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 베트남 평화기행 후기 -
이예진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 교사)
2020년 10월 18일 평화기행의 일정은 하미마을 위령비 참배로 시작되었다. 오후에 퐁니·퐁넛 마을 위령비 참배도 하고, 생존자 탄 아주머니 댁도 방문했지만, 내게는 오전에 방문한 하미마을 위령비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아드님이신 럽 아저씨 댁에서의 일이 조금 더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텔레비전이나 글에서 접하던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생생한 아픔을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베평화재단의 권현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하미마을 위령비 주변을 돌아보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특히 희생자 명단 마지막에 1968년생 Nguyễn Vô Danh 두 명과, Nguyễn Thị Vô Danh 한 명. 베트남어로 Vô Danh은 무명(無名)이란 뜻이라고 했다. 학살이 1968년 음력 1월 24일에 발생했으니, 이 아기들은 제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태어난 지 며칠 만에 희생된 것이다. 대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평화기행단이 찾아오자 럽 아저씨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셨다 / ⓒ 이예진
마음을 담아 향을 피워 올리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아드님이신 럽 아저씨 댁이다. 학살 피해 당시 다낭에 피난을 가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고향. 이후 땅을 개간하다 지뢰사고를 당하여 럽 아저씨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아저씨는 팜티호아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생전 어머니에 대한 여러 기억을 말씀해주셨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여서 그랬을까. 어쩐지 담담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베트남 민요 ‘올 봄에 저는 못 가요.’를 직접 불러주셨는데, 담담하지 않으시구나. 마음이 많이 아프시구나. 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베트남어를 잘 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권현우 선생님이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해주셨는데, ‘어머니, 올 봄에 저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 어머니와 저 사이에는 길이 가로막혀 있네요. 어머니가 그리워도 찾아뵐 수 없네요.’ 하는 가사 한 줄 한 줄에 계속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팜티호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아들 응우옌럽 / ⓒ 이예진
우리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많은 이별을 하지만, 누군가의 고의에 의한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워도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 그로 인해 더해져가는 미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고단함…. 두 아이를 잃은 팜티호아 할머니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셨던 걸까.
평화기행을 마치고 후원신청을 위해 들어간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평화재단과 함께 하는 분들 저마다의 ‘평화’에 대한 정의를 보았다. 모두 공감이 되는 말씀이었지만 특히, 구수정 선생님의 ‘평화란,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묻는 안부, 아픔이 다른 아픔에게 내미는 손’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러므로 내게 평화는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2020년 베트남 북부의 접경지역인 하지앙성 여행에서 / ⓒ 이예진
* 2020년 10월 18일, 한베평화재단은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의 <베사문(베트남의 사회와 문화 연구회)> 팀의 베트남 평화기행 일정의 안내자 및 해설사로 일정을 함께 했습니다.

봄이 와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 베트남 평화기행 후기 -
이예진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 교사)
2020년 10월 18일 평화기행의 일정은 하미마을 위령비 참배로 시작되었다. 오후에 퐁니·퐁넛 마을 위령비 참배도 하고, 생존자 탄 아주머니 댁도 방문했지만, 내게는 오전에 방문한 하미마을 위령비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아드님이신 럽 아저씨 댁에서의 일이 조금 더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마도 텔레비전이나 글에서 접하던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생생한 아픔을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베평화재단의 권현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하미마을 위령비 주변을 돌아보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특히 희생자 명단 마지막에 1968년생 Nguyễn Vô Danh 두 명과, Nguyễn Thị Vô Danh 한 명. 베트남어로 Vô Danh은 무명(無名)이란 뜻이라고 했다. 학살이 1968년 음력 1월 24일에 발생했으니, 이 아기들은 제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태어난 지 며칠 만에 희생된 것이다. 대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평화기행단이 찾아오자 럽 아저씨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셨다 / ⓒ 이예진
마음을 담아 향을 피워 올리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고 팜티호아 할머니의 아드님이신 럽 아저씨 댁이다. 학살 피해 당시 다낭에 피난을 가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고향. 이후 땅을 개간하다 지뢰사고를 당하여 럽 아저씨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아저씨는 팜티호아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생전 어머니에 대한 여러 기억을 말씀해주셨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여서 그랬을까. 어쩐지 담담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베트남 민요 ‘올 봄에 저는 못 가요.’를 직접 불러주셨는데, 담담하지 않으시구나. 마음이 많이 아프시구나. 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베트남어를 잘 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권현우 선생님이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해주셨는데, ‘어머니, 올 봄에 저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 어머니와 저 사이에는 길이 가로막혀 있네요. 어머니가 그리워도 찾아뵐 수 없네요.’ 하는 가사 한 줄 한 줄에 계속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 팜티호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아들 응우옌럽 / ⓒ 이예진
우리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많은 이별을 하지만, 누군가의 고의에 의한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워도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 그로 인해 더해져가는 미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고단함…. 두 아이를 잃은 팜티호아 할머니는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셨던 걸까.
평화기행을 마치고 후원신청을 위해 들어간 한베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평화재단과 함께 하는 분들 저마다의 ‘평화’에 대한 정의를 보았다. 모두 공감이 되는 말씀이었지만 특히, 구수정 선생님의 ‘평화란,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묻는 안부, 아픔이 다른 아픔에게 내미는 손’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러므로 내게 평화는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다.
2020년 베트남 북부의 접경지역인 하지앙성 여행에서 / ⓒ 이예진
* 2020년 10월 18일, 한베평화재단은 호치민시 한국국제학교의 <베사문(베트남의 사회와 문화 연구회)> 팀의 베트남 평화기행 일정의 안내자 및 해설사로 일정을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