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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4월 옥수수다 스케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 찐 티 한이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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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옥수수다 스케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전쟁의 기억은 국가의 전유물일까요? 아니면 역사에 책임을 묻는 당사자의 기억, 공동체의 집단기억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기억의 연대를 꿈꿀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품고, 지난 4월 23일(목)에 부경대학교 글로벌지역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베트남인 연구자 찐 티 한이 님을 이야기 손님으로 모시고, 18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2026년 첫 번째 옥수수다를 열었습니다. 이날은 찐 티 한이 님의 발제를 시작으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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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 연구자 찐 티 한이 님의 발제 모습(오른쪽 가운데 아이보리색 옷)


찐 티 한이 님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과 그 이후의 ‘기억의 정치’를 연구해온 연구자입니다. 그는 빈딘성 현장을 직접 오가며, 국가가 아닌 지역과 개인이 어떻게 기억을 이어가는지에 주목해왔습니다.


연구의 출발은 개인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류가 확산되던 시기, 일부 베트남 시민들이 전쟁의 기억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질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한국의 베트남전 파병이 짧게 언급될 뿐, 민간인 학살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공부를 시작하며 당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빈딘성에 주목했습니다. 이곳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크게 발생한 지역이자, 지금까지도 다양한 기억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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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티 한이 님의 연구는 총 5가지의 질문을 따라갑니다.

  1. 빈딘성은 국내 차원에서 어떻게 기억정치를 실행하는가?
  2. 빈딘성은 자매결연 외교의 틀 안에서 어떻게 기억정치를 실행하는가?
  3. 해당 성은 기억을 둘러싼 경합에서 어떠한 도구들을 활용하는가?
  4.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국가 차원의 기억정치와 어떻게 비교되며, 이 사안에 대한 국가의 결정이나 행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5. 빈딘성의 기억정치는 한·베 간 초국가적 화해와 협력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에 한이 님은 우선 빈딘성 내 각 지역의 주요 추모 시설들을 추적했습니다. 빈안학살 위령제단(15개 지점, 1,004명 희생), 고자이 마을 위령비(1시간 동안 380명 희생), 한글 비문이 있는 쯔엉탄 마을 위령관낌따이 마을 집단 묘지와 증오비·위령관그리고 빈딘성 종합박물관까지, 다양한 기억의 장소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중에는 과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 의지로 세웠던 증오비(bia căm thù)가 지금의 추모비(bia tưởng niệm)로 바뀌며 보다 중립적인 표현으로 변화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각 시설물의 한베평화재단 아카이브 기록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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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 15개 지점 학살 중 하나인 고자이 학살 추모지 설명 장면


또한 지역사회에서 위령비를 중심으로 한 역사 체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증언을 들으며 전쟁 반대 의식을 배우는 방식입니다. 한국 시민사회와의 교류 속에서 피해생존자와 유가족의 증언이 이어지는 것 역시 중요한 기억 활동으로 꼽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맹호 사단 참전 용사의 제안으로 1997년 한국군 피해 지역 중에서 최초로 베트남 빈딘성의 뀌년시와 용산구가 자체적으로 자매 결연을 맺은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이는 문화 교류 및 의료 지원이 이어졌고, 서로의 이름을 딴 거리를 조성해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경제적 효과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찐 티 한이 님은 이러한 빈딘성의 자발적인 기억 활동 사례는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국가 간 공식 외교의 공백을 메우며 기억 활동의 자율적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라고 말합니다. 또한 기억 활동은 국가의 독점적 권리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피해자, 시민사회가 아픈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직면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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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님은 이러한 움직임이 베트남 중앙정부의 태도에도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학살 사건이 문제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직접적인 실천에는 소극적이던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기억 활동을 묵시적으로 승인해왔고, 일부 추모비를 국가급 역사 유적으로 공식 인정해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또한 국가 미디어인 VTV 등 주요 언론이 2023년 학살 피해자의 한국 정부 상대 소송 판결을 적극 보도하며, 공식 외교 채널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역사 정의의 흐름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발제가 끝난 뒤에는 옥수수다의 꽃인 대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오갔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증오비가 위령비로 변화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었습니다. 최근 빈안 학살이 60주기를 앞두고 추도시설이 대대적으로 변화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었습니다. 이날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경험과 시선 속에서 다양한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약 1시간에 걸친 대화 속에서 한 가지 공통된 문제의식이 분명해졌습니다. 기억이 제도화될수록, 그것은 점점 더 부드럽고 무난한 형태로 정리되며, 개인의 구체적이고 거친 기억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마을 주민과 피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이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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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찐 티 한이 님은 ‘자신은 베트남 사람이라서 이 연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며 ‘덕분에 베트남에도 전쟁 당시 있었던 사건들이 많이 알려졌고, 한국 시민 분들의 활동에 위로를 받았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옥수수다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쟁의 기억은 국가의 전유물일까요? 아니면 역사에 책임을 묻는 당사자의 기억, 공동체의 집단기억일까요? 우리는 어떠한 기억의 연대를 꿈꿀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 빈딘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결국 이 질문은 한국 사회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베트남전쟁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용산의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는 여전히 전쟁의 정당성과 성과 중심의 서사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와 같은 ‘불편한’ 기억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은 선택되는 순간, 동시에 지워지기도 합니다. 국가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기억이 침묵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 기억이 다시 질문이 되어 역사에 책임을 묻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이 기록하고, 더 오래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옥수수다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찐 티 한이 님은 현재 대학원을 수료하고 논문을 작성 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논문이 발표된다면 다시금 찐 티 한이 님을 모시고 이번 옥수수다가 남긴 질문들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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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옥수수다는 7월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몇 개월 뒤 다시 한번 재미난 이야기 모임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옥수수다]는 이야기와 생각을 공유하는 커먼즈 모임입니다. 강연, 발표, 집담회 등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의지가 있어 목소리를 공유하고 싶은 분, 혼자서는 버거워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분, 베트남전쟁을 포함한 인권, 젠더, 반전, 생명, 평화 이슈에 관심있는 분들을 [옥수수다]의 주인공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정리: 두부

사진: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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