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남성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 방공호 학살 피해자 판티도안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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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티도안 (Phan Thị Đoàn), 1956년생

▶ 1969년 10월 03일(음력), 꽝남성 탕빈현 빈즈엉사 1촌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 방공호 학살(Vụ thảm sát tại hầm, vườn và nhà ông Nguyễn Trái, thôn 1, xã Bình Dương, huyện Thăng Bình, tỉnh Quảng Nam) 유가족

▶ 판티도안(당시 13세)은 빈즈엉사 1촌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 방공호학살 피해생존자다. 당시 피해로 본인은 코에 큰 부상을 입었고 어머니와 두 동생이 목숨을 잃었으며 언니와 남동생도 부상을 입었다. 
   당일 아침 판티도안과 가족들은 수많은 비행기와 헬리콥터들이 마을 하늘에 출몰한 것을 보고 집을 떠나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으로 건너갔다. 그곳에 커다란 방공호가 있어 비상시 대피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마을로 진입한 한국군이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한국군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보이는 데로 총을 난사했다. 응우옌짜이 할아버지 집 마당에 앉아 있던 주민들이 총탄에 즉사하거나 다쳤고 근처 방공호로 피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니 응오티히엡(35세), 남동생 판득마우(10세), 여동생 판티바이(7세)는 총에 맞아 죽었고 판티도안과 언니 판티본, 오빠 응오득티는 부상을 당했지만 방공호로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한국군이 떠난 후 판티도안은 방공호 밖으로 나와 쓰러져 있는 수많은 주검들을 보았다. 죽은 어머니와 두 동생도 있었는데 세 사람 모두 각각 다른 지점에 있었다. 생존자들은 시신들을 가족별로 모았고 돗자리로 시신을 덮은 채 시신 수습을 도와줄 이들이 오길 기다렸다. 한국군이 완전히 떠난 후 저녁 즈음이 되었을 때 유격대원과 다른 유가족들이 마을로 돌아와 시신을 수습했다. 유격대원이었던 아버지 판득테(44세)는 사건 당시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강 건너 마을에 가 있었고 피해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왔다. 판티도안은 지금도 돗자리에 덮여 있는 가족들의 시신을 지키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당시의 슬픔과 두려움을 잊지 못한다.
   판티도안은 학살 피해 당시 총탄이 한쪽 콧구멍을 관통하는 부상을 당했다. 판티도안과 언니, 오빠는 유격대의 도움을 받아 독일의료선으로 후송되어 3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회복된 후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피해 직후 집 근처에 희생된 가족들의 무덤을 만들었으나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무덤이 존재하지 않았다. 종전 이후 그는 계속 빈즈엉사에 머물며 농사를 지으며 힘겹게 살았고 인터뷰 당시는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학살 피해 증언을 마치며 그는 이제는 지나간 과거를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고 한국군 학살 피해를 부정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더는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 증언 출처: 2023년 3월 23일 인터뷰(진행 호앙티하인띠엔)

▶ 사진: 2024년 7월 28일, 몽투투평화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