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배움터, 오월광주
1980년 5월18일, 이 날은 특별하다. 우리를 일깨우는 42년 전의 ‘그 날’

지난 17일, ‘그 날’의 오월광주를 만나러 베트남-한국, 청년-청소년들 15명이 떠났다.
처음보는 얼굴들이 많았지만 용산역에서 만난 우리는 대번 하나인 듯 다정해졌다.

KTX로 가니 1시간 40분만에 도착이다. 빨라진 세상만큼 민주주의는 빨리 왔을까?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겨진 민주주의는 어떤 실체일까?
의문을 안고 온 광주에서 첫 환대를 만났다. 선뜻 자신의 차를 몰고 나오셔 우리를 국립묘지까지 태워 주시고 짐을 맡아주신 분들.
이렇게 기쁘게 헌신하시는 분들 속에서 벌써 민주주의는 꽃핀다.

국립이 된 신묘지는 국가적 행사 준비로 바쁘다. 그 틈 사이로 차분히 돌아보고 유영봉안소의 영정들께 추념하고,
망월동묘지에서 민족민주열사묘지로 바뀌어온 구묘지에 계신 낯익은 여러분들을 만났다.
햇빛은 뜨겁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이 영혼들과 교감하는 듯 충만케 한다.
광주 추모연대에서 파견 나오신 이혜빈님의 따뜻한 해설이, 죽은 날 죽은 자들을 오히려 반갑게 만나게 했다.

추모관을 둘러보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눈물, 죽음의 희생 덕분으로 오늘 우리가 있는지 절감했다.
역사는 피를 먹고 자라난다는 속설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3시간 넘게 이어진 묘지순례는 광주가 왜 민주주의의 광장인지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

뜻 깊은 5.18, 국립묘지 앞 버스노선도 518이다. 이 버스는 518의 유적지들을 순례하듯 돌아 518의 주 무대였던 금남로로 간다.
버스 차창으로 온 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휘장들을 바라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되었다.
모든 구호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금남로에는 온갖 난장이 펼쳐지고 있다.
개별적으로 돌아보며 자유시간을 갖고, 특별한 저녁식사를 한 후, 지역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양림동의 숙소로 왔다.

‘평화의 밤’ 전체모임 시간이다. 자기소개와 하루소감들이 생생한 자신들만의 언어로 발표되었다.
말 하나하나가 빛난다. 같은 시공간을 체험하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들이 펼쳐질 수 있다는데 놀랐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은 또 하나로 모인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 우리들의 화두는 공감의 힘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더욱더 커졌다.

둘째 날 18일. 숙소에서 마련해준 고마운 아침밥을 먹고 산책하듯 걸어 민주광장으로 갔다.
옛 전남도청, 상무관, 분수대, 전일빌딩245 등 금남로 주변의 항쟁 명소들을 둘러보는 3시간은 다시 ‘그 날’로 돌아가는 체험의 시간들이었다. 해설사 김도원님을 만나 특별한 공감과 뜨거운 의식을 선물처럼 받았다.
가는 곳마다 그 곳과 연계한 오월 전후사를 망라해 주시고, 광주의 지역조건과 열사들의 투쟁,
그 힘을 받쳐준 시민들의 참여열기까지 뜨겁게 묻어나는 열렬한 해설은 압권이었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광주의 지리적 특색까지 확인하고 마친 518평화기행.
광주의 문화색채가 물씬 나는 점심을 먹은 후, 뜨겁고 엄숙했지만 새로운 체험으로 기쁘기도 했던 1박2일 오월광주를 떠났다.
동아시아 청년 프로젝트로 모인 청년과 청소년! 미얀마청년이 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베트남 청년들의 허심탄회 열정참여에 한국청년들도 기쁘게 화답했고, 특별히 함께 한 청소년 3명에게 큰 배움을 얻기도 했다.
채식 식단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했고, 일정을 정확하게 공지하여
좀더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이니 자기 짐 다 지고 많이 걷는 일정을 넉넉히 소화하는 힘이 있어 고마웠다.
서로에게 우리의 화두를 남겼다고 자부한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
글쓴이 :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장헤옥
민주주의 배움터, 오월광주
1980년 5월18일, 이 날은 특별하다. 우리를 일깨우는 42년 전의 ‘그 날’
지난 17일, ‘그 날’의 오월광주를 만나러 베트남-한국, 청년-청소년들 15명이 떠났다.
처음보는 얼굴들이 많았지만 용산역에서 만난 우리는 대번 하나인 듯 다정해졌다.
KTX로 가니 1시간 40분만에 도착이다. 빨라진 세상만큼 민주주의는 빨리 왔을까?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처럼 남겨진 민주주의는 어떤 실체일까?
의문을 안고 온 광주에서 첫 환대를 만났다. 선뜻 자신의 차를 몰고 나오셔 우리를 국립묘지까지 태워 주시고 짐을 맡아주신 분들.
이렇게 기쁘게 헌신하시는 분들 속에서 벌써 민주주의는 꽃핀다.
국립이 된 신묘지는 국가적 행사 준비로 바쁘다. 그 틈 사이로 차분히 돌아보고 유영봉안소의 영정들께 추념하고,
망월동묘지에서 민족민주열사묘지로 바뀌어온 구묘지에 계신 낯익은 여러분들을 만났다.
햇빛은 뜨겁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이 영혼들과 교감하는 듯 충만케 한다.
광주 추모연대에서 파견 나오신 이혜빈님의 따뜻한 해설이, 죽은 날 죽은 자들을 오히려 반갑게 만나게 했다.
추모관을 둘러보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눈물, 죽음의 희생 덕분으로 오늘 우리가 있는지 절감했다.
역사는 피를 먹고 자라난다는 속설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3시간 넘게 이어진 묘지순례는 광주가 왜 민주주의의 광장인지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
뜻 깊은 5.18, 국립묘지 앞 버스노선도 518이다. 이 버스는 518의 유적지들을 순례하듯 돌아 518의 주 무대였던 금남로로 간다.
버스 차창으로 온 시내에 내걸린 현수막, 휘장들을 바라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되었다.
모든 구호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금남로에는 온갖 난장이 펼쳐지고 있다.
개별적으로 돌아보며 자유시간을 갖고, 특별한 저녁식사를 한 후, 지역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양림동의 숙소로 왔다.
‘평화의 밤’ 전체모임 시간이다. 자기소개와 하루소감들이 생생한 자신들만의 언어로 발표되었다.
말 하나하나가 빛난다. 같은 시공간을 체험하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들이 펼쳐질 수 있다는데 놀랐다.
그러나 다른 생각들은 또 하나로 모인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 우리들의 화두는 공감의 힘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더욱더 커졌다.
둘째 날 18일. 숙소에서 마련해준 고마운 아침밥을 먹고 산책하듯 걸어 민주광장으로 갔다.
옛 전남도청, 상무관, 분수대, 전일빌딩245 등 금남로 주변의 항쟁 명소들을 둘러보는 3시간은 다시 ‘그 날’로 돌아가는 체험의 시간들이었다. 해설사 김도원님을 만나 특별한 공감과 뜨거운 의식을 선물처럼 받았다.
가는 곳마다 그 곳과 연계한 오월 전후사를 망라해 주시고, 광주의 지역조건과 열사들의 투쟁,
그 힘을 받쳐준 시민들의 참여열기까지 뜨겁게 묻어나는 열렬한 해설은 압권이었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광주의 지리적 특색까지 확인하고 마친 518평화기행.
광주의 문화색채가 물씬 나는 점심을 먹은 후, 뜨겁고 엄숙했지만 새로운 체험으로 기쁘기도 했던 1박2일 오월광주를 떠났다.
동아시아 청년 프로젝트로 모인 청년과 청소년! 미얀마청년이 오지 못해 아쉬웠지만,
베트남 청년들의 허심탄회 열정참여에 한국청년들도 기쁘게 화답했고, 특별히 함께 한 청소년 3명에게 큰 배움을 얻기도 했다.
채식 식단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했고, 일정을 정확하게 공지하여
좀더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이니 자기 짐 다 지고 많이 걷는 일정을 넉넉히 소화하는 힘이 있어 고마웠다.
서로에게 우리의 화두를 남겼다고 자부한다.
인권. 평화. 민주주의!!
글쓴이 :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장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