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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평화기행 후기> 인정하기, 기억하기 그리고 연대하기 / 장재원

<Beyond 50th - 2025년 1월 평화기행후기>



인정하기기억하기 그리고 연대하기


장재원(평화기행 참가자)


본격적인 기행 시작 며칠 전, 5일간의 일정이 빼곡히 적힌 안내문을 읽어보던 중 느꼈던 감정이 여전히 생생하다하미하꽝주이탄그리고 퐁니·퐁녓이처럼 각 위령비 앞 단어들이 주는 낯설음으로부터 상기되던 나의 무지함에 나는 다시금 정신을 차려야 했다그래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갈 순 없지기행에 가기만 하면 성찰할 기회들이 자연스레 내 눈앞에 던져질 것이란 안일한 기대에서 벗어나고자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책과 다큐멘터리 몇 가지를 급히 찾아보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바쁘게 보냈다그리고 도착한 베트남쨍한 하늘과 빼곡한 오토바이 행렬 속 사람들이 주는 생동감은 내가 상상했던 전쟁의 상처와는 어쩐지 거리가 먼 듯해 보였다


#1 전쟁증적박물관

그렇게 느끼던 것도 잠시곧이어 방문한 전쟁증적박물관에서 나는 그 상처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증적이라는 글자 그대로 베트남전쟁 당시의 잔혹한 참상은 박물관 곳곳에 충격적일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게 기록되어 있었다폭발물과 총상에 짓이겨진 살갗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들을 검열 하나 없이 전시해 놓은 것은 물론 고엽제로 인해 변형된 사람들의 신체가 통로마다 붙어있었다그건 기록의 형태를 갖춘 폭로였다그곳엔 전범국과 참전국의 행적을 낱낱이 고발하고 그에 따른 피해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란 다짐이 묻어있었다특히 이를 만인의 평등함을 설파하는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가해국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들의 언어로 재차 성찰하게 했다는 점은 그 효과를 더욱 극대화했다.



#2 구찌 땅굴



전쟁증적박물관이 전쟁의 상흔을 보여줬다면 다음날 방문한 구찌 땅굴은 그 이면의 베트남인들의 생존방식과 땅 밑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그들의 기개를 보여줬다베트콩 승리의 주요 요인으로써 평가되는 이 땅굴은 현재 일부 개방되어 당시의 부비트랩 전시와 관광객들이 실제 땅굴 내부를 체험할 수 있게끔 관광지화되어 있었다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건 낙엽 밑 숨겨진 여러 개의 칼날도일반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도 힘든 땅굴의 작은 입구 그 무엇도 아닌 이를 배경 삼아 들려오던 커다란 총성들이었다알고 보니 관광지 끝 무렵 실제 사격체험장이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선 채 멀리 있는 과녁에 총구를 들이 밀고 있었다그 순간 나는 이 공간이 땅굴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고 있다 확신하며 두 귀를 막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3 남부여성박물관


여성들이 전쟁에서 가장 흔히 묘사되는 카테고리 중 하나는 아마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특히 세계 2차대전 당시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논의가 그렇다전범국인 일본 정부의 비상식적인 그리고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의 결합은 이 사안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소녀들이라는 피해자적 관념 그 이상의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이런 측면에서 베트남 남부여성박물관 방문은 내겐 부끄러움과 부러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경험하게 했다먼저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평생의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마주하거나 나아가 살해당한 여성들을 보며 참전국으로써 한국이 그러한 가해 과정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그러나 그 처절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해방운동 전선에 있던 정말 다양한 여성들의 투쟁현장을 굉장히 짜임새 있게 기록하고 전시한 베트남 정부의 노력에 감탄하면서 이 같은 공간이 한국에도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4 하미 위령비 참배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노란 헌화 그리고 거대한 연꽃 그림. 이들은 내가 하미 위령비 참배를 떠올릴 때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잔상들이다. 버스를 타고 인적이 드문 길을 한참 들어가다 보면 작은 마을 속 허허벌판 위 위령비 건물 한 개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우리 일행은 다 같이 입을 맞춰 피해자 이름을 한명 한명씩 호명한 뒤 노란 국화를 내려놓으며 이들을 추모했다. 그리고 모두의 눈에 비친 비석 뒷면은 우리의 무거운 마음에 그 추의 무게를 더한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지원 건립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도 사건의 참상을 전하는 비문 내용을 문제삼은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현재 거대한 연꽃 그림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이때 ‘깨끗한 마음’이라는 분홍 연꽃의 꽃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비석을 가운데 두고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이 뒤섞여 그곳을 차갑게 맴돈다.


여기에 다 담진 못했지만 이 외에도 전 전쟁증적박물관장인 후인응옥번, 피해생존자인 응우엔티탄, 하미마을 피해자·유가족, 다낭외대 한국어학과 학생 등 베트남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의 기회들 역시 이 기행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역사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추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 새로운 평화의 가능성 확인했다. 결국 이를 위해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인정하기, 기억하기 나아가 함께 실천하기가 아닐까.


글 : 장재원(평화기행 참가자)

사진 : 한베평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