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읽기[평화의 mat] 그냥 다 해 보는 마음 / 고운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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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 해 보는 마음


고운(서고운)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며 소설을 씁니다.

 

저희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낡은 빌라의 꼭대기 층에 사는 덕분에 복층도 넓고 베란다도 넓은데, 이곳에 상자텃밭을 두고 이것저것 심고 키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바질과 고수를 잔뜩 심어 두었습니다. 바질은 알아서 쑥쑥 잘 큽니다. 올해 심은 바질은 같이 살던 친구가 재작년에 선물 받은 작은 바질 화분에서 씨를 받고, 그 씨를 심은 뒤 또 씨를 받아 심은 녀석들입니다. 아무리 식물을 잘 죽이는 저라도 나름 3대째 재배 중인 것입니다.

바질은 알아서 잘 크는데 문제는 고수입니다. 저는 고수를 좋아합니다. 포, 팟타이, 마라탕 등등 고수가 원래 들어가는 음식에는 무조건 고수를 추가해서 먹지요. 가끔은 고수를 사와서 김치볶음밥이나 라면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고수를 아무데서나 팔지 않고, 특히 집 앞 슈퍼에서 팔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내킬 때마다 먹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씨앗을 사서 심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녀석들이 잘 자라다가 자꾸 눕습니다. 원래 누워서 크는 애들인가 하고 사진을 찾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왜 자꾸 눕는 걸까요.

물 주는 주기가 문제인가. 햇볕이 충분치 않은가. 씨앗이 별로인가. 흙에 영양분이 다 빠졌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고수한테 너, 뭐가 부족하니? 어떻게 해줘야 똑바로 서서 잘 자랄 거니? 물어볼 수도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도 이렇게 저렇게 줘보고, 해를 많이 볼 수 있게 커튼도 잘 걷어보고, 씨앗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달걀 껍데기를 말리고 빻아서 흙에 뿌려줍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일이 다 이런 건가 싶기도 합니다. 사는 것도 참 쉽지 않습니다. 망한 건 잘 보이는데,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저 우리는 언제나 뭐든 ‘다’ 해보는 수밖에.


고수와 바질이 자라고 있는 상자 텃밭 © 고운

 

가지 지구 집단 학살이 1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5월 28일)이면 600일째가 된다고 하는군요.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해도 5만 3천여 명. 실제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 민족을 ‘절멸’ 시키겠다는 계획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 생명으로서, 얼마나 많은 가치를 포기하고 권력의 편에 서야 이러한 폭력을 자행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그럴까.

이런 것들을 헤아리다 보면 그만 힘이 쭉 빠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따위 세상.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그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렇게 잠시 잊고 잠이나 자는 것뿐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 활동가 신분으로, 게다가 단체 사정이 안 좋아져 활동비를 받지 못하게 된 탓에 각종 적금과 예금과 주식을 찾아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투자하는 종목의 수익률이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작년에 팔란티어라는 기업의 주식을 꽤 매수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주 사보았지요. 너무 비싸서 사실 0.1주밖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0.1주가 일주일 만에 많이 올라서, 한 끼 값 정도는 되게 벌게 된 것입니다. 신이 나서 애인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애인이 너 팔란티어 뭐 하는 데인지 알아? 하길래 뭐 AI 하는 데 아니야? 하니까 다른 사람들한텐 말 안 했지? 하는 겁니다. 뭐 별 건가, 하고 찾아보니 이스라엘 국방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이더군요. 바로 처분했습니다.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더 부끄러웠습니다. 그냥 계속 모르는 채로, 조용히 갖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마음. 그런 욕심. 그런 것들과 싸우는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다만 그것은 행동과 같이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무엇이든 그냥 ‘다’ 해보는 것. 물도 줘 보고, 화분 자리도 바꿔 보고, 영양제도 만들어 보고……. 그런 것처럼 보기 힘들지라도 소식을 한 번 더 찾아보고, 공유하고, 연대서명을 하고, 학살에 공모하는 기업을 보이콧하고……. 그러다보면 분명 무언가 바뀌고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달걀 껍데기를 빻고, 연대서명 소식을 공유합니다.

 

연대성명 포스터 (한국 성소수자 - 팔레스타인 연대)


* [한국 성소수자 – 팔레스타인 연대 성명] 집단학살에 침묵, 공모하는 프라이드는 없다 – 팔레스타인의 반식민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루되자! 

무지개행동,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에서 가자지구 집단 학살을 당장 멈추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앞당겨오기 위해 한국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소중한 이름을 올려 주세요.

- https://campaigns.do/campaigns/1577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