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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읽기[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6화] '멋진' 전쟁 이야기는 무엇을 감추는가

2026-07-09
조회수 85


[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6화]

'멋진' 전쟁 이야기는 무엇을 감추는가

- 킹스맨부터 전쟁기념관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전쟁의 얼굴 -

전홍식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전쟁을 구경하러 간 사람들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될 무렵, 워싱턴의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전투를 구경하러 나갔다고 합니다. 곧 끝날 싸움, 눈앞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장면, 어쩌면 구경할 만한 장관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쟁은 구경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포성과 총성, 비명과 죽음이 뒤섞인 전투는 그들이 기대한 멋진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짧게 끝날 것 같던 전쟁은 4년 동안 이어졌고, 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A

전쟁은 멀리서 보면 장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오래전부터 많은 사회는 전쟁을, 그리고 군인을 멋진 존재로 포장해 왔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용감한 병사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줄지어 행군하는 모습, 깃발, 군악대, 훈장, 전차와 전투기, 반짝이는 총기와 군복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은 옳은 것만 따르지 않습니다. 멋진 것에도 마음을 빼앗깁니다. 전쟁은 "나라를 지킨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 "사람들을 구한다"는 말로 다가오지만, 그 말 속에도 멋짐은 들어 있습니다.


스타일리시 액션으로 기억되는 <킹스맨> 시리즈. 하지만 그 안에는 전쟁의 상처와 환멸도 담겨 있습니다.

스타일리시 액션으로 기억되는 <킹스맨> 시리즈. 하지만 그 안에는 전쟁의 상처와 환멸도 담겨 있습니다. ⓒ 20세기 스튜디오


그 멋짐에 이끌리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세련된 정장을 입은 신사 에이전트가 활약하는 <킹스맨> 시리즈입니다. 그중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제1차 세계대전 시대를 무대로, 킹스맨이 처음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이야기는 한 젊은이로부터 시작됩니다. 귀족의 자제인 콘래드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전쟁터로 나가려 합니다. 그는 전쟁을 '정의를 지키는 싸움'이라 생각했고, 결국 신분을 숨긴 채 다른 이름으로 전장에 나갑니다. 하지만 실제 전쟁터는 그가 상상한 것과 달랐습니다. 그곳에는 참호와 포격, 혼란과 오인, 죽음만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그의 마음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결국 스파이로 오인되어 아군에게 사살되고 맙니다. 전쟁은 청년의 용기를 알아보지 않습니다. 전쟁은 그가 품었던 정의로운 마음조차 쉽게 짓밟습니다.


허구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J. R. R. 톨킨은 젊은 시절 친구들과 문학과 언어와 예술을 이야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호 속에서 그는 병에 걸려 죽을 뻔 했고,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전쟁은 선의 승리로 끝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프로도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합니다. 전쟁은 승리나 패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의 상처는 그것을 통과한 사람의 마음속에 계속 남습니다.


'강한 전사' 람보가 가린 것들


전쟁을 멋지게 묘사한 많은 이야기는 이런 상처를 가리곤 합니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를 정직하게 담으려 한 작품조차 다르게 소비될 수 있습니다. 영화 <람보: 퍼스트 블러드>의 주인공은 베트남전에서 상처 입고 돌아온 군인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 모습에서 상처받은 귀환병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쟁의 고통은 때로 강한 전사의 이미지로 소비됩니다. < Rambo: First Blood > 포스터

이 모습에서 상처받은 귀환병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쟁의 고통은 때로 강한 전사의 이미지로 소비됩니다.

< Rambo: First Blood > 포스터 ⓒ 오라이언 픽처스


하지만 우리가 대중문화 속에서 기억하는 람보는 조금 다릅니다. 포스터 속의 람보는 머리띠를 두르고 거대한 총을 든 강인한 전사로 보입니다. 후속작과 게임으로 갈수록 이 이미지는 더 강해졌습니다.


<플래툰> 역시 베트남전의 광기와 도덕적 붕괴를 보여주지만, 강렬한 이미지 하나만 따로 소비되면 전쟁의 지옥보다 장렬한 전사의 비장함이 앞설 수 있습니다. 반전 콘텐츠조차 이미지로 소비되는 순간, 전쟁의 비극은 다시 멋진 장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멋진 이미지는 무엇을 가리는가


전쟁을 다룬 많은 콘텐츠의 문제는, 전쟁이 너무 쉽게 멋진 이미지로 소비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멋진 것을 동경하고 그들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곤 합니다. 특히 영웅 이야기는 이러한 동경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총을 들고 악당을 물리치는 카우보이의 모습은 오랫동안 강한 남성성과 영웅성의 이미지로 소비되었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나 빠른 총솜씨로 악당을 쓰러뜨리고 다시 떠나가는 영웅.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총을 들고 악당을 물리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총잡이의 이미지를 강하게 남긴 배우 중에 율 브리너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담배를 문 모습으로도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담배를 문 그의 모습은 한때 어른 남자의 멋처럼 보였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담배를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훗날 율 브리너는 폐암으로 죽어가며 "부디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라는 금연 공익광고를 남겼습니다. 담배가 멋진 남자의 상징처럼 보였을 때, 사람들은 그 뒤의 폐암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차와 전투기, 반짝이는 총기가 멋지게 보일 때, 그 무기가 향했던 사람들의 죽음과 상처는 쉽게 가려집니다.


승리의 환상을 깨뜨린 영화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로널드 레이건이 떠오릅니다. 배우 출신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그는 1980년대 냉전의 한복판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악을 막아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라는 메시지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강한 미국에 대한 신뢰와, 필요하다면 싸워서라도 악을 물리쳐야 한다는 믿음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국인의 마음에 강렬한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1983년 11월 20일, 미국 ABC에서 TV 영화 <그날 이후>가 방영되었습니다. 약 1억 명이 본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핵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핵전쟁 이후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에서 전쟁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벌어지고 끝납니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뒤에 시작됩니다. 집은 사라지고, 병원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방사능과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승리라는 말 자체가 허망해지는 세계만 남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의 위험을 덜어낼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전쟁을 멋지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무엇을 키우게 될까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의 위험을 덜어낼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전쟁을 멋지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무엇을 키우게 될까요? ⓒ The Day After, ABC TV관련사진보기


그날 수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며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당시 레이건도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소련을 악으로 규정하고, 강한 미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상상이 퍼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의롭기에 승리할 것이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당시 미국인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악의 제국을 멸하자'라는 기치 아래, 그들은 정의로운 환상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핵전쟁이 벌어져도 그들만은 살아남아 영광을 누릴 거라고 말입니다.


총을 든 사람이 그 총에 맞아 죽는 자신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핵무기란 강력한 힘을 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미국인은 핵전쟁의 승리 저편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핵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 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승리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게 했습니다. 이 영화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핵전쟁과 핵무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반핵과 반전의 목소리도 더 넓은 대중에게 닿았습니다.


문득 상상해 봅니다. 이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핵으로 파괴된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냉전의 긴장과 전쟁을 통해서라도 상대를 막아야 한다는 열기를 생각하면, 그 상상이 완전히 터무니없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날 이후>는 많은 사람에게 핵전쟁의 결과를 보여주고 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야기는 전쟁을 멋지게 연출하며 군인들을 영웅으로서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군대와 억지력이 필요하다. 평화를 위해 이들을 기려야 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군인의 희생을 기리는 일 역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전쟁을 아름답게 보여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억지력은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이지, 전쟁을 멋지게 기억하기 위한 장식이 아닙니다.


카우보이를 동경해 총을 휘두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담배를 무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멋지게 포장한 이야기만 반복된다면, 전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기념은 언제 미화가 되는가


그래서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밝은 면과 멋진 면만 보여주어서는 안 됩니다.


콘텐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이름의 전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떠올려 봅니다. 기념이란 뜻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새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시장에는 우리 군인이 여러 전쟁에서 우리를 지켰고,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이야기만 놓여 있습니다. 참전과 희생, 명예와 공헌의 언어가 그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해외파병실의 베트남전 전시관에는 당시 표기 그대로 이런 문구도 보입니다.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주월한국군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의 훈령을 재현한 팻말이었습니다. 이 문구만 보면 한국군은 전쟁 속에서도 민간인을 지키려 한 군대처럼 보입니다. 멋진 군인, 영웅적인 군대의 이미지가 남습니다.

2022년 8월, 베트남전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왼쪽)과 사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오른쪽)가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를 마주했다. 당시 두 사람은 거짓된 전시라고 일갈하며 한국 정부의 역사 왜곡 전시에 강한 불만과 분노를 드러냈다.

2022년 8월, 베트남전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왼쪽)과 사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오른쪽)가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를 마주했다.

당시 두 사람은 거짓된 전시라고 일갈하며 한국 정부의 역사 왜곡 전시에 강한 불만과 분노를 드러냈다. ⓒ 한베평화재단


하지만 바로 그때 물어야 합니다. 그 문구 뒤에는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 전쟁을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국군의 총과 작전이 향했던 마을과 사람들은 그 전쟁을 같은 방식으로 기억할까요.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멋진 문구를 남기는 일이 아닙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이름이 붙은 공간일수록, 그 문구가 가리는 얼굴을 함께 보여주어야 합니다. 군인의 희생을 기리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이 남긴 다른 상처를 지우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멀리서 보면 멋진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제복과 행진, 총잡이와 영웅, 강한 지도자와 거대한 병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멋짐에 익숙해질수록, 전쟁이 실제로 무엇을 파괴하는지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영화배우가 담배를 문 모습에서 폐암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멋진 병기와 행군하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공간도 다르지 않습니다. 승리와 헌신의 언어만으로 채워질 때, 그 공간은 전쟁의 환상을 강화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전쟁이 파괴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기념은 기억이 아니라 미화가 될 것입니다.


글: 전홍식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