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듣고 열고 그리고
- 2023년 7월 여름 베트남 평화기행 <가다 듣다 열다> 스케치 1 -
* 한베평화재단이 2023년 7월에 진행한 베트남 평화기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 34명의 평화기행단(참가자 31명, 진행자 3명)이 7월 27일(목)부터 8월 1일(화) 4박 6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중부를 다녀왔습니다. 베트남 평화기행의 전반적인 흐름과 장면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스케치’ 형식으로 이번 평화기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7월 27일(목) 오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은 평화기행단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에 도착했습니다. 평화기행의 첫 번째 일정은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베트남의 유명 커피 전문점 쭝우옌 까페의 세미나실에서 탄 님을 뵈었습니다.

탄 님은 현재 다낭에 거주하고 있고 이날 아드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탄 님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 사건 조사 각하 결정 소식에 굉장히 실망했지만 한국 정부에 계속 진실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아드님도 한 말씀 해주셨는데요,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학살 피해 이야기와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했는데 탄 님의 이야기 못지않게 마음에 콕콕 박혔습니다. 평화기행단은 간담회가 끝나고 탄 님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퐁니·퐁녓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판결문의 베트남어 번역본을 전달했습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각하 결정에 대한 하미학살 피해자들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응우옌티탄 님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또 다른 승소의 주인공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 날, 이른 아침부터 짐을 꾸려 꽝응아이성의 빈호아 마을로 향합니다. 31명의 참가자들은 진행팀의 걱정이 무색하게 약속한 출발시간을 잘 맞추어 주었습니다. 버스에서 2시간 반 동안 이동하며 참가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 <극단 신세계> 등에서 오셨고 부부, 가족 참가자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분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를 환영했습니다. 2007년생부터 1957년생까지, 고등학생부터 다양한 직업군까지 모인 우리는 과연 평화롭게 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요?

오전부터 체감기온 41도가 넘는 날씨의 빈호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시장에서 사온 국화꽃과 향을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뙤약볕에 몸이 익어버립니다. 몸의 변화에 적응도 하기 전 참가자들은 한국군 증오비 앞에 섭니다. 이때부터 머리가 정지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이 폭염보다 더 거대하게 몸을 감쌉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빈호아학살 증오비입니다. 빈호아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모자와 양산을 썼지만 향과 꽃을 바치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배를 했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맨 얼굴이 드러납니다. 하늘에 가닿을 죄악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참가자들은 영혼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향을 바칩니다.

증오비 바로 옆에 있는 쭈옹딘 폭탄 구덩이 앞 위령비(http://kovietpeace.org/b/archive02/4989)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트남도 한 참 더울 시기의 꽝응아이성에서 폭염 속에서도 서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령비 바로 뒤, 집단묘지가 된 폭탄 구덩이를 둘러가며 꽃을 바치고 향을 바쳤습니다. 향에 불을 붙이는 것이 어려웠는데 마른 땅에 향을 꽂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영령들이 혹시나 거부하는 것일까 싶어 더욱 정성껏 마음을 모아 향을 바쳤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소중한 삶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되뇌이면서요.

장학금을 전하러 빈호아 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학교에서 가장 좋은 공간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마련해주시며 환대해주셨습니다. 평화기행에 참여해준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에서 이번 빈호아 초등학교 장학금에 100만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오신 분들은 이번 기행이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이라며 남다른 각오를 보이셨습니다. 평화기행단의 당충전을 위한 간식도 나눠주시고 짐도 들어주신 든든하고 감사했던 참가자였습니다.

빈호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꽃무늬 봉투에 담긴 장학금과 목걸이 볼펜을 선물했습니다. 성조는 엉망이지만 짜오 엠, 깜언 엠(안녕, 고마워)이라고 서툴게 인사하는 정성이 전달되었을까요?

자리를 옮겨 빈호아 마을의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수여식도 진행되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와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님 등이 오셨습니다. 인민위원회 회의장에서 진행된 수여식에는 장학사업에 마음을 함께 하는 인민위원회 관계자분들도 많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전달식이 진행되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손 하트 모양이 귀엽지요?
빈호아 마을의 학살 피해 장소 중에는 꺼우 마을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꺼우 마을 학살지를 안내하는 표지판과 꺼우 마을 학살이 일어났던 들판입니다. 가까이에 동코우물이 있고요. 빈호아 마을 곳곳에 이런 표지판과 위령비, 집단묘지 등이 있습니다.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문득문득 가해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몸가짐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들판 앞에 세워진 위령비에서 이야기를 들은 후 유가족 응우옌니엠 님이 쓰신 시 ‘증오’를 낭독했습니다. 극단 <신세계>의 김보경 배우님의 낭독으로 듣는 응우옌니엠님의 진심이 너무도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가 정성껏 바치는 향이 부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동코우물 근처에 사는 유가족 한 분이 마침 평화기행단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픔과 슬픔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코우물입니다. 베트남의 뚜오이째 신문에서 모금한 돈으로 개보수를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1999년에 한국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가 우물 개보수비용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마을에서 거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빈호아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베평화재단을 비롯한 한국 시민들이 평화의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간 덕분에 증오의 마음이 덜어졌고 작년에는 유가족 한 분이 우물 개보수를 지원해달라며 재단에 요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원사업과 평화기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고되기도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평화의 마음이 꽃피는 것을 봅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시민 모금을 통해 우물 개보수 지원금 마련하여 빈호아 마을에 기금을 전달했고 조만간 개보수 공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빈호아학살 피해자 도안응이아 님을 만났습니다. 평화기행단이 방금 마주했던 꺼우 마을 들판에서 6개월 아기 도안응이아가 학살 피해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한국군이 떠난 후 폭우가 내렸는데, 죽은 엄마의 배 밑에 깔려 있던 아기 도안응이아의 눈에 탄약이 섞인 빗물이 흘러 들어가 그는 시력을 잃고 맙니다. 또한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입은 수류탄 파편상으로 그는 5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이날도 도안응이어 님은 평화기행단에게 참으로 평화롭고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더위와 고된 일정으로 지친 평화기행단에게 도안응이어 님은 ‘봄의 말’이라는 노래를 기타 연주와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저녁에 꽝응아이시의 호텔로 이동하여 탄타오 시인을 만났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학비와 교재 등을 마련하느라 걱정이 많은데 이러한 때에 한베평화재단이 빈호아 마을에 장학금을 전한 것에 탄타오 시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날 탄타오 시인은 모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민간인이라고 강조하면서, “인민들은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결정권은 그들에게 없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인민들인데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전쟁을 계속할 것이냐 멈출 것이냐에 대한 권한은 인민들에게 없습니다. 때문에 인민들은 물어야 합니다. 누가 전쟁을 결정하는지, 도대체 어떠한 권한으로 전쟁을 결정하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탄타오 시인의 시를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에 대한 시 ‘제주 진혼굿 무당’과 ‘제주벚꽃’ 그리고 ‘홍숫날 결혼식’을 낭독했습니다. ‘홍숫날 결혼식’은 고난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베트남 특유의 낙관적인 태도가 잘 그려진 시였습니다.
셋째 날 오전에는 밀라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1968년 3월 16일, 5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밀라이학살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전쟁범죄로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끼에우 관장님과 판탐꽁 전 관장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판탐꽁 전 관장님은 밀라이학살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참가자가 질문을 하면 꼭 일어서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왠지 친근했습니다. 관공서의 장으로 베트남 정부의 ‘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하자’는 취지를 언급하면서도 피해의 아픔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살이라는 폭력적인 비극을 재현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들도 말씀해주셨습니다. (밀라이 학살에 대한 기사보기)
밀라이 박물관 실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504명 희생자들의 이름과 마주하게 됩니다.
박물관에는 미군 사진병 로널드 L. 해벌이 학살 당일 촬영한 흑백 사진과 칼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학살 사건 이후 1년 뒤 언론에서 밀라이학살 사건을 보도하자 해벌은 미공개 자료였던 칼라 사진을 세상에 공개해 전 세계가 밀라이학살 사건을 크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밀라이학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에 헌화와 분향을 했고 끼에우 관장 님과 학살 피해 당시의 마을 집터를 재현한 곳을 둘러봤습니다. 집터로 들어가는 길에 재현되어 있는 군화 자국과 주민들의 맨발 발자국 등이 당시에 이곳이 삶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평화기행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가본 방문지가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여성 성폭력 피해 관련 사진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날 여성들의 뒤편에 있던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었고 그 아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다가 몸이 녹아내리는 더위 속에서도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전쟁은 강자들의 노름판이고 가장 큰 희생자들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희생자들의 평온한 안식을 기원하며 꽃과 향을 바쳤습니다.
스케치 2 보기
글 아침, 짜노
가고 듣고 열고 그리고
- 2023년 7월 여름 베트남 평화기행 <가다 듣다 열다> 스케치 1 -
* 한베평화재단이 2023년 7월에 진행한 베트남 평화기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두 34명의 평화기행단(참가자 31명, 진행자 3명)이 7월 27일(목)부터 8월 1일(화) 4박 6일의 일정으로 베트남 중부를 다녀왔습니다. 베트남 평화기행의 전반적인 흐름과 장면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스케치’ 형식으로 이번 평화기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7월 27일(목) 오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은 평화기행단은 베트남 중부의 다낭에 도착했습니다. 평화기행의 첫 번째 일정은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베트남의 유명 커피 전문점 쭝우옌 까페의 세미나실에서 탄 님을 뵈었습니다.
탄 님은 현재 다낭에 거주하고 있고 이날 아드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탄 님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 사건 조사 각하 결정 소식에 굉장히 실망했지만 한국 정부에 계속 진실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아드님도 한 말씀 해주셨는데요,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학살 피해 이야기와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을 이야기했는데 탄 님의 이야기 못지않게 마음에 콕콕 박혔습니다. 평화기행단은 간담회가 끝나고 탄 님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퐁니·퐁녓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판결문의 베트남어 번역본을 전달했습니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각하 결정에 대한 하미학살 피해자들의 행정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응우옌티탄 님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또 다른 승소의 주인공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 날, 이른 아침부터 짐을 꾸려 꽝응아이성의 빈호아 마을로 향합니다. 31명의 참가자들은 진행팀의 걱정이 무색하게 약속한 출발시간을 잘 맞추어 주었습니다. 버스에서 2시간 반 동안 이동하며 참가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 <극단 신세계> 등에서 오셨고 부부, 가족 참가자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분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를 환영했습니다. 2007년생부터 1957년생까지, 고등학생부터 다양한 직업군까지 모인 우리는 과연 평화롭게 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요?
오전부터 체감기온 41도가 넘는 날씨의 빈호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시장에서 사온 국화꽃과 향을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뙤약볕에 몸이 익어버립니다. 몸의 변화에 적응도 하기 전 참가자들은 한국군 증오비 앞에 섭니다. 이때부터 머리가 정지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이 폭염보다 더 거대하게 몸을 감쌉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빈호아학살 증오비입니다. 빈호아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모자와 양산을 썼지만 향과 꽃을 바치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배를 했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맨 얼굴이 드러납니다. 하늘에 가닿을 죄악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참가자들은 영혼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향을 바칩니다.
증오비 바로 옆에 있는 쭈옹딘 폭탄 구덩이 앞 위령비(http://kovietpeace.org/b/archive02/4989)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베트남도 한 참 더울 시기의 꽝응아이성에서 폭염 속에서도 서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위령비 바로 뒤, 집단묘지가 된 폭탄 구덩이를 둘러가며 꽃을 바치고 향을 바쳤습니다. 향에 불을 붙이는 것이 어려웠는데 마른 땅에 향을 꽂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영령들이 혹시나 거부하는 것일까 싶어 더욱 정성껏 마음을 모아 향을 바쳤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소중한 삶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되뇌이면서요.
장학금을 전하러 빈호아 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학교에서 가장 좋은 공간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마련해주시며 환대해주셨습니다. 평화기행에 참여해준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에서 이번 빈호아 초등학교 장학금에 100만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오신 분들은 이번 기행이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이라며 남다른 각오를 보이셨습니다. 평화기행단의 당충전을 위한 간식도 나눠주시고 짐도 들어주신 든든하고 감사했던 참가자였습니다.
빈호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꽃무늬 봉투에 담긴 장학금과 목걸이 볼펜을 선물했습니다. 성조는 엉망이지만 짜오 엠, 깜언 엠(안녕, 고마워)이라고 서툴게 인사하는 정성이 전달되었을까요?
자리를 옮겨 빈호아 마을의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수여식도 진행되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와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님 등이 오셨습니다. 인민위원회 회의장에서 진행된 수여식에는 장학사업에 마음을 함께 하는 인민위원회 관계자분들도 많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전달식이 진행되는 동안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손 하트 모양이 귀엽지요?
빈호아 마을의 학살 피해 장소 중에는 꺼우 마을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꺼우 마을 학살지를 안내하는 표지판과 꺼우 마을 학살이 일어났던 들판입니다. 가까이에 동코우물이 있고요. 빈호아 마을 곳곳에 이런 표지판과 위령비, 집단묘지 등이 있습니다. 더위에 지쳐가면서도 문득문득 가해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몸가짐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들판 앞에 세워진 위령비에서 이야기를 들은 후 유가족 응우옌니엠 님이 쓰신 시 ‘증오’를 낭독했습니다. 극단 <신세계>의 김보경 배우님의 낭독으로 듣는 응우옌니엠님의 진심이 너무도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가 정성껏 바치는 향이 부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동코우물 근처에 사는 유가족 한 분이 마침 평화기행단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픔과 슬픔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코우물입니다. 베트남의 뚜오이째 신문에서 모금한 돈으로 개보수를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1999년에 한국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가 우물 개보수비용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마을에서 거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빈호아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베평화재단을 비롯한 한국 시민들이 평화의 발걸음을 꾸준히 이어간 덕분에 증오의 마음이 덜어졌고 작년에는 유가족 한 분이 우물 개보수를 지원해달라며 재단에 요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원사업과 평화기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고되기도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평화의 마음이 꽃피는 것을 봅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시민 모금을 통해 우물 개보수 지원금 마련하여 빈호아 마을에 기금을 전달했고 조만간 개보수 공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빈호아학살 피해자 도안응이아 님을 만났습니다. 평화기행단이 방금 마주했던 꺼우 마을 들판에서 6개월 아기 도안응이아가 학살 피해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한국군이 떠난 후 폭우가 내렸는데, 죽은 엄마의 배 밑에 깔려 있던 아기 도안응이아의 눈에 탄약이 섞인 빗물이 흘러 들어가 그는 시력을 잃고 맙니다. 또한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입은 수류탄 파편상으로 그는 5살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이날도 도안응이어 님은 평화기행단에게 참으로 평화롭고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더위와 고된 일정으로 지친 평화기행단에게 도안응이어 님은 ‘봄의 말’이라는 노래를 기타 연주와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저녁에 꽝응아이시의 호텔로 이동하여 탄타오 시인을 만났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학비와 교재 등을 마련하느라 걱정이 많은데 이러한 때에 한베평화재단이 빈호아 마을에 장학금을 전한 것에 탄타오 시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날 탄타오 시인은 모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민간인이라고 강조하면서, “인민들은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결정권은 그들에게 없습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인민들인데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전쟁을 계속할 것이냐 멈출 것이냐에 대한 권한은 인민들에게 없습니다. 때문에 인민들은 물어야 합니다. 누가 전쟁을 결정하는지, 도대체 어떠한 권한으로 전쟁을 결정하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탄타오 시인의 시를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에 대한 시 ‘제주 진혼굿 무당’과 ‘제주벚꽃’ 그리고 ‘홍숫날 결혼식’을 낭독했습니다. ‘홍숫날 결혼식’은 고난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베트남 특유의 낙관적인 태도가 잘 그려진 시였습니다.
셋째 날 오전에는 밀라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1968년 3월 16일, 5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밀라이학살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전쟁범죄로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끼에우 관장님과 판탐꽁 전 관장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판탐꽁 전 관장님은 밀라이학살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참가자가 질문을 하면 꼭 일어서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왠지 친근했습니다. 관공서의 장으로 베트남 정부의 ‘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하자’는 취지를 언급하면서도 피해의 아픔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살이라는 폭력적인 비극을 재현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들도 말씀해주셨습니다. (밀라이 학살에 대한 기사보기)
밀라이 박물관 실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504명 희생자들의 이름과 마주하게 됩니다.
박물관에는 미군 사진병 로널드 L. 해벌이 학살 당일 촬영한 흑백 사진과 칼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학살 사건 이후 1년 뒤 언론에서 밀라이학살 사건을 보도하자 해벌은 미공개 자료였던 칼라 사진을 세상에 공개해 전 세계가 밀라이학살 사건을 크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밀라이학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에 헌화와 분향을 했고 끼에우 관장 님과 학살 피해 당시의 마을 집터를 재현한 곳을 둘러봤습니다. 집터로 들어가는 길에 재현되어 있는 군화 자국과 주민들의 맨발 발자국 등이 당시에 이곳이 삶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평화기행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가본 방문지가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여성 성폭력 피해 관련 사진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날 여성들의 뒤편에 있던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었고 그 아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다가 몸이 녹아내리는 더위 속에서도 살짝 소름이 돋았습니다. 전쟁은 강자들의 노름판이고 가장 큰 희생자들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희생자들의 평온한 안식을 기원하며 꽃과 향을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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