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읽기하노이, 그놈의 메가시티 / 최유리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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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그놈의 메가시티


최유리


“에잇, 여긴 ‘메가시티’ 라니까요!!”


하노이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택시 안, 동티모르와 라오스의 시골마을 출장에 이어 하노이를 찾아온 한국 본부의 출장단이 ‘하노이는 와이파이가 잘 되는지’를 묻자, 내가 발끈하며 내뱉은 우스갯소리다. 사방에 5G가 깔려있는(물론 깔려 있다고 다 5G의 속도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식당과 카페에서 아주 쉽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도시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메가시티’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라 한마디 더 거들려다 말았다.


사전적으로 인구가 천만 이상인 도시를 가리키는 ‘메가시티 (megacity)’는 세계적으로 약 33~37개의 도시를 칭하며 그 중 대부분은 광저우, 도쿄, 상하이, 델리, 자카르타 등의 아시아에 밀집되어 있다. 수년 전부터 베트남 뉴스에서 정치 수도인 북부 ‘하노이’와 경제 중심지인 남부 ‘호치민시’를 ‘메가시티’로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는데, 그때 나오는 메가시티의 대표적인 사례는 뉴욕, 런던, 도쿄 등 선진국의 대도시였다. 베트남은 국가 마스터 플랜에 따라 북부의 젖줄인 홍강(Red river)을 중심으로 한 수도 하노이를 인구 1,5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뿐 아니라, 문화·스마트·혁신·생태가 융합된 ‘글로벌 선진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하노이는 정말 ‘메가시티’가 되어가는 중이다. 수도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행정 분권과 여러 국내외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 중이며, 현재 하노이에서만 교통 및 인프라 개선을 위한 17개의 대형 메가 프로젝트가 착공 중이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부동산 투자로 득을 봤다는 부자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고, 하노이 아파트 값은 오를 대로 올라 더 이상의 투자가치가 없어졌다는 말도 돌지만, 하노이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급 아파트를 사고 팔고 있고, 연이어 만들어질 큰 도로와 지상철 노선 계획에 따라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도 쉼 없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베트남의 최대 민간 복합기업인 빈(Vin)그룹에서 만든 초초초 초대형 아파트 단지들이다.


2026년 7월 1일부터 하노이 도심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해진 시간 동안 휘발유 오토바이 운행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삶에서 오토바이를 떼어놓을 수 없는 베트남 사람들이기에 베트남 정부의 휘발유 오토바이 금지 정책이 먼 미래의 일 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행령이란 늘 인민들의 생각보다 더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휘발유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나도 ‘내 출퇴근 길에 운행 금지 구간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지 않고 급 발진하는 전기 오토바이가 더 위험하다고 느끼고, 충전 안정성도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빈그룹에서 만든 전기 오토바이로 바꿔 타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손잡은 빈그룹은 이미 전기차 충전소를 전국 곳곳에 만들어놨고, 빈그룹의 전기 차와 전기 오토바이 판매율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 도로에는 ‘Grab’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의 진 녹색이 가득 찼는데, 이제는 빈그룹 ‘쌍(Xanh)’ 전기 택시와 전기 오토바이의 밝은 청록색도 많이 보이고 있다. 빈그룹에서 만든 전기버스는 아직 노선이 부족하지만, 한국어 글자가 곳곳에 (가끔은 뒤집어져서) 붙여있는 한국산 중고 시내버스보다 훨씬 쾌적하고, 친절하다. 이전의 시내버스처럼 달리는 버스에 뛰어 올라서 큰 목소리로 위치를 정해주는 차장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필요도 없는데다 심지어 승, 하차 시에 친절한 목소리의 인사까지 받을 수 있다. 대 충격!


빈그룹이 만든 대형 쇼핑몰 빈컴센터는 하노이에만 약 10개의 지점이 있고, 빈 그룹의 종합병원 빈맥 국제병원은 하노이에 3개(전국에 10개)나 있다. 전국에 약 4만 8천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는 빈 그룹의 사립학교 빈 스쿨도 하노이에 15개(전국 61개)나 있다. 여기도 빈, 저기도 빈… 하노이는 이미 빈그룹이 만든 세상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하노이를 친환경·스마트·글로벌 메가시티로 도약시키기 위한 100년 비전의 수도 마스터플랜(2026~2126년) 안에 있다.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져 가는 이 도시 안에 살면서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이지 ‘메가시티’에 어울리는 도시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메가시티’ 계획의 일환이자 안전 및 도시 미관 개선의 목적으로 하노이는 여러 구식 아파트(Khu tập thể) 단지의 재개발 및 이주 계획을 세웠다. 이 구식 아파트는 1978년~1987년 배급제 시절에 지어진 3-5층 높이의 소련 식 콘크리트 아파트로 주로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노동자들에게 지원되었다.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 지금은 수십 번 벗겨진 노란 페인트와 곳곳에 부서진 시멘트 벽이 묘한 느낌을 주어서 최근 하노이의 젊은이들이 이 공간 빌려 특별한 가게나 작업실을 내거나 빈티지한 커피숍이나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도 하노이만의 느낌을 찾을 수 있는 아끼는 장소들이 구식 아파트 안에 있다. 그 중에는 하노이의 대표적 노후 주거지인 탄쑤언(Thanh Xuân) 지역의 60여개 동 구식 아파트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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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대표 노후 주거지 탄쑤언.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집들이 철거된 모습 © 베트남 노동신문



2023년 9월, 탄쑤언의 불법 개조된 10층 미니 아파트 한곳에서 불이 나 무려 56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 지역은 소방 규정에 맞지 않은 노후된 집이 많고, 작은 쪽 방과 불법 개조 원룸 등의 다세대 주택이 많아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며, 폭 3m 이하의 좁은 골목이 많아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워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났다. 1990년대부터 인구가 밀집되기 시작한 하노이에는 어느새 틈 없이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과 굽이진 좁은 골목들이 채워졌고, 외지에서 일거리를 찾아 하노이로 내려온 도시 노동자들과 가난한 학생들이 하노이에서도 아직 개발이 더딘 탄쑤언 같은 지역에 모이게 된 것이다.


탄쑤언 지역에서는 심각한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사업도 시작했다. 폭 40m의 4차선 도로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며, 응우옌 뚜안(Nguyễn Tuân) 도로의 720m 구간을 기존 협소한 도로에서 폭 21m로 확장하는 공사도 하고 있다. 길을 넓히기 위해서 도시는 마치 땅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도로구획 안에 들어오는 집을 칼 같이 도려내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그 탄쑤언의 길 한 곳을 지나던 어느 날, 창 밖으로 앞면이 댕강 잘라져 버린 3-4층짜리 건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마치 반듯하게 잘린 케이크의 단면에 박힌 과일과 층층이 쌓인 크림 같았다. 잘려진 집의 안쪽 벽과 남겨진 살림살이 너머로 얼마 전까지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분명 지난 달까지만 해도 길가에 멀쩡히 존재하던 집들이었다.


“어머, 여기도 큰 길을 만드나 보네.”


내 혼잣말에 창 밖을 함께 보던 아이가 물었다.


“근데 엄마, 저 안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찾아보니 이 지역에서 도로 확장을 위해 집을 내어주어야 하는 5개 동 지역의 약 700가구에 대한 토지 보상 및 철거 작업이 완료되었고, 100% 깨끗한 부지를 인도했다는 베트남 정부의 기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반으로 댕강 잘려진 저 집에는 아마 빈그룹 전기차나 빈그룹 아파트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고 이 거대한 메가시티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놈의 메가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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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는 집을 바라보는 홍하 지역의 주민 © Humans of hanoi


* 최유리

2010년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민사회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NGO (사)지구촌나눔운동GCS에서 ‘청년중기봉사단’ 사업을 담당하며 베트남의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