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 한베평화재단과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를 마무리하며
/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 이야기
따사로운 햇볕에 “벌써 봄이 왔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을 나섭니다.
2022년 1월 16일, 오늘은 출근 하지 않는 일요일이지만, 평일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으로 ‘화빈’이라는 팀을 만들고, 이후로 약 2년 간 사무실 동료와 다를 바 없이
매주 얼굴을 봐 온 린(연필)이 12년을 함께한 성미산학교를 떠나며 졸업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지난 여름 즈음, 졸업 프로젝트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을 준비해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반 년의 고민 고민 끝에 마침내 결과물이 나왔다니! 큰 기대와 응원의 마음을 한 가득 품고 졸업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에서 발표 중인 린(연필) ⓒ짜미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에서 발표 중인 린(연필) ⓒ짜미
성미산마을극장에서 개최된 졸업식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지난해인 2020년에 ‘화빈’ 활동으로 재단과 1년을 함께 보냈던 가니, 사위, 지수였는데요.
반갑게 인사와 근황을 나누며 새로운 영역에서 평화를 기억하고 가꾸어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화 활동의 과정에서 만난 이들을 평화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힘이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 린(연필)이 속한 '화빈'팀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
2020년_[인터뷰] "베트남전 공부하려고 일주일에 8번 만나요" /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화빈>과 둘리 선생님
: http://www.kovietpeace.org/b/board17/6335
2021년_[평화의 mat] '자갈자갈' 평화를 이야기할 때
: http://www.kovietpeace.org/b/board01/6836

린(연필)의 졸업프로젝트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 ⓒ짜미

린(연필)의 졸업프로젝트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 ⓒ짜미
린(연필)은 졸업 프로젝트로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의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포스트중등에 입학 하기 직전, 영화 <기억의 전쟁>을 보고 처음으로 문제를 접하며 느낀 충격과
이후 한베평화재단에서의 필드워크 과정에서 참전군인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는데요.
특히 2021년 한 해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입장에서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린(연필)은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는 지에 따라 역사 교육이 달라질테고,
과거의 일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배워야하고 자유로워지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그 교육이 일어나는 시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린(연필)의 졸업 프로젝트 책자에는 용산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전시 구성과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며,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 지를 짚습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념관을 위해 재구성해야하는 방향의 제언도 담았습니다.
이번 해에 졸업하는 네 명의 학생 재희, 린(연필), 담, 해람 모두 포스트중등 과정에서의 활동으로
2020년과 2021년에 재단 활동에 큰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었는데요. 각자의 졸업 에세이와 졸업프로젝트 발표에서도
전쟁과 평화를 고민하며 만난 베트남전쟁이 있었고, 각자의 삶 속에서 이를 깊이 생각하고 만나가는 과정이 보여 매우 감동적이었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지요.
성미산학교 졸업식은 그 말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는, 모두의 노력과 애정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졸업식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상, 편지글 등으로 함께해주신 많은
선후배들, 학교 교사들, 필드워크 연대 단체와 활동가들, 학부모님들의 말과 얼굴이 깊이 남았습니다.
환대와 연대가 있는 공간은 활동가들에게도 큰 힘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목표로 지금껏 고민해온 것들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갈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생,
2년 동안 한베평화재단과 '필드워크'로 베트남전쟁을 만나고 함께 고민해온 과정을
진솔한 마음을 담아 글로 남긴 린(연필)의 에세이를 일부 발췌하여 재구성한 글을 모두와 나누며
2020-2021 한베평화재단과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을 정리합니다 :)
* * * * * *
변화들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냉소와 나태였다. 내가 최고로 애정하는 게임도, 생활의 전부인 유튜브도 아니었다. 왜 이 상태가 되었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차라리 게임이라도 하고 영상이라도 재미있게 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무의미한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무얼 했는지 기억에 남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뭐라도 해야지 다짐을 하지만 그 다음 날에도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시간은 흘렀다. 솔직히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별로 없었다. 단지 이렇게 지내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만 있을 뿐이었다. 그저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포스트중등 과정에 올라오게 되었고, 순간 확 바뀌게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움직이고 잇었고, 해야 할 게 생겼고, 하고 있다.
나는 작년부터 필드워크로 한베평화재단과 연계하여 ‘화빈’팀에서 활동을 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활동해 왔다. 처음으로 수업 시간 외에도 스스로 필요에 의해 따로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하과, 평소에 읽지도 않던 책을 읽고 발제 준비도 했다. 일주일에 반 권씩 꾸준히 읽고 정리해서 발표를 하려니 시간이 모자랐다. 잘 알지 못하는 주제였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평소라면 쉽게 그만 두거나, 핑계 대며 상황을 조정했거나 아니면 나가 떨어졌을 법도 한데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 조건 없이 해냈다니 놀라웠다.
2020년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화빈'팀에서 활동 중인 연필(가운데) ⓒ짜미
2021년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화빈'팀에서 활동 중인 연필(왼쪽 세번째) ⓒ짜미
아마 포스트중등 과정에 올라왔으니 새롭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소소하게 관계도 만들어지는 게 즐거웠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어느 사이 그 주제로 발표도 하고 , 질문에 대답도 할 수 있고, 토론도 가능해졌고, 확실히 그전과는 다른 기운이 나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서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왔다. 대학 선택과 관련하여 머리가 복잡했고 불안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이슈도 알아 가면 갈수록 심플해지지 않고 미궁에 빠졌다.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학교의 프로젝트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그렇다고 입시 준비를 하거나 공부를 하지도 않으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산만했다. 대학 입시를 생각하니 그동안 공부하지 않아 아는 게 없다는 현실과, 학교의 프로젝트는 내게 필요한 공부가 아닌 것 같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다시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사이다(선생님)가 왜 집중하지 못하느냐고 불호령을 내렸다. 순간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를 기점으로 다시 졸업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왔다갔다 반복했던 것 같다. 졸업 에세이를 쓰면서 보니 그냥 학교생활에, 졸업 프로젝트에 집중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왜 뒤늦게 후회를 하는 것일까. 포스트중등 과정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활동가들과도 적극적으로 관계를 못 맺은 것 같고, 연대 활동도 더 성의 있게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하지만 지금 한 생각을 나중에 또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겠지.
평화에 응답하다
지난 2년 동안 시민 단체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활동하면서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에도 관심이 이어졌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역시 전쟁기념관이다. 그런 전쟁기념관에 몇 차례 방문했을 때 전쟁기념관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기억하라’에 숨겨진 의도를 보려고 헀지만 찾아볼 수 없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전쟁, 성공적인 파병이라는 메시지와 전쟁 영웅들의 위대함이었다. 전쟁기념관은 한국 사회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려고 하고 있는가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베트남전 종전 45년,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자 청원 1년 기자회견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피켓을 들고 있는 이가 린(연필)이다. ⓒ한베평화재단
나는 포스트중등 과정에서 전쟁과 학살의 문제를 다루면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수많은 폭력과 죽음을 통해 평화를 지향하지 않으면 내가 바로 폭력을 당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아니면 내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있는지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50여 년이 되도록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마지막 전시를 구성하게 된 것은 작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얻게 된 아이디어이다. 당시 참전 군인과 가족들, 평화 활동가들에게 평화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누군가는 전쟁이 없는 삶, 누군가는 밥 세끼 먹고 살 수 있는 삶, 서로를 존중하는 삶,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용기를 갖는 것 등... 각자가 대답한 평화는 너무나 다양했다. 사실 이 질문에 대답하기를 어려워했던 건 다름 아닌 스스로였다. 어쩌면 지난 2년 동안의 배움은 평화가 무엇인지, 그 길로 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평화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까지 배움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정의로운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평화로 나아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의로운 기억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기억, 평화로 가는 시작이다.
* * * * * *
글, 사진 ㅣ 한베평화재단 짜미 활동가
2020-2021 한베평화재단과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를 마무리하며
따사로운 햇볕에 “벌써 봄이 왔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을 나섭니다.
2022년 1월 16일, 오늘은 출근 하지 않는 일요일이지만, 평일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으로 ‘화빈’이라는 팀을 만들고, 이후로 약 2년 간 사무실 동료와 다를 바 없이
매주 얼굴을 봐 온 린(연필)이 12년을 함께한 성미산학교를 떠나며 졸업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지난 여름 즈음, 졸업 프로젝트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을 준비해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반 년의 고민 고민 끝에 마침내 결과물이 나왔다니! 큰 기대와 응원의 마음을 한 가득 품고 졸업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에서 발표 중인 린(연필) ⓒ짜미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식에서 발표 중인 린(연필) ⓒ짜미
성미산마을극장에서 개최된 졸업식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지난해인 2020년에 ‘화빈’ 활동으로 재단과 1년을 함께 보냈던 가니, 사위, 지수였는데요.
반갑게 인사와 근황을 나누며 새로운 영역에서 평화를 기억하고 가꾸어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화 활동의 과정에서 만난 이들을 평화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힘이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 린(연필)이 속한 '화빈'팀의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
2020년_[인터뷰] "베트남전 공부하려고 일주일에 8번 만나요" /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화빈>과 둘리 선생님
: http://www.kovietpeace.org/b/board17/6335
2021년_[평화의 mat] '자갈자갈' 평화를 이야기할 때
: http://www.kovietpeace.org/b/board01/6836
린(연필)의 졸업프로젝트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 ⓒ짜미
린(연필)의 졸업프로젝트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 ⓒ짜미
린(연필)은 졸업 프로젝트로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며 평화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의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포스트중등에 입학 하기 직전, 영화 <기억의 전쟁>을 보고 처음으로 문제를 접하며 느낀 충격과
이후 한베평화재단에서의 필드워크 과정에서 참전군인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는데요.
특히 2021년 한 해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입장에서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린(연필)은 "전쟁과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는 지에 따라 역사 교육이 달라질테고,
과거의 일이 다시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배워야하고 자유로워지는 교육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그 교육이 일어나는 시공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린(연필)의 졸업 프로젝트 책자에는 용산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전시 구성과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며,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 지를 짚습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념관을 위해 재구성해야하는 방향의 제언도 담았습니다.
이번 해에 졸업하는 네 명의 학생 재희, 린(연필), 담, 해람 모두 포스트중등 과정에서의 활동으로
2020년과 2021년에 재단 활동에 큰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었는데요. 각자의 졸업 에세이와 졸업프로젝트 발표에서도
전쟁과 평화를 고민하며 만난 베트남전쟁이 있었고, 각자의 삶 속에서 이를 깊이 생각하고 만나가는 과정이 보여 매우 감동적이었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지요.
성미산학교 졸업식은 그 말이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하다는, 모두의 노력과 애정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졸업식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상, 편지글 등으로 함께해주신 많은
선후배들, 학교 교사들, 필드워크 연대 단체와 활동가들, 학부모님들의 말과 얼굴이 깊이 남았습니다.
환대와 연대가 있는 공간은 활동가들에게도 큰 힘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목표로 지금껏 고민해온 것들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갈 성미산학교 10기 졸업생,
2년 동안 한베평화재단과 '필드워크'로 베트남전쟁을 만나고 함께 고민해온 과정을
진솔한 마음을 담아 글로 남긴 린(연필)의 에세이를 일부 발췌하여 재구성한 글을 모두와 나누며
2020-2021 한베평화재단과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베트남전쟁 필드워크 활동을 정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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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들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냉소와 나태였다. 내가 최고로 애정하는 게임도, 생활의 전부인 유튜브도 아니었다. 왜 이 상태가 되었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차라리 게임이라도 하고 영상이라도 재미있게 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무의미한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무얼 했는지 기억에 남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뭐라도 해야지 다짐을 하지만 그 다음 날에도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시간은 흘렀다. 솔직히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별로 없었다. 단지 이렇게 지내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만 있을 뿐이었다. 그저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포스트중등 과정에 올라오게 되었고, 순간 확 바뀌게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움직이고 잇었고, 해야 할 게 생겼고, 하고 있다.
나는 작년부터 필드워크로 한베평화재단과 연계하여 ‘화빈’팀에서 활동을 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전쟁기 민간인 학살과 더불어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활동해 왔다. 처음으로 수업 시간 외에도 스스로 필요에 의해 따로 스터디를 진행하기도 하과, 평소에 읽지도 않던 책을 읽고 발제 준비도 했다. 일주일에 반 권씩 꾸준히 읽고 정리해서 발표를 하려니 시간이 모자랐다. 잘 알지 못하는 주제였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평소라면 쉽게 그만 두거나, 핑계 대며 상황을 조정했거나 아니면 나가 떨어졌을 법도 한데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 조건 없이 해냈다니 놀라웠다.
아마 포스트중등 과정에 올라왔으니 새롭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소소하게 관계도 만들어지는 게 즐거웠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어느 사이 그 주제로 발표도 하고 , 질문에 대답도 할 수 있고, 토론도 가능해졌고, 확실히 그전과는 다른 기운이 나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서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왔다. 대학 선택과 관련하여 머리가 복잡했고 불안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이슈도 알아 가면 갈수록 심플해지지 않고 미궁에 빠졌다.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학교의 프로젝트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그렇다고 입시 준비를 하거나 공부를 하지도 않으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산만했다. 대학 입시를 생각하니 그동안 공부하지 않아 아는 게 없다는 현실과, 학교의 프로젝트는 내게 필요한 공부가 아닌 것 같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다시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사이다(선생님)가 왜 집중하지 못하느냐고 불호령을 내렸다. 순간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를 기점으로 다시 졸업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왔다갔다 반복했던 것 같다. 졸업 에세이를 쓰면서 보니 그냥 학교생활에, 졸업 프로젝트에 집중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왜 뒤늦게 후회를 하는 것일까. 포스트중등 과정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활동가들과도 적극적으로 관계를 못 맺은 것 같고, 연대 활동도 더 성의 있게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하지만 지금 한 생각을 나중에 또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겠지.
평화에 응답하다
지난 2년 동안 시민 단체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활동하면서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에도 관심이 이어졌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역시 전쟁기념관이다. 그런 전쟁기념관에 몇 차례 방문했을 때 전쟁기념관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기억하라’에 숨겨진 의도를 보려고 헀지만 찾아볼 수 없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전쟁, 성공적인 파병이라는 메시지와 전쟁 영웅들의 위대함이었다. 전쟁기념관은 한국 사회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려고 하고 있는가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포스트중등 과정에서 전쟁과 학살의 문제를 다루면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다. 수많은 폭력과 죽음을 통해 평화를 지향하지 않으면 내가 바로 폭력을 당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고, 내가 아니면 내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있는지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50여 년이 되도록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마지막 전시를 구성하게 된 것은 작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얻게 된 아이디어이다. 당시 참전 군인과 가족들, 평화 활동가들에게 평화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누군가는 전쟁이 없는 삶, 누군가는 밥 세끼 먹고 살 수 있는 삶, 서로를 존중하는 삶,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용기를 갖는 것 등... 각자가 대답한 평화는 너무나 다양했다. 사실 이 질문에 대답하기를 어려워했던 건 다름 아닌 스스로였다. 어쩌면 지난 2년 동안의 배움은 평화가 무엇인지, 그 길로 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평화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여기까지 배움의 시간을 정리하면서 ‘정의로운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평화로 나아가는 방향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의로운 기억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기억, 평화로 가는 시작이다.
* * * * * *
글, 사진 ㅣ 한베평화재단 짜미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