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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평화기행후기> Recall 1964 / 김나영

2024년 8월 베트남 평화기행 후기


Recall 1964  


김나영(평화기행 참가자)


남부여성박물관에 전시된 그림 © 김나영

이번 여름방학에는 한베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평화기행에 함께 가 보는 게 어때?’ 학기 중 로마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엄마가 조심스럽게 권유했다석사학위 논문을 제때에 마무리하고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편히 쉬고 싶은 방학 중 불지옥을 연상케 하는 더위 속으로 나를 내던져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암 투병 이후 몸이 약해진 엄마가 평화 기행이라니기행을 통해서 나와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엄마는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가난한 겉모습 너머 품고 있는 위대함을 종종 이야기해주곤 했다다행히 석사학위를 무사히 마무리하고엄마가 나에게 주고 싶어하는 그것을 꼭 받고 싶어 평화기행 참여를 결정했다예상대로 베트남의 날씨는 더웠다우리의 여정을 동반해 준 짜노님과 아침님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 속에 무사히 하루하루를 마쳤다뜨거운 햇살과 더위 속에 야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맥주 한잔 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겨우 씻고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었다이동 중 시원한 버스 안에서 우리는 틈틈이 이야기를 나눴다전쟁의 민낯과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서시대의 소용돌이 가운데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서.


 

 퐁니 위령비 참배 © 아침


#1 베트남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을 전쟁 후 중요하게 해야 할 일로 여겼다평화 기행단은 그러한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가 담긴 전쟁 증적 박물관남부 여성 박물관’, ‘어머니 영웅 박물관’, 그리고 다낭 박물관을 방문했다. ‘전쟁 증적 박물관이 사진과 글로 증언하는 전쟁과 폭력의 흔적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시대와 장소를 불분하고 전쟁과 폭력불의는 똑같이 끔찍하다반갑지 않은 익숙함이었다베트남 전쟁 중 일어났던 전쟁 범죄에 대한 증언 못지 않게사진 속에 보이는 병사들의 얼굴이 마음에 남았다어떤 이유에서 참전을 했든 사지에 몰려 다른 인간을 해하고 죽이면서 젊은 청년들의 영혼은 지치고 무너졌을 것이다살아남기 위해서 죽여야 했을 것이고그렇게 자기를 잃어갔을 것을 생각하니 허탈했다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통에 휩쓸려가고 있을 청년들이 떠올랐다


남부 여성 박물관어머니 영웅 박물관은 전쟁 중 여성을 다만 폭력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끊임없이 생명을 길러내고 보살피고 싸운 위대한 이들로 기억한다이름을 날린 정치가나 전쟁 지휘관이 아니라 여성들이 전쟁 속 흔들리는 나라를 어떻게 지켜냈는지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여성들은 사람들을 지켜냈다.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이것을 기억하는 여성들의 자기이해는 얼마나 단단하고 품위가 있을까



퐁니 위령비 나오는 길 © 양희



#2 위령비를 찾아 걸어가는 길은 고요했다사람들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붉은 연기와 피 냄새빼앗겨 버린 것들에 대한 억울함과 분통을 생각하며 착잡한데따가운 햇살 아래 보이는 마을은 평화롭고 정겨웠다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들의 끔찍하고 아픈 기억을 듣고위령비 앞에서 향을 피우며 헌화를 할 때에도 조용한 시골 마을의 하늘은 맑았고나무는 바람 결에 아름답게 춤을 추었다마치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찾아와 당신네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듣는 우리와 함께 머무는 것 같았다


8살의 어린 나이에 총을 맞아 복부에 피를 흘리면서 시체더미에서 엄마를 찾아 헤매던 퐁니 퐁녓 마을의 탄 아주머니는 시도때도 없이 떠올랐을 그 기억을 담고 어떻게 살아왔을까갑자기 들이닥쳐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고 방공호에 집어 던지던 한국군의 거친 손길이 떠오를 때마다 하미마을의 탄 아주머니는 무엇을 했을까당시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에 더욱 아픔이 아팠고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오신 것이 고마웠다빗물에 흘러 들어간 탄약에 눈이 멀고 몸도 성치 않아 고생하며 자란 도안응이어 아저씨는 한국에서 온 평화기행단을 따뜻하게 맞아주며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위하여 노래를 불러주었다


도안응이어 님과 활짝 웃는 하티릿 님 © 정효진



#3 일정 중 빈호아 대학생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한베평화재단에서 마련한 장학금을 수여하기에 앞서 조를 나누어 학생들과 평화기행단이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 시간을 가졌다단순한 미션이었지만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헤어질 때자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는지 재차 물으며다시 만날때까지 이름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베트남 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사과와 화해의 몸짓을 다양하게 지속하는 한베평화재단이 새삼 고마웠다퐁니 퐁녓 마을의 위령비는 한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한국군들이 파괴한 빈호아 마을의 우물은 한국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보수되었다우리 평화기행단은 그저 마음으로 듣고향과 꽃을 올리며 기도할 수 있을 뿐이었다위령비 앞에서 향을 올리고 기도하면서그곳에서 처참하게 죽임당한 영혼들과느닷없이 찾아오는 생생한 기억에 슬퍼하고 분노할 생존자들그 자리에서 악을 행하면서 어두움 속에 갇힌 영혼들을 모두 생각했다벌어진 일에 비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졌지만우리 이전에 왔던 사람들과 이후에 올 사람들의 이런 작은 행위들로 그 땅에 묻은 악과 폭력과 죽음의 흔적이 치유되고선과 사랑과 생명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했다  



이름을 알게된 빈호아의 대학생들과 함께 © 이정규


그리스도교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신보다 조금 못 하게 만드셨다고 고백한다그러나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창조를 그리는 시가(詩歌)는 금방 배신과 형제 살인 사건으로 점철된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가장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일을 할 수도 있지만어둠에 지지 않고 생명과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때로는 다른 이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는 인간의 얼굴이 평화기행에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