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8화]
시민의 힘으로 공식 기억에 균열을 내는 법
백 번 넘게 전쟁기념관을 드나든 평화활동가의 기록
신재욱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8화 마지막 글은 10년째 전쟁기념관의 변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신재욱 활동가의 글이다. |
시민의 힘으로 전쟁기념관을 바꾼 경험
내가 일하고 있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전쟁기념관 전시를 비판적으로 해설하는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투어를 진행해 오고 있다. 본격적으로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먼저 한국전쟁 70년을 앞두고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받고, 전쟁 기억·학살·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3회의 연속 토론회를 했다. 2020년에는 민간인과 전쟁 피해자의 관점에서 경험한 한국전쟁의 서사를 담은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이 간접적으로 전쟁기념관 전시를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관련 전시 내용 변화를 위한 정책제안서>는 직접적으로 전쟁기념관 전시 내용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쟁기념관의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이었다. 총 11개 장으로 구성된 제안에서 전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추가되어야 할 전시 내용을 제안했다. 그렇게 총 43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2020년 6월 25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서 인권과 평화를 말하는 곳으로'라는 구호를 내걸며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국방부에 정책제안서를 제출했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전쟁기념관의 전시 내용 변화를 촉구한 기자회견(2020.6.25.)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다행히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전쟁기념관 측에서 정책제안서의 일부 수정 제안을 받아들여 6·25전쟁실Ⅰ의 제주4·3과 여순사건 관련한 전시 판넬 내용을 바꾼 것이다. 수정되기 전 전시물의 제목은 '남한의 전투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좌익과 게릴라의 무장투쟁'이었다. 전시 내용의 골자는 '좌익세력'이 주도해 무장투쟁을 일으키고 북한과 함께 후방지역을 어지럽혀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 내부에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의 소모를 유도"했다는 내용이었다. 노골적으로 제주4·3과 여순사건을 사실상 '빨갱이'가 의도적으로 전쟁 전 남한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주장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수정된 후의 게시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6·25전쟁 이전 남한 내의 무력충돌과 국군의 전력 약화'라는 이름으로 의도성을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두 사건으로 인해 국군의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은 그대로다.

전쟁기념관의 6·25전쟁실Ⅰ에 전시된 제주4·3과 여순사건 관련 전시의 변경 전(왼쪽)과 후(오른쪽)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캠페인 초기부터 함께 했던 자문위원들은 오히려 전시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물론 아쉽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자문위원으로 만났던 한 분은 전쟁기념관을 고쳐 쓰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예 허물고 다시 지어야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활동 초기에는 현실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어쩌면 정말 아예 다시 짓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전쟁기념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계속 남아 있다.
'공식기억'의 진부함은 성찰의 부재
못해도 전쟁기념관에 백 번은 넘게 갔을 것이다. 다크투어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2020년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매주 진행했던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거리 캠페인, 전시 변경사항 등을 체크하는 모니터링 등등. 전쟁기념관 전시가 지닌 태도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진부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진부함'이란 결국 성찰의 부재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밝혔음에도 관련한 어떤 가해의 내용도 들어있지 않은 것에 대해 '후안무치'의 이데아가 있다면, 전쟁기념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주제를 넓혀가면서는 전쟁 시기 최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했던 병사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없는 점, 실패했다고 결론이 난 작전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정당화하는 아전인수격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철저하게 전쟁 지도부 중심의 전시였다. 거기에 덧붙여 육탄10용사 같은 전쟁 동원 프로파간다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적'을 강조하며 평화 구축의 수단을 전쟁으로만 좁히는 호전주의까지.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Ⅰ의 육탄10용사 동상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이와 같은 태도를 개념화한 것이 바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지도부를 제외하고 병사나 민간인을 비롯한 다른 전쟁의 행위자들은 철저하게 주체성을 소거당한 채 전시되어 있다. 문제는 이처럼 대상화된 전쟁의 기억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공식기억'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안적인 전시의 공간은 너무나 적다. 대전 골령골에 짓기로 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은 2016년부터 기획됐지만 아직까지 착공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학살이 있었던 많은 지역에 유족회의 요청으로 지자체가 세운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학살지 유해발굴 후 세운 안내판이 있지만 이는 사실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에 위치하는 등 기억 공간으로 인지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예전 용산공원을 만든다는 논의가 한창일 때 한국전쟁유족회에서 용산공원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나온 또 하나의 의견은 전쟁기념관에 그 위령비를 세우는 것이었다. 가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전쟁기념관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도구로 이용되는 그런 위령비가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있었던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위령비가 전쟁기념관에 들어선다면 전쟁기념관의 많은 전시물에도 균열이 생길 것이다.
전쟁기념관을 고쳐쓸 수 있을까?
작년 10월, 베트남 평화기행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피해생존자들을 만나며 목격한 것은 '진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체적인 삶이었다. 2021년,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의 학살지를 찾아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학살지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 '소외'된 곳에 위치했다. 대부분의 학살지에서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사회에서 '학살'이 어떻게 잊혔는지를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청주 옥녀봉 학살지 안내판이 휘어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2025년 11월)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기념관을 허물 수 없다면, 고쳐쓰는 수밖에 없다. 전쟁기억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우리에게는 전쟁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문장을 꼭 넣었다.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야말로 한국전쟁 '공식 기억'을 상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의 공식 기억은 진부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기억은 결국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기억은 일종의 체험이다. 또한 무엇을 체험하느냐에 따라 기억은 바뀔 수 있다. 어떻게 구체적인 전쟁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가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에 항의하는 '거짓' 포스트잇 액션을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7월부터 탄탄이는 '거짓' 티셔츠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과 홍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 한베평화재단
같은 차원에서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가 진행한 채명신 장군의 훈령 전시물에 대한 '거짓' 포스트잇 액션은 사람들에게 어떤 체험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팻말에 '거짓'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동안 전시를 관람한 이들 중 몇몇은 어떤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해 부러웠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10년 가까이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긴 했지만, 너무 '얌전한' 활동만 해온 것은 아닌가 반성도 했다. 전쟁기념관에 갖가지 균열을 만들 수 있도록 더 많이 궁리하고 도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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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8화]
시민의 힘으로 공식 기억에 균열을 내는 법
백 번 넘게 전쟁기념관을 드나든 평화활동가의 기록
신재욱
시민의 힘으로 전쟁기념관을 바꾼 경험
내가 일하고 있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전쟁기념관 전시를 비판적으로 해설하는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투어를 진행해 오고 있다. 본격적으로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먼저 한국전쟁 70년을 앞두고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받고, 전쟁 기억·학살·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3회의 연속 토론회를 했다. 2020년에는 민간인과 전쟁 피해자의 관점에서 경험한 한국전쟁의 서사를 담은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 —허락되지 않은 기억〉을 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이 간접적으로 전쟁기념관 전시를 비판하는 것이었다면,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관련 전시 내용 변화를 위한 정책제안서>는 직접적으로 전쟁기념관 전시 내용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쟁기념관의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이었다. 총 11개 장으로 구성된 제안에서 전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추가되어야 할 전시 내용을 제안했다. 그렇게 총 43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2020년 6월 25일,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서 인권과 평화를 말하는 곳으로'라는 구호를 내걸며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국방부에 정책제안서를 제출했다.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전쟁기념관의 전시 내용 변화를 촉구한 기자회견(2020.6.25.)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다행히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전쟁기념관 측에서 정책제안서의 일부 수정 제안을 받아들여 6·25전쟁실Ⅰ의 제주4·3과 여순사건 관련한 전시 판넬 내용을 바꾼 것이다. 수정되기 전 전시물의 제목은 '남한의 전투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좌익과 게릴라의 무장투쟁'이었다. 전시 내용의 골자는 '좌익세력'이 주도해 무장투쟁을 일으키고 북한과 함께 후방지역을 어지럽혀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 내부에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의 소모를 유도"했다는 내용이었다. 노골적으로 제주4·3과 여순사건을 사실상 '빨갱이'가 의도적으로 전쟁 전 남한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주장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수정된 후의 게시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6·25전쟁 이전 남한 내의 무력충돌과 국군의 전력 약화'라는 이름으로 의도성을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두 사건으로 인해 국군의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은 그대로다.
전쟁기념관의 6·25전쟁실Ⅰ에 전시된 제주4·3과 여순사건 관련 전시의 변경 전(왼쪽)과 후(오른쪽)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캠페인 초기부터 함께 했던 자문위원들은 오히려 전시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물론 아쉽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변화는 생기지 않았다. 자문위원으로 만났던 한 분은 전쟁기념관을 고쳐 쓰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예 허물고 다시 지어야한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활동 초기에는 현실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어쩌면 정말 아예 다시 짓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전쟁기념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계속 남아 있다.
'공식기억'의 진부함은 성찰의 부재
못해도 전쟁기념관에 백 번은 넘게 갔을 것이다. 다크투어 '전쟁기념관에서 평화를 말하다', 2020년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매주 진행했던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거리 캠페인, 전시 변경사항 등을 체크하는 모니터링 등등. 전쟁기념관 전시가 지닌 태도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진부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진부함'이란 결국 성찰의 부재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밝혔음에도 관련한 어떤 가해의 내용도 들어있지 않은 것에 대해 '후안무치'의 이데아가 있다면, 전쟁기념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주제를 넓혀가면서는 전쟁 시기 최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했던 병사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없는 점, 실패했다고 결론이 난 작전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정당화하는 아전인수격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철저하게 전쟁 지도부 중심의 전시였다. 거기에 덧붙여 육탄10용사 같은 전쟁 동원 프로파간다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적'을 강조하며 평화 구축의 수단을 전쟁으로만 좁히는 호전주의까지.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Ⅰ의 육탄10용사 동상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이와 같은 태도를 개념화한 것이 바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다. 전쟁기념관은 전쟁지도부를 제외하고 병사나 민간인을 비롯한 다른 전쟁의 행위자들은 철저하게 주체성을 소거당한 채 전시되어 있다. 문제는 이처럼 대상화된 전쟁의 기억이 한국사회 전반에서 '공식기억'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안적인 전시의 공간은 너무나 적다. 대전 골령골에 짓기로 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은 2016년부터 기획됐지만 아직까지 착공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학살이 있었던 많은 지역에 유족회의 요청으로 지자체가 세운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학살지 유해발굴 후 세운 안내판이 있지만 이는 사실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에 위치하는 등 기억 공간으로 인지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예전 용산공원을 만든다는 논의가 한창일 때 한국전쟁유족회에서 용산공원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 나온 또 하나의 의견은 전쟁기념관에 그 위령비를 세우는 것이었다. 가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전쟁기념관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도구로 이용되는 그런 위령비가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있었던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위령비가 전쟁기념관에 들어선다면 전쟁기념관의 많은 전시물에도 균열이 생길 것이다.
전쟁기념관을 고쳐쓸 수 있을까?
작년 10월, 베트남 평화기행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피해생존자들을 만나며 목격한 것은 '진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체적인 삶이었다. 2021년,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의 학살지를 찾아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학살지 대부분은 문자 그대로 '소외'된 곳에 위치했다. 대부분의 학살지에서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사회에서 '학살'이 어떻게 잊혔는지를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청주 옥녀봉 학살지 안내판이 휘어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2025년 11월)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기념관을 허물 수 없다면, 고쳐쓰는 수밖에 없다. 전쟁기억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우리에게는 전쟁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문장을 꼭 넣었다.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야말로 한국전쟁 '공식 기억'을 상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의 공식 기억은 진부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기억은 결국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기억은 일종의 체험이다. 또한 무엇을 체험하느냐에 따라 기억은 바뀔 수 있다. 어떻게 구체적인 전쟁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가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에 항의하는 '거짓' 포스트잇 액션을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7월부터 탄탄이는 '거짓' 티셔츠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과 홍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 한베평화재단
같은 차원에서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가 진행한 채명신 장군의 훈령 전시물에 대한 '거짓' 포스트잇 액션은 사람들에게 어떤 체험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팻말에 '거짓'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동안 전시를 관람한 이들 중 몇몇은 어떤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해 부러웠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10년 가까이 전쟁기념관 변화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긴 했지만, 너무 '얌전한' 활동만 해온 것은 아닌가 반성도 했다. 전쟁기념관에 갖가지 균열을 만들 수 있도록 더 많이 궁리하고 도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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