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신나영(고양자유학교)
쌀국수, 뜨거운 햇빛의 열기,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오토바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 코코넛 등등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5년 전 혼자 배낭을 꾸려 베트남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여행에서 길을 걷다 반미 샌드위치를 사먹었던 적이 있다. 기진맥진 한 상태로 앉아서 한참 먹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며 손짓을 했다. 한참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앉아있는 쪽에 해가 들어 눈이 부시니,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와 앉으라는 말이었다. 지친 상태에서 그녀의 사소한 따뜻함이 무척 감사했다. 맛있었던 반미와 주인아주머니의 다정함 덕분에 여행 내내, 베트남 사람들이 건네주는 인사가 참 따스했다.

퐁니마을 위령비로 평화기행단이 걸어가고 있다. © 신나영
바쁘게 삶을 살아내다 우연한 기회로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때 베트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더운 햇빛에서 시원한 그늘로 손짓을 하던 반미 아주머니의 미소가 생각났다. 그 따스함이 그리워져 평화기행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다른 참가자분들에 비해 나의 마음은 다소 가벼웠다. 아무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거 같다. 베트남전하면 생각나는 건 사진전에서 보았던 ‘네이팜탄 소녀’와 영화 ‘포레스트검프’에 나왔던 몇 장면이 다였다. 한베평화재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베트남전에서 자행되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 가서 새로운 걸 배우고 한국을 잠시 떠나 마음 편히 쉬고 와야지 했던 나의 마음은, 기행을 준비하면서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재단 홈페이지 글들과 몇몇 다큐멘터리, 기사들을 보며 이건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명백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는커녕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엇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 같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베트남과 제주, 광주를 들여다보면 무자비한 이들과 그로 인한 명백한 고통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무엇보다 선명한 일들을 부정하는 현재도 너무 비슷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베트남에 도착했다. 기행단 사람들과 함께였다. 이름을 부르며 공을 주고 받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했고,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5일 동안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1. 박물관
평화기행 중 많은 박물관을 다녀왔다. 전쟁증적박물관과 남부여성박물관, 베트남 어머니 영웅 동상 박물관, 다낭박물관까지 전쟁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너무 끔찍한 게 많아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사람이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전쟁증적박물관에서 베트남전의 현실을 마주했다. 피해의 규모와 벌어진 자행들, 흩뿌려진 고엽제로 인해 아직도 전쟁 중인 개인들이 있었다. 사진과 글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 모습은 ‘전시’보다는 ‘증언’에 가까웠다. 남부여성박물관에서는 눈빛이 빛나던 수많은 여성 열사의 사진들이 기억난다. 카메라를 응시했지만 수많은 사건을 바라보고 직시했을 사람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게 중요할거 같다는 생각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자응언 작가와 평화기행단 © 자응언 작가님 딸
#2. 자응언 작가와의 만남
9년 동안 종군기자 활동을 했던 베트남 대표 페미니즘 소설가 자응언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피부로 겪어낸 전쟁은 그녀의 글로 남아 숨 쉬고 있었다. 빛나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들려주신 이야기들이 참 귀했다. 기자활동을 하던 때 매일매일 동료들과 언제 헤어지게 될지 몰라 깊은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하셨던 것. 아픔을 겪고 슬픔을 겪었더라도 계속 울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 미래를 향해 웃고 있어야 한다며 보여주신 미소. 대나무처럼 유연하고 강하게 베트남이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들려주신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나누어 먹은 직접 만들어 대접해주신 코코넛젤리처럼 모든 말씀이 귀하고 감사했다.
#3. 퐁니 마을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가장 많은 이야기가 알려진 퐁니 마을.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한 다낭에서 차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곳이다. 퐁니·퐁녓 위령비는 우리가 처음 참배를 한 곳이었다. 먼저와 기다리고 계시던 응우옌티탄 선생님. 기사와 다큐멘터리로 먼저 접한 탄 선생님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직접 8살, 그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시며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의 고통이 전해졌고 감히 상상하지 못할 무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을 손으로 집어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는데,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희생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날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오래된 야유나무와 희생자 이름이 빼곡히 적힌 위령비에 향과 꽃을 올렸다. 죄송하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위령비 참배가 끝나고 난 뒤 퐁니 마을에 위치한 작은 절을 방문했다. 절에서는 희생자 분들을 위해 많은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로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유가족이신 응우옌티바와 응우옌티호아 선생님을 만났다. 두 분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고 꼭 안아주셨다. 반겨주시는 모습에 이분들이 정말 커다래보였다.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따뜻한 모습이 무척 감사했다. 평화로운 마을의 들판을 지나오며 과거와는 다르게 언제까지나 이곳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길 바랐다.
빈호아 대학생 장학금 수여식에서 미션을 함께 수행한 모둠 사람들과 빈호아 대학생들 © 아침
#4. 빈호아 마을
베트남말로 평화가 ‘호아빈’이라고 한다. 평화라는 말의 앞뒤 글자가 바뀐 이름의 마을 입구에는 한국군을 향한 증오비가 세워져있다. 무려 430명의 학살이 일어났던 빈호아 마을. 재단에서도 마음을 전하고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해주셨다. 이곳에서는 마을 친구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유가족 분들을 만났다. 도안응이어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노래에 우리가 다같이 ‘만남’을 답가로 불러드렸다. 우리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족을 해한 사람과 같은 국적인 사람들을,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집으로 흔쾌히 초대해주고 차를 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마음이 참 귀했다. 갓난쟁이 때 전쟁을 겪고 누나와 형과 함께 삶을 살아낸 선생님께 최초의 기억을 여쭤봤다.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을 말씀해주셨다. 보여주신 미소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보내셨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아 눈물이 날거 같았다. 마지막 잡아주시던 손이 너무 다정해서 감사했다.
#5. 하미 마을
연꽃으로 가려진 위령비 앞에서 응우옌티탄 선생님의 증언을 들었다. 그 누구의 마음에도 꽃이 피지 않았는데 멋대로 연꽃을 그려 넣은 위령비는 이질감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하미마을에서 우리는 꽃과 향을 올리고 흩어져서 유가족 분들을 만났다. 우리 모둠은 응우옌럽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가족들을 잃고 전쟁 후 지뢰를 밟게 되어 두 눈도 잃으신 럽 선생님은 가수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가족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셨다. 고운 목소리로 몇 곡이나 불러주신 노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 같다. 럽 선생님 댁에 있는 재단에 향을 올리고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일을 나누어먹었다. 6월에 오면 더 맛있는 잭프룻을 선물하겠다고 하시던 모습. 그때 잭프룻이 정말 맛있다는 말씀. 유쾌하신 모습이 참 감사했다.

하미마을 럽아저씨 댁에서 © 신나영
기행동안 만나 뵌 유가족 분들은 우리에게 미소와 다정함을 아낌없이 보내주셨다. 악수와 포옹으로 온기를 전해주시고 차와 과일을 나누어먹으며 마음을 나눴다. 들려주신 이야기들과 자료로 먼저 만나본 유가족 분들의 사연은 너무나도 무겁고 슬펐는데,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눈 순간은 참 다정했다. 반겨주신 마음이 감사하고 소중했다. 베트남하면 생각나는 따스한 미소는 더 알록달록한 색이 되어 나에게 남게 되었다. 함께 기행을 한 기행단 선생님들과 마지막 소감을 나누었던 때가 생각난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함께한 기행의 장면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같은 기억 안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마중물이 되어 더 큰 물길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였다. 빛나는 햇빛처럼 반짝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 더는 상처받는 사람이 없길. 진실을 마주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래본다.
하미마을 위령비 앞 집단묘지에 헌화 © 아침
베트남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신나영(고양자유학교)
쌀국수, 뜨거운 햇빛의 열기,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오토바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 코코넛 등등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5년 전 혼자 배낭을 꾸려 베트남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여행에서 길을 걷다 반미 샌드위치를 사먹었던 적이 있다. 기진맥진 한 상태로 앉아서 한참 먹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며 손짓을 했다. 한참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앉아있는 쪽에 해가 들어 눈이 부시니,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와 앉으라는 말이었다. 지친 상태에서 그녀의 사소한 따뜻함이 무척 감사했다. 맛있었던 반미와 주인아주머니의 다정함 덕분에 여행 내내, 베트남 사람들이 건네주는 인사가 참 따스했다.
퐁니마을 위령비로 평화기행단이 걸어가고 있다. © 신나영
바쁘게 삶을 살아내다 우연한 기회로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때 베트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더운 햇빛에서 시원한 그늘로 손짓을 하던 반미 아주머니의 미소가 생각났다. 그 따스함이 그리워져 평화기행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다른 참가자분들에 비해 나의 마음은 다소 가벼웠다. 아무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거 같다. 베트남전하면 생각나는 건 사진전에서 보았던 ‘네이팜탄 소녀’와 영화 ‘포레스트검프’에 나왔던 몇 장면이 다였다. 한베평화재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베트남전에서 자행되었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베트남에 가서 새로운 걸 배우고 한국을 잠시 떠나 마음 편히 쉬고 와야지 했던 나의 마음은, 기행을 준비하면서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재단 홈페이지 글들과 몇몇 다큐멘터리, 기사들을 보며 이건 일본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명백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는커녕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엇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거 같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베트남과 제주, 광주를 들여다보면 무자비한 이들과 그로 인한 명백한 고통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무엇보다 선명한 일들을 부정하는 현재도 너무 비슷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베트남에 도착했다. 기행단 사람들과 함께였다. 이름을 부르며 공을 주고 받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했고,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고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5일 동안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평화기행 중 많은 박물관을 다녀왔다. 전쟁증적박물관과 남부여성박물관, 베트남 어머니 영웅 동상 박물관, 다낭박물관까지 전쟁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들은 너무 끔찍한 게 많아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사람이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전쟁증적박물관에서 베트남전의 현실을 마주했다. 피해의 규모와 벌어진 자행들, 흩뿌려진 고엽제로 인해 아직도 전쟁 중인 개인들이 있었다. 사진과 글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그 모습은 ‘전시’보다는 ‘증언’에 가까웠다. 남부여성박물관에서는 눈빛이 빛나던 수많은 여성 열사의 사진들이 기억난다. 카메라를 응시했지만 수많은 사건을 바라보고 직시했을 사람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게 중요할거 같다는 생각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자응언 작가와 평화기행단 © 자응언 작가님 딸
#2. 자응언 작가와의 만남
9년 동안 종군기자 활동을 했던 베트남 대표 페미니즘 소설가 자응언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피부로 겪어낸 전쟁은 그녀의 글로 남아 숨 쉬고 있었다. 빛나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들려주신 이야기들이 참 귀했다. 기자활동을 하던 때 매일매일 동료들과 언제 헤어지게 될지 몰라 깊은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하셨던 것. 아픔을 겪고 슬픔을 겪었더라도 계속 울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 미래를 향해 웃고 있어야 한다며 보여주신 미소. 대나무처럼 유연하고 강하게 베트남이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들려주신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함께 나누어 먹은 직접 만들어 대접해주신 코코넛젤리처럼 모든 말씀이 귀하고 감사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가장 많은 이야기가 알려진 퐁니 마을.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한 다낭에서 차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곳이다. 퐁니·퐁녓 위령비는 우리가 처음 참배를 한 곳이었다. 먼저와 기다리고 계시던 응우옌티탄 선생님. 기사와 다큐멘터리로 먼저 접한 탄 선생님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직접 8살, 그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시며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의 고통이 전해졌고 감히 상상하지 못할 무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들을 손으로 집어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는데,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희생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날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오래된 야유나무와 희생자 이름이 빼곡히 적힌 위령비에 향과 꽃을 올렸다. 죄송하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위령비 참배가 끝나고 난 뒤 퐁니 마을에 위치한 작은 절을 방문했다. 절에서는 희생자 분들을 위해 많은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로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유가족이신 응우옌티바와 응우옌티호아 선생님을 만났다. 두 분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고 꼭 안아주셨다. 반겨주시는 모습에 이분들이 정말 커다래보였다.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따뜻한 모습이 무척 감사했다. 평화로운 마을의 들판을 지나오며 과거와는 다르게 언제까지나 이곳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롭길 바랐다.
#4. 빈호아 마을
베트남말로 평화가 ‘호아빈’이라고 한다. 평화라는 말의 앞뒤 글자가 바뀐 이름의 마을 입구에는 한국군을 향한 증오비가 세워져있다. 무려 430명의 학살이 일어났던 빈호아 마을. 재단에서도 마음을 전하고 연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해주셨다. 이곳에서는 마을 친구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유가족 분들을 만났다. 도안응이어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노래에 우리가 다같이 ‘만남’을 답가로 불러드렸다. 우리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본다. 가족을 해한 사람과 같은 국적인 사람들을,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집으로 흔쾌히 초대해주고 차를 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마음이 참 귀했다. 갓난쟁이 때 전쟁을 겪고 누나와 형과 함께 삶을 살아낸 선생님께 최초의 기억을 여쭤봤다.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을 말씀해주셨다. 보여주신 미소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보내셨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아 눈물이 날거 같았다. 마지막 잡아주시던 손이 너무 다정해서 감사했다.
#5. 하미 마을
연꽃으로 가려진 위령비 앞에서 응우옌티탄 선생님의 증언을 들었다. 그 누구의 마음에도 꽃이 피지 않았는데 멋대로 연꽃을 그려 넣은 위령비는 이질감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하미마을에서 우리는 꽃과 향을 올리고 흩어져서 유가족 분들을 만났다. 우리 모둠은 응우옌럽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가족들을 잃고 전쟁 후 지뢰를 밟게 되어 두 눈도 잃으신 럽 선생님은 가수였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가족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셨다. 고운 목소리로 몇 곡이나 불러주신 노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 같다. 럽 선생님 댁에 있는 재단에 향을 올리고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일을 나누어먹었다. 6월에 오면 더 맛있는 잭프룻을 선물하겠다고 하시던 모습. 그때 잭프룻이 정말 맛있다는 말씀. 유쾌하신 모습이 참 감사했다.
하미마을 럽아저씨 댁에서 © 신나영
기행동안 만나 뵌 유가족 분들은 우리에게 미소와 다정함을 아낌없이 보내주셨다. 악수와 포옹으로 온기를 전해주시고 차와 과일을 나누어먹으며 마음을 나눴다. 들려주신 이야기들과 자료로 먼저 만나본 유가족 분들의 사연은 너무나도 무겁고 슬펐는데,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눈 순간은 참 다정했다. 반겨주신 마음이 감사하고 소중했다. 베트남하면 생각나는 따스한 미소는 더 알록달록한 색이 되어 나에게 남게 되었다. 함께 기행을 한 기행단 선생님들과 마지막 소감을 나누었던 때가 생각난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함께한 기행의 장면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같은 기억 안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마중물이 되어 더 큰 물길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였다. 빛나는 햇빛처럼 반짝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 더는 상처받는 사람이 없길. 진실을 마주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래본다.
하미마을 위령비 앞 집단묘지에 헌화 ©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