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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읽기[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5화] 20대 작가, "양민을 보호했다"는 전시 앞에 멈춰서다 / 남가현

2026-07-02
조회수 118


[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5화]

20대 작가, "양민을 보호했다"는 전시 앞에 멈춰서다

남가현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최근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주제로 한 습작 소설을 집필했다. 처음 베트남전쟁에 대해 쓰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문학에서 베트남전쟁은 자주 다뤄져 왔지만,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 혹은 그 자녀 세대가 아닌 전쟁3세대 젊은 작가의 시선에서 쓰인 작품은 드물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도가 될 것이란 우려와 기꺼이 자신의 경험과 자료를 공유해주겠다는 따뜻한 응원과 함께, 나는 자료 조사를 위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탄탄이’가 전쟁기념관의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에 항의의 뜻을 담은 ‘거짓’ 포스트잇을 붙였다. 포스트잇에는 베트남 피해 마을들의 이름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베트남어로 적었다. 전쟁기념관은 피해액 104만 원의 전시물 훼손을 주장하며 ‘탄탄이’를 공용물건손상죄로 고소했다.

‘탄탄이’가 전쟁기념관의 채명신 장군 훈련 전시에 항의의 뜻을 담은 ‘거짓’ 포스트잇을 붙였다.

포스트잇에는 베트남 피해 마을들의 이름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베트남어로 적었다.

전쟁기념관은 피해액 104만 원의 전시물 훼손을 주장하며 ‘탄탄이’를 공용물건손상죄로 고소했다. ⓒ 한베평화재단


선택적 기억의 방식으로 가해 사실 은폐하기


그렇게 찾은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이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무척 편향적이었다. 전쟁을 전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가해·피해 사실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곳에는 깨끗하게 검열된 영웅담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파병했다는 뜬구름 잡는 변명이 전부였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민간인 학살이나 고엽제 피해 등, 어떤 사실들은 지나치게 많이 삭제되어 왜곡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껏 베트남전쟁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의 부족한 역사 지식으로도 이 전시에 부적절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A

그 중 나를 '탄탄이' 활동으로까지 이끈 문제적 전시물은 다름 아닌 채명신 장군 훈령이었다.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전시 초반부에 사람 키만 한 높이로, 마치 강조하듯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었다. 당연히도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크게 분노를 표했고 시민들은 전시물의 철거와 변경을 요구했지만, 전쟁기념사업회 측은 "훈령의 존재는 역사적 사실", "실제 전쟁 실상과 달랐다는 주장을 근거로 훈령 자체를 철거하는 것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며 요구를 회피하고 있다.


훈령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인 만큼, 훈령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역사적 진실이다. 과거의 일을 기억할 때는 필연적으로 현재 시점의 해석이 동반되고, 어떤 사실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따라 그 기억의 방식이 엿보이는 법이다. 훈령의 존재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쟁기념관의 선택적 기억의 방식에는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짧은 관람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외국인과 어린이 관람객들을 마주치면서,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우려스러움을 느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은 매년 200~3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한국 최대 규모의 전쟁 전시관이다. 이처럼 큰 공적 기관에서 이렇게까지 성찰 없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최선의 방식일 리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2026년 현재까지도 이런 전시가 유지되어올 수 있었던 것일까.


무관심은 어떻게 기억의 공백이 되었나


수많은 답이 있겠지만, 내가 내 안에서 찾아낸 답은 무관심과 기억의 공백이었다. 2000년대 이후 출생자인 나는 솔직히 말해 전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분단 국가에 살면서도 전쟁에 의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하며 살아왔다고는 차마 말하기 어려웠고, 소설 집필과 '탄탄이' 활동이 없었더라면 내게 베트남전쟁과 민간인 학살은 여전히 나와 큰 관계가 없는 과거의 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탄탄이' 활동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내 삶을 전쟁으로부터 깔끔히 분리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승소(2025년 1월) 기자회견. 대한민국 사법부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학살을 부정하는 전쟁기념관의 채명신 장군 훈령 전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승소(2025년 1월) 기자회견.

대한민국 사법부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학살을 부정하는 전쟁기념관의 채명신 장군 훈령 전시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팔레스타인에서 가자 학살이 벌어지고,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해 지금도 피해 생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 그러나 뉴스를 끄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 일들이 손쉽게 내 일상에서 없는 일이 되었다. 세계가 평화롭지 않아도 내 일상이 평화로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 벌어졌거나 한국이 깊게 관여된 전쟁들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개인의 안위가 세계의 안위와 분리될 수 있는 현 시대의 단절성 속에 나는 점점 전쟁의 '비당사자'의 자리로 밀려났다. 정확히는, 밀려난 채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많은 후세대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과거나 타인의 비극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너무나 쉬운 환경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은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사회의 적극적인 망각 아래 후세대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간 전쟁이다. 올바른 기억의 방식이 충분히 논의되기도 전에 세대 간에 기억의 공백이 생겨버린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을 다시 기억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부적절한 전시 역시 그러한 공백과 무관심 속에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닐까.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미 기억의 공백이 생겨버린 상황에서 전쟁기념관의 전시는 더욱 위험하다. 전 세대의 기억에 의존하는 후세대에게 전쟁을 기억하는 공적 공간에서의 전시는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고, 공백이 공백을 재생산하는 모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베트남전쟁 진상규명운동의 미래를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있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참가자들

내가 바라는 베트남전쟁 진상규명운동의 미래를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있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참가자들 ⓒ 한베평화재단


그러나, 그 기억의 공백을 메우는 일 또한 결국 후세대의 몫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그 역사를 계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고, 기억은 질문과 문제 제기 없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으며, 무엇보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탄탄이'에 참여해 많은 시민활동가들을 만나 함께 어떻게 전쟁기념관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며, 같은 곳을 보는 사람들의 존재에 힘을 얻었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쓰겠다고 말했을 때 별로 연고가 없던 학우들로부터도 다양한 자료와 경험을 공유받았고, 덕분에 어려운 주제였지만 미숙하게나마 끝까지 써낼 수 있었다. 후세대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내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베트남전쟁 문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진실을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더 많은 눈이 필요하다. 전쟁기념관의 전시가 보여주듯 기억은 중립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들이 선택과 구성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지워지는 이야기가 없도록, '과거'와 '타자'의 일로 묻히는 상처가 없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아야 한다.


전쟁기념관이 지우려는 이야기를 향해 더 많은 눈이 향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입이 말하고, 더 많은 펜이 베트남전쟁을 쓰면 좋겠다. 전쟁 3세대 작가가 전쟁을 이야기하는 일이 더는 신선한 시도가 아니게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 전쟁 경험에서 시공간적으로 멀어진 후세대이기에 겪는 이해의 어려움만큼이나, 후세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자국의 피해자성에 국한되어 있는 경향이 있던 지금까지의 역사 의식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최은영 작가의 소설 <씬짜오, 씬짜오>에서 주인공은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 가족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꼭 후세대의 책임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를 수 있는 것은 후세대의 특권이며, 우리에겐 그것을 바로잡고 다시 기억하며 성찰한다는 선택지 또한 있다. 올바른 기억 방법을 계승 받지 못했다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후세대가 가진 힘이자 역할이며, 과거와 현재의 피해자들, 그리고 후속 세대를 위해 다해야 할 책임일 것이다. 

글: 남가현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