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읽기[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1화] 전쟁기념관이 지운 얼굴들... 기억돼야 할 그들의 진짜 이야기 / 부민경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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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1화]

전쟁기념관이 지운 얼굴들... 기억돼야 할 그들의 진짜 이야기

부민경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탄탄이' 활동도 어느덧 일 년이 넘었다. 탄탄이의 정식 명칭은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아래 탄탄이)'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대한민국의 공식기억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꾸려가는 모임이다. 탄탄이의 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혹은 망각하는 양상과 방식을 성찰하고 보다 정의롭고 윤리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



2025년 6월, 전쟁기념관을 찾은 베트남 피해생존자와 함께 한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2025년 6월, 전쟁기념관을 찾은 베트남 피해생존자와 함께 한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다양한 시민들을 만났고,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장소들을 찾아갔다. 작년 6월,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던 하미 마을과 퐁니·퐁녓마을의 피해생존자인 두 응우옌티탄 님(동명이인)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두 분은 국회에서 57년 전의 학살피해를 증언하며, 한국사회가 책임감 있는 태도로 진실을 규명할 것을 촉구했다.


두 응우옌티탄 님과 함께한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다크투어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당사자인 김영만 님과의 간담회, 두 응우옌티탄 님의 변호인이기도 한 임재성 변호사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제도적 운동의 쟁점과 성과' 강연, 사회학자 윤충로 선생님과 함께한 강원도 오음리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다크투어, 가장 최근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함께 한 전쟁에 의해 목숨을 잃은 모든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을 위한 추모미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쟁기념관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행동을 시작했다.



왜 우리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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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2층에는 해외파병실이 있다. 이곳은 베트남전쟁을 필두로 한국군 해외파병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20년에 걸쳐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펼쳐진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34만 6천 3백 93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했다. 이는 남베트남 지원 연합군 중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전시실 입구 왼쪽 벽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 있어, 지금까지 한국군이 어떤 나라들에 파병되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상단에 적힌 "대한민국 국군, 글로벌 평화로! Global Peace with ROK!"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베트남 전쟁 전시 구간 초입에서도 비슷한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전시관은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했다." (사진참고) 이처럼 전쟁기념관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베트남인의 '자유'를 지키고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행위로 프레임화한다.



베트남전 전시관 초입에 전시된 문구를 보고 있는 퐁니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그는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을 언급하며 이 문구가 거짓이라고 했다.

베트남전 전시관 초입에 전시된 문구를 보고 있는 퐁니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그는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을 언급하며 이 문구가 거짓이라고 했다.



전쟁기념관이 베트남 전쟁 파병과 참전을 "평화의 수호"로 '기념'하는 모습은 전시실 가운데 위치한 채명신 장군의 훈령 푯말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2미터 남짓 높이의 하얀 푯말은 실제로 전쟁 당시 존재했던 푯말의 복제품(레플리카)로,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고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적혀 있다.


'적을 놓치더라도 민간인의 안전을 최우시 해야 한다'는 이 메시지는 한국군이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이는 참전을 평화와 자유 수호로 정의하는 전시실 전체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전쟁기념관은 매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주말 나들이로 들르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베트남전쟁은 이렇게 단 하나의 얼굴로 후속세대에게 전해지고 있다.



피해생존자의 시선으로 본 해외파병실, 그 불편한 진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작년 여름 한국을 방문하신 두 응우옌티탄 님들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찾았던 일이다. 탄탄이는 두 분과 함께 전쟁기념관의 해외파병실을 둘러보는 다크투어를 진행했다. 이전에도 전쟁기념관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전쟁을 겪어낸 당사자이자 학살의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두 '탄 님'이 어떤 시선과 마음으로 이 전시를 보고 계실지를 끊임없이 살피는 한편,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베트남 전쟁의 후속 세대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베트남전 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의 훈령 전시를 보고 있는 두 응우옌티탄. 그들은 “화가 난다”, “당장 바꿔야 한다.”, “다음 한국 방문에서는 보고 싶지 않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베트남전 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의 훈령 전시를 보고 있는 두 응우옌티탄.

그들은 “화가 난다”, “당장 바꿔야 한다.”, “다음 한국 방문에서는 보고 싶지 않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크투어를 마친 후 탄탄이들은 두 탄 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미 마을의 탄 님은 "이 전시실만 보면 후세대들이 평화를 위해 파병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파병의 단점도 보여줘야 그게 교육"이라고 말씀하셨다. 퐁니 마을의 탄 님은 채명신 장군의 훈령이 전시실에서 사라지길 바라셨다. "우리가 학살을 겪었을 때는 어린아이, 노인, 여성뿐이었고 우리에겐 무기가 없었다. 전시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미 탄 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미 학살 사건으로 135명이 죽었다. 그중에는 태어난 지 두세 달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전시는 한국군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여줄 뿐 어두운 이면은 하나도 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쟁기념관이 무력과 국방 수호의 가치를 전파하기보다, 진정한 '평화'의 가치를 교육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탄탄이가 꿈꾸는 평화 :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공존의 평화

현재 '탄탄이'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채명신 장군의 훈령 푯말 철거를 요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방부와 외교부에 민원을 넣어 철거를 요구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해외파병실 전시의 구성 및 업데이트 방식을 문의하기도 했다. 또한 전시실 앞에서 손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포스트잇에 항의의 메시지를 담아 붙이는 등 다양한 직접행동을 펼쳤다.



전쟁기념관 전시에 대한 항의 메시지를 담은 탄탄이의 피켓 액션.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이 전쟁기념관에서 했던 말을 피켓에 적었다.

전쟁기념관 전시에 대한 항의 메시지를 담은 탄탄이의 피켓 액션.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이 전쟁기념관에서 했던 말을 피켓에 적었다.



탄탄이의 목표는 한국 사회가 베트남 전쟁을 보다 정의로운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무엇을 잊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전쟁기념관은 무엇을 잊고, 무엇을 지우고 있는가?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에세이집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부희령 옮김)에서 '공정한 기억은 우리들 내부의 비인간성을 들여다보고 기억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인간성과 상대방의 비인간성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응우옌이 말하는 공정한 기억은 우리 안에 깃든 비인간성까지 함께 응시하는 일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쟁기념관은 한국군의 인간성과 영웅성만을 '기념'하며 그 이면의 비인간성은 철저히 망각하는 곳이다.


그 망각 위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 고엽제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고통받는 이들의 호소, 그리고 전쟁으로 사라져간 비인간 존재들의 흔적은 지워진다. 해외파병실에 새겨진 '평화'라는 단어가 우려스러운 것은 그래서다. 전쟁기념관이 말하는 평화는 오직 무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는 평화다. 채명신 장군 훈령의 철거는, 박제된 '평화'의 자리에 성찰과 공존을 담은 '다른 평화'를 써넣기 위한 첫걸음이다. 


글: 부민경

사진: 한베평화재단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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