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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하미 마을에서 우리는 만났어요 - 베트남 평화기행 Beyond 50th 에피소드

하미 마을에서 우리는 만났어요
- 2025년 1월 베트남 평화기행 Beyond 50th 에피소드 -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홍을 만난 평화기행단


베트남 평화기행단 Beyond 50th이 지난 1월 9일(목)부터 13일(화)까지, 4박 6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평화기행 일정 중에 뜻깊고, 의미 있고, 인상 깊은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요, 그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하미 마을 조별 방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22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5개 조로 나뉘어 하미 마을 또는 하미 마을 인근에 살고 계신 하미학살 피해생존자와 유가족 분들을 찾아뵈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 활동가들은 동행하지 않고 다낭외대 한국어학부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아 1시간 정도의 만남을 진행했습니다.

하미 마을에 살고 계신 피해생존자 부이티마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봉, 유가족 응우옌럽 님 그리고 하미 마을 인근에 살고 계신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홍, 당티카 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조별 만남의 기본 취지는 피해유가족 분들의 안부를 여쭙고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것에 있습니다. 학살과 관련된 기억을 자세히 묻기보다는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그날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면 물론 듣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올까? 재단 활동가들은 만남의 내용이 참 궁금한데요, 미션을 마치고 돌아오는 참가자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 만남이 어떠했는지 대번 짐작이 갑니다. 정해진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다, 걱정도 되었지만 직접 만나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온 통역사 친구들이 중간 역할을 잘해줘 고마웠다 등의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피해생존자 부이티마이(가장 오른쪽)와 남편(가운데) 분을 만났습니다.


피해생존자 부이티마이 님을 만나고 온 ‘땅’조의 장재원 님께서 조별 만남 기록을 재단에 전해주셨습니다. 마이 님은 한국 사람들을 자주 만난 경험이 없는 분이라 활동가들이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요, 마이 님께서 참가자들을 따스히 반겨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이 님과 ‘땅’조가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땅] 들려주신 증언 내용을 읽고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마이] 정말 외로웠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꺼내서 얘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학살 당시 발목 쪽에 상처가 났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무릎도 아프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서 걱정이 됩니다.

[땅] 설날 같은 명절 때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마이] 같은 마을에 살던 남편과 23살에 결혼했어요. 우리 가족 관련 제사는 결혼 후 모두 남편이 도맡아 지내고 있어요. 학살 피해로 숨진 가족과 관련 사당을 짓는 일 등을 모든 일을 남편이 챙겼어요. 정말 착한 남편이죠. 지금은 딸들이 명절이면 찾아와 모여서 집이 북적북적한답니다. 매년 음력 1월 24일에는 유가족들이 모두 위령비에 모여 합동 제사를 지내고요.

[땅] 가족을 잃은 후 삶은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마이] 가족을 학살로 모두 잃고 저에겐 아버지만 남았는데 아버지도 1973년도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 후 친척 집을 전전하다 현재 남편을 만나 지금처럼 살고 있고요. 혼자가 된 뒤로는 친척 집을 전전했어요. 친척들이 다 논밭에서 일을 하면 저는 보모처럼 집에서 아기(사촌 동생)를 돌보고 소를 키우곤 했죠. 그게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에요. 그동안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하면서 살아왔어요. 지금도 딸들과 친척들의 도움을 받고 살고 있고요. 학살의 아픔은 잊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고 있는 거죠. 일단 다 옛날 일이니까 힘들어도 견디고 있는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찾아와줘서 나는 고마워요. 이렇게 이따금 만나는 것이 정말 고맙답니다. 

[땅]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 걸까요?

[마이] 슬하에 딸이 4명인데 그중 3명이 결혼을 했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살고 있고 1명은 아주 근처에 살고 있어요. 저는 딸들이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않아요. 어머니인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제가 아들이 없어서 같이 살 자식이 없기 때문이죠. 딸들이라도 근처에 살면 바로바로 올 수 있으면 싶었어요.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제 조카는 한국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한베평화재단과 연락만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한국인들과 만나고 싶어요. 원래는 여러 작물의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다리 건설 공사에 내 소유의 땅이 들어가서 그 부분은 보상을 받고 농사는 예전만큼 짓지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농사가 주요 생계 수단이었는데 요즘은 건강도 좋지 못해 그냥 작은 소일거리 정도로 하고 있고요. 

[땅] 한국 사람들이 위령비에 참배할 때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마이]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지난 일에 대한 것들은 이젠 뒤로 보내고 싶고 지금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전쟁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지는 않아서 가능한 것도 있어요. 지금 베트남과 한국은 친구예요. 한베평화재단에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활동가들이 있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땅] 마지막으로 하미 마을을 찾는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마이] 한국 사람들이 하미 마을을 위한 작은 봉사활동 같은 거라도 좋으니 지속적인 지원이나 도움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통역 | 응우옌티빅응옥
기록 | 장재원 참가자
정리 | 짜노 활동가



유가족 응우옌럽(오른쪽)과 아내 분을 만났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럽의 어머니, 피해생존자 고(故) 팜티호아 님.


호이안에 살고 있는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당티카를 만난 평화기행단
서진선 작가가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에게 현재 진행 중인 그림책 초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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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선 작가가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에게 현재 진행 중인 그림책 초안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베트남 평화기행단
글 정리 | 짜노 활동가


하미 마을 조별 만남 안내와 통역을 위해 정말 수고해주신 
통역사 응우옌티빅응옥, 응우옌쩐타오니, 티에우티후에찌, 
응우옌티지아미, 도안당땀바오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