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김병수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
며칠 전 베트남 반레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1년 전 베트남 평화기행에서 시인을 뵌 적이 있다. 맑은 영혼을 가진 소년 같은 인상이었다. 고인을 애도하며 평화기행의 기억을 반추해본다.
베트남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것은 죄 없는 인간을 죽인 만행에 대한 반성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한국군은 어째서 죄 없는 민간인을 죽여야만 했을까. 명령을 따랐던 몇몇 참전군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국가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에 의해, 그리고 박정희의 욕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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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시의 전쟁증적박물관에서 베트남이 폭로하는 전쟁범죄의 민낯과 마주했다. 베트남은 국가 차원에서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박물관을 많이 건립했다고 한다. 전쟁증적박물관도 그 중 하나다. 처음 마주한 전시관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적국의 독립선언서를 전시한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곧 그 진의가 보였다. 전시된 선언서의 내용은 이렇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인간을 가장 존귀한 존재로 선언했던 미국이었지만 베트남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을 침범했고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베트남은 그렇게 적국인 미국의 만행을 알리고 있었다.
한국군 학살 피해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밀라이박물관도 찾았다. 미군이 저지른 밀라이학살은 전 세계에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여 반전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전직 박물관장이자 학살 생존자 팜탄꽁과 현직 박물관장을 함께 만났다. 일정에 동행한 제주의 문인들이 동백꽃이 그려진 배지를 박물관 측에 선물했다. 팜탄꽁은 답례로 미국의 베트남 만행을 폭로한 자신의 회고록을 참가자 전원에게 선물했다. 좌담을 나누다 한 참가자가 학살 피해 이후 베트남 사람들이 팜탄콩을 비롯한 학살 생존자를 거두어 보살피며 전쟁 속에서도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팜탄꽁은 덧붙여 말했다. “저를 살게 한 것은 남베트남도 북베트남도 아니었습니다. 적국인 미군과 싸우고 있었던 혁명 세력, 바로 게릴라들이었습니다. 제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입니다.” 그는 제주4.3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제주 4.3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참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베트남전쟁처럼 미군의 지상군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1948년 제주4.3 사건에서 미국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섬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죄 없는 민간인들이 죽었다. 한국은 당시 미국의 꼭두각시와 다름없었다. 지금도 과연 어떠한가?
참가자들에게 달콤한 망고를 대접했던 고 반레 시인
평화기행에서 만난 사람을 떠올린다면 우선 반레를 꼽겠다. 베트남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시인이자 소설가, 다큐멘터리 감독인 그의 자택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닌 노시인을 마주하니 그가 전쟁을 겪은 게릴라였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전쟁을 회상했다. “전쟁은 인간을 말살합니다.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무감하게 만듭니다.” 시인과 다양한 이야기 오고갔는데 한 참가자가 반레에게 최근의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눈빛이 달라져 말했다. “저는 그 어떤 강대국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미국은 결코 베트남을 위해, 한국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시인의 지적은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응우옌티탄과의 만남을 앞두고 위려이에서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평화기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의 만남을 잊지 못할 것이다. 퐁니 마을에서 우리는 생존자 응우옌티탄을 만났다. 당시 그는 불과 8살 아이었고 학살 피해로 어머니, 이모, 조카, 언니와 남동생을 잃었다. 그는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그의 증언을 기록해두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응우옌티탄의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오빠는 엉덩이에 총을 맞고 저 멀리 쓰려졌고, 나는 배에 총을 맞았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던 것도 몰랐습니다. 오빠가 나보고 빨리 엄마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엄마를 찾아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배를 움켜잡고 엎드려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시장에 가지 않고 이 근처에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찾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논두렁의 죽은 시체더미들 속에 바로 우리 엄마가 있었다는 것을.” - 응우옌티탄의 학살 피해 증언 중에서
그는 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의 광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공호에 총을 겨누며 밖으로 나오라고 한 한국군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거의 평생을 한국군을 원망하며 살았다고 한 응우옌티탄. 증언을 마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증언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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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베트남의 뜨거운 여름이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나는 <1968년 2월 12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고경태 기자가 쓴 퐁니·퐁넛 학살에 대한 책이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박정희에게 베트남은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는 제2전선, 김일성에겐 한반도가 베트남전의 제2전선이었으며 미국과 베트남, 한반도의 삼각관계가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갔다.”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실타래처럼 얽인 구조가 억압과 차별을 만들었다. 나에게 베트남은 억압과 차별을 가장 격렬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여전히 베트남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 이 글은 2019년 8월 한베평화재단이 진행한 ‘시와 함께 걷는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한 김병수 님의 글입니다.
베트남은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