살로 오빠 부이반루언(16세)과 여동생 부이티딴(2세)을 잃었다. 사건 당일 아침, 두 살배기 막냇동생을 등에 업고 논둑에 서 있던 농은 도랑 너머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한국군을 보고 놀라서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은 집집마다 수색하며 주민들을 공터로 불러 모았다. 그런데 한 민가에서 유격대가 숨어 있는 방공호가 발견되었고, 그가 던진 수류탄에 남베트남군 통역병이 사망하고 한국군 몇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분노한 한국군은 공터에 모여 있던 무고한 주민들을 향해 거치대가 달린 기관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농과 어머니 부이티껌(44세), 그리고 두 여동생 부이티찐(6세)과 부이티딴은 총구의 방향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엎드려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고 죽은 척하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총알은 비껴갔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두 살배기 아기 딴(Tản)이 몸을 일으켰다가 그만 날아온 총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격 시작 전에 도망쳤던 오빠 루언은 들판에서 총을 맞아 부상을 당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일주일 후 감염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오빠 부이반뉴(14세)는 당일 아침 소를 몰고 마을 밖에 있어 화를 면했다. 사격을 마치고 한국군이 집들에 불을 지르자 농의 가족은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 이를 발견한 한국군이 다시 총을 쏘았으나, 어머니만 어깨에 경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당시 공터에 모여 있던 주민들을 향해 참혹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고, 그 외에도 도망치던 주민 5~6명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농의 가족은 인근 푸럼 마을로 이주했다. 피난민이 되어 남의 집에 얹혀살며 어머니는 날품팔이를, 아버지는 건설 노동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이어갔다. 생전에 어머니는 그날의 참혹했던 기억을 자식들에게 자주 들려주었고, 1992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부이티농은 토럼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로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쳤고, <한겨레21>과 다큐멘터리 <미친 시간> 등을 통해 토럼학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증언해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만류하는 이웃들도 있었으나, 그는 진실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기꺼이 아픈 기억을 꺼내어 들려주었다. 이제 은퇴한 교사인 농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면서도, ”전쟁이 반복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간절한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
▶ 증언 출처: 2026년 2월 24일, 4월 1일 부이티농 인터뷰 (진행: 구수정,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4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 붕따우·토럼학살 위령비
▶ 토럼학살 희생자 명단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피해 지역 명칭은 현재 닥락성 부온호시 호아히엡동(phường Hòa Hiệp, thị xã Buôn Hồ, tỉnh Đắk Lắk)으로 편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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