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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사업학살 60주기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 토럼, 빈안, 낌따이, 쯔엉탄 마을 이야기

2026-03-20
조회수 192



학살 60주기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 토럼, 빈안, 낌따이, 쯔엉탄 마을 이야기 - 



* 2026년 베트남 중부의 수많은 마을들이 학살 피해 60주기를 맞이합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지난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중부 지아라이성과 닥락성(구 빈딘성과 푸옌성)을 방문했습니다. 빈안학살 60주기에 참석했고 지원사업, 추도사업, 아카이브 관련 인연을 맺은 마을과 피해자·유가족 분들을 뵈었습니다. 베트남을 다녀온 한베평화재단의 발걸음과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응우옌흐우까 님이 유품 '한국군 탄환'을 기증해주셨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이 꿈꾸는 베트남전쟁 기록관에서 이 탄환이 전시되길 바랍니다. 
그때 저도 한국을 방문해 제가 기증한 토럼학살 유가족들의 유품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토럼학살 유가족 응우옌흐우까(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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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럼학살 유가족 응우옌흐우까(좌) 님과 재단에 기증해주신 한국군 탄환(우)


2019년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전 아카이브 기록전을 위해 응우옌흐우까 님은 희생자 무덤에서 발굴해 간직하고 있던 한국군 탄환을 한국에 보내주셨습니다.


토럼학살 60주기를 맞이하는 2026년, 재단이 마을을 방문해 응우옌흐우까 님을 뵈었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까 님은 더 많은 한국 시민들이 베트남의 민간인학살 피해유가족들의 기억과 진실을 기억하고 연대해주길 바란다며 유품의 기증을 밝혀주셨습니다.


까 님은 기록관 건립을 꿈꾸는 재단을 응원한다며,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시민들이 마을 방문과 지원사업을 통해 토럼과 같은 피해 마을의 상처를 치유하고 연대하는 일에도 관심 가져주길 부탁한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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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을 따스하게 맞아주신 응우옌흐우까 님께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살 피해(1966.5.14) 당시 7세였던 까 님은 어머니와 함께 사건 장소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했지만 토럼 마을의 수많은 일가친척의 처참한 죽음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2012년 희생자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한국군의 탄환 5발을 ‘그날의 증거’로 간직하고 계셨고, 너무도 소중한 유품을 한베평화재단에 기증을 해주셨습니다. 까 님께서 보내주신 평화의 마음에 너무도 큰 감사함을 느낍니다. 


2월 24일부터 27일 동안 재단은 베트남 중부 지아라이성, 닥락성(구 빈딘성, 푸옌성)을 방문해 학살 60주기를 맞이하는 피해 마을 관련 추도행사 참여, 지원사업 논의, 아카이브 작업 등을 이어갑니다. 시민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토럼학살을 증언해주신 세 오누이를 뵈었습니다


"당시 저는 9살이었어요. 그날의 일을 모두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도 사건을 겪었고, 생전에 어머니께서 학살 때 일어난 일들을 자주 들려주셔서 형제 자매 모두가 잘 기억할수 밖에요. " 
- 토럼학살 피해생존자 부이티농


토럼학살 피해생존자 부이티농과 여동생 부이티찐, 오빠 부이반뉴를 만났습니다.  부이티농 님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관련 다큐 [미친시간](2004년, 이마리오 감독)에 출연해 학살 피해를 증언한 인연이 있습니다. 영화 촬영 당시 교사였던 그는 현재는 퇴직해 형제 자매들과 토럼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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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럼학살 피해생존자 부이티농(좌) 님과 여동생 부이티찐(우) 님


한베평화재단이 부이티농 님을 오래간만에 뵙고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20여년 만에 구수정 상임이사와 재회하여 서로 반가움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재단은 부이티농 님에게 학살 피해 관련 증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고 같은 학살의 피해생존자이자 유가족인 여동생 찐 님과 오빠 뉴 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부이티찐 님은 재단이 설 연휴 때마다 설 인사 편지와 선물을 보내줘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찐 님은 "엄마가 학살 때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때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죽은 오빠와 막내 동생처럼 우리 모두 다 죽었을 거예요. 그때 내가 6살이라 어렸지만 죽은 척하고 있어야 산다는 걸 알고 입도 뻥끗하지 않았죠"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매년 설 맞이 편지와 선물로 한국 사람들이 관심과 마음을 전해줘 정말 고맙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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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부이반뉴(좌) 님과 아내


오늘 만남을 계기로 한베평화재단은 토럼학살에서 살아남은 세 자매 부이티농, 부이티찐, 부이반뉴의 증언과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재단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준 세 분에게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낌따이 마을 유가족들과 한베평화재단이 만났습니다 



2025년 1월, 재단은 낌따이학살 유가족들의 요청에 응답하여 낌따이촌 문화센터 지원사업을 완료해 센터에 필요한 시청각설비, 냉방시설, 각종 기자재를 지원했습니다. 


낌따이학살 60주기를 맞는 올해, 재단은 낌따이촌 문화센터를 방문해 유가족들을 찾아뵈었습니다. 마을 분들은 재단의 지난 지원사업으로 문화센터의 환경이 크게 개선되어 주민들이 크게 만족했고, 얼마전 진행한 낌따이학살 60주기에 행사 때에도 재단이 지원한 의자 100개를 유가족과 주민들이 정말 요긴하게 사용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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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따이촌 문화센터에서 유가족분들을 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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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과 마을분들의 환한 미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민위원회도 재단을 반겨주셨고 낌따이학살 60주기 위령제 이야기(우측 아래 사진)를 소상히 들려주셨습니다.


2월 초에 있었던 낌따이 60주기 행사에 한베평화재단이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자, 유가족은 물론 인민위원회 관계자와 주민들의 관심 속에 60주기 행사를 무사히 치루었고, 특히 낌따이학살 유가족 대표의 추도사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원사업 이후 꼭 한번 낌따이 마을을 찾겠다는 약속을 이번 방문으로 지켰습니다. 피해유가족분들의 증언을 만난 이후 진행한 추도사업(위령제 조화 보내기), 그후 이어진 지원사업(문화센터 지원)과 마을 방문! 다음에는 낌따이 에 어떠한 평화의 발걸음이 이어질까요. 재단이 낌따이 마을에서 마주한 유가족분들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을 전하며, 재단을 응원해주시는 모든 시민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빈안학살 60주기에 함께 했습니다


빈안학살 60주기를 맞아 열린 따이한 제사(2.25)와 위령제(2.26.)에 추모와 기억 그리고 연대의 마음이 모였습니다. 


평안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 ‘빈안(Bình An)’에서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 최대 규모의 민간인학살 피해가 벌어졌습니다.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 15개 지점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피해로 주민 1,0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종전 이후 빈안은 서쪽의 영광이란 뜻인 ‘떠이빈(Tây Vinh)’으로 지명이 바뀌었는데, 202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빈안’이란 옛 지명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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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 전날 고자이학살 위령비 앞에서 열린 빈안학살 따이한 제사


학살 60주기를 맞아 빈안학살을 대표하는 고자이학살 유적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고자이학살 위령비를 개보수해 위령비 건립 이전의 추도시설이었던 집단묘지의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유적지의 중앙에 있었던 빈안학살 위령제단과 학살 피해를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는 철거되었고 15개 지점에서 벌어진 학살 피해를 ‘향’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조형물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희생자 추모 제단과 학살 피해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전시하는 빈안학살 희생자 추모사당을 건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며 2026년 말에 완공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60주기를 맞아 한국에서는 한베평화재단,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이주민과함께,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사진작가 이재갑,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가 빈안학살 따이한 제사와 위령제에 함께 해 빈안에 대한 추모와 연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참석자들은 빈안이 60주기를 맞아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에 더 큰 방점을 두고 1년 사이에 추모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것을 마주하며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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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오전 8시에 열린 빈안학살 60주기 위령제


60주기를 맞아 빈안을 방문한 한베평화재단은 지난 20년간 한국 시민 사회에 빈안의 진실을 증언하고 2015년에 한국을 방문했었던 피해생존자 응우옌떤런 님(1951~2020)의 묘지를 찾아 향불과 애도의 술잔을 올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빈안학살 60주기를 맞아 한국 시민사회가 더 깊게 성찰하고 나아가야 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전쟁도 격렬하지만 평화 역시 격렬하구나!” 


2015년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떤런 님이 하셨던 말씀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전쟁 이후의 평화와 정의를 회복하는 과정 또한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온몸으로 전하셨던 런 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며 한베평화재단이 나아갈 길을 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빈안학살 60주기에 추모의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이주민과함께
정의기억연대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
한베평화재단
호아빈의리본
한국의 시민들(국화꽃 60송이)


* 빈안학살 피해 지역 행정구역 변경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 지아라이성 빈안사



빈안학살 유가족 흐엉 할머님을 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 빈안학살 유가족 팜티흐엉(78세)


빈안학살 60주기(2.26) 위령제가 있었던 그날 오후, 뀌년시에 살고 있는 팜티흐엉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모두 15개 지점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졌던 1966년 빈안학살. 당시 18세였던 흐엉 할머니는 까인븜 들판 학살과 고자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할머니께서는 1966년, 빈안학살 피해로 여동생을 비롯해 10여 명의 친인척을 잃는 참혹한 일을 겪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과의 인연은 202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두 번의 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기억을 재단에 증언해 주셨고, 재단은 그 이야기를 아카이브 자료와 에세이로 기록했습니다. 2025년에는 서울대학교 학보사가 할머니를 직접 만나 특집 기사로 그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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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평화재단 활동가들과 베트남전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예술가분들이 흐엉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이날 만남에는 베트남전쟁을 주제로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예술가들도 함께했습니다.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 극단 종이로만든배, 바디퍼커션 녹녹에서 활동하는 분들로, 공연 예술과 평화운동을 함께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남편 아인 할아버지는 미군과는 또 달랐던 한국군의 잔혹함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흐엉 할머니는 집안 곳곳에 있던 먹거리를 계속 내어주시며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따뜻하게 챙겨주셨습니다. 


빈안학살 따이한 제사와 위령제에 참석하며 무거워졌던 마음이, 할머니와의 만남 속에서 조금은 위로받고 치유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날 할머니께서는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의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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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미소와 따스한 환대로 한베평화재단을 반겨주신 팜티흐엉 할머니


“빈안학살 사건 이후 뀌년에 피난을 와서 살았어요. 전쟁 시기 뀌년에서 한국군을 만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정말 화가 많이 났었어요.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우리 집에 한베평화재단 활동가가 찾아왔어요. 만나보니 남자였고 짧은 머리에 군인처럼 생겨서 처음에는 좀 무서웠어요. 그후 재단이랑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작년에는 한국의 대학생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 명 한 명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이 끝난 지도 오래되었고, 나를 이렇게 찾아와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참 의미가 있다고요.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쯔엉탄학살 유가족과 쯔엉탄 마을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1966년 9월, 한국군 맹호부대의 학살로 주민 58명이 목숨을 잃은 지아라이성(구 빈딘성) 쯔엉탄 학살. 14가구가 피해를 입었고, 그중 4가구는 한 가족도 남지 않은 채 몰살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던 방공호는 집단묘지가 되었고, 그 위에 지금은 위령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위령관에는 학살 피해 사실이 한글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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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엉탄학살 유가족 응우옌반타인 님


유가족 응우옌반타인 님(56세)을 만났습니다. 희생자 명단에 있는 응우옌안더우(44세)는 그의 작은아버지입니다. 작은아버지와 숙모(43세), 그리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네 아이까지 모두 희생되었습니다. 타인 님은 조카로서 매년 기일마다 향을 올리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타인 님은 사건 이후에 태어났지만, 당시 시신을 수습했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학살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 기억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쯔엉탄학살 위령관 옆에 살고 계시며, 기일마다 한국에서 보내는 조화를 받아주신 인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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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엉탄학살 위령관 내의 위령비, 집단묘지, 한국어/영어로 적힌 안내문


쯔엉탄학살 60주기를 맞는 올해, 한베평화재단은 쯔엉탄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깟띠엔 초등학교에 컴퓨터 교실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존 컴퓨터 대부분이 노후하거나 고장 난 상태여서 교체가 시급하며, 필수 과목인 컴퓨터 수업 운영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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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엉탄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과 지원을 요청받은 컴퓨터 교실


유가족의 증언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던 쯔엉탄에서 타인 님을 만난 시간은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동시에, 쯔엉탄 마을 아이들에게 온전한 컴퓨터 교실을 선물해야 한다는 한베평화재단의 새로운 ‘과제’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쯔엉탄의 역사와 진실을 알리고, 쯔엉탄의 오늘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한베평화재단은 후원자와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속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글 | 짜노
사진 |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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