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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평화기행 후기] 환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 김지혜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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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행 후기]


환대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김지혜(평화기행 참가자)


아픈 아이를 키운 덕분에 안녕이라는 안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안녕한지, 이웃은 안녕한지, 헤아리고 돌보는 마음을 조금씩 배운 것 같습니다.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 베트남전쟁 파병 60주년, 베트남 민간인 학살 60주기를 맞으며 역사 앞에 우리는 안녕한지 나누고 싶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에 드문드문 참여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이 수없이 이어졌음에도 사죄와 진실규명은커녕 역사 왜곡이 심해지고 거짓과 혐오가 판치는 현장을 목격하며,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한 베트남을 더 이상 묻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의 증언자 응우옌티탄과의 만남


2025년 한베평화재단에서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 활동가를 모집했는데, 다양한 시민이 모여 지난 4월부터 “탄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를 증언한 생존자 퐁니마을 응우옌티탄(Nguyễn Thị Thanh)과 하미마을 응우옌티탄(동명이인)의 이름을 땄습니다. 대한민국 베트남전쟁 공식 기억에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의 모임이 탄탄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전쟁기념관은 내외국인 누적 관람객 300만 명이 넘은 곳입니다. “탄탄이” 활동을 짧게 전해보자면,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의 전시 내용 중 거짓 내용에 대해 쪽지를 붙이거나 작은 팻말로 직접행동을 하고, 국방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전쟁기념관과 국방부, 외교부에 전시 문제점에 대한 민원을 넣습니다. 시민의 저항 활동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 SNS를 통해 알리고 나눕니다. 이런 탄탄이 활동을 미지근하게 함께하던 중 저에게 불씨를 지핀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응우옌티탄 두 분이 한국에 오셨습니다. 퐁니·퐁넛 학살사건 국가배상 소송에서 2023년 2월 1심, 2025년 1월 2심 모두 승소하고 대법원판결만 남은 시기에, 정부가 판결을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책임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함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6월 18일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6월 초부터 긴장되어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직접 수행하는 활동가도 아니면서 6일의 일정 중 3일을 멀리서, 가까이서 뵈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리는 용기 있는 여성을 만난다는 설렘, 가해국의 시민으로 어떻게 눈을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의 복잡한 심경으로 두 분과의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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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두 응우옌티탄과 함께 한 베트남 다큐 <평화로 가는 길> GV


베트남 다큐 <평화로 가는 길> GV상영회와 베트남전 피해생존자, 참전군인, 시민이 함께하는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장에서 만난 응우옌티탄은 긴장 속에서도 당당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선명한 언어로 진실을 전하기 위해 애쓰시는 눈빛, 몸짓이 언어를 넘어 제 안에 들어왔습니다. 고통의 연대를 넘어 평화로 가는 길에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전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참전군인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도 이어졌습니다. 참전군인이었던 시민운동가 김영만 님의 고백은, 진실만이 우리를 화해로 희망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고 정부가 진상규명의 책임을 져야 피해자와 참전군인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증언을 듣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다시는 그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나를 중심으로 엮어지던 세상이 나를 넘어 타인의 시간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시니, 초대와 연결로 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두 분을 직접 뵌 후로 사진과 영상, 기사로는 전달될 수 없었던 인간의 존엄함을 느끼게 되어 제 마음에 응우옌티탄의 방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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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의 채명신 장군 훈령 전시 앞에서 항의 피켓팅을 한 두 응우옌티탄


탄탄이는 응우옌티탄과 함께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두 분을 모시고 해외파병실을 함께 보니 거짓이 너무나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혼자 볼 때와는 다르게 온몸의 세포가 다 쪼그라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응우옌티탄은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얼굴로 전시실을 보셨습니다. 본인들이 경험한 베트남전쟁의 참상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지금의 세대가 이 자료들을 보면 ‘파병도 괜찮구나’라고 느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라는 채명신 훈령 문구를 따로 크게 떼어놓은 푯말 앞에서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내가 겪은 사실과 다른 기억이 기록된 국가 역사 기록을 마주할 때, 개인은 얼마나 파편화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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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다크투어를 마치고 탄탄이와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는 두 탄 님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눌 때 두 분이 건네주던 진실 어린 눈빛과 미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쓰다듬고 안아주시는 따뜻함과 다정함에, 아픈 역사를 거슬러 마주한 사람의 구체적 만남이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난 후, 응우옌티탄이 사는 곳에서 뵙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버렸습니다.


진실과의 대면, 베트남 평화기행


새해,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 28번째 브이(V)로드에 참여하게 되어, 아무래도 관련 자료들을 더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피하고 싶었던 사진이나 영상들을 마주하게 되니 더 이상 마음을 비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꿈을 꾸었습니다. 학살이 지나간 곳에서 찢긴 몸들을 진흙으로 붙이려 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죄악의 역사가 어떤 이야기로 쓰이길 원하나?’ 

‘이야기 속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평화기행 속 시간이 쌓이면서 막막했던 질문에 실마리를 찾아갔습니다. 뿌연 물속에서 작은 빛이 자꾸 선명해졌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피해생존자들의 눈빛과 목소리와 손길에서, 곁에서 함께하는 조력자들의 태도에서,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의 자유롭고 겸손한 몸짓에서, 피해생존자들의 유일한 기쁨인 손주들의 맑게 열린 모습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봤을 땅, 물, 나무, 그 모든 자연에서 그 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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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녓 학살을 지켜본 야유나무 아래 마련된 제단에 참배하고 있는 김지혜


퐁니마을에서 다시 만난 응우옌티탄은 한국에서보다 더 편안해 보였고, 학살 피해생존자로 증언하는 모습에서 진실을 향한 열망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삼촌인 응우옌득쩌이도 목격자로서 함께 만나주셨는데, 작은 몸에서 나오는 짱짱한 목소리와 자연을 닮은 얼굴이 학살을 목격한 자의 슬픔을 그대로 전해주어 눈물만 흘렀습니다. 밀라이학살 박물관에서는 피해생존자이며 전 박물관장인 팜탄콩을 만나 전쟁과 학살을 겪고 어떻게 통합적 역사관을 갖게 되었는지 깊은 성찰을 통해 헤아려보았습니다. 


아름다워서 더 마음 아팠던 카인럼 마을


한국인 방문객을 맞는 게 처음이었다는 카인럼마을이 마음 깊이 남습니다. 밀라이학살에 가려져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마을입니다. 2019년 4월, 베트남 피해생존자와 유가족들 103인이 한국의 청와대에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카인럼마을에서는 응오반끼엣을 비롯한 네 명이 청원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청원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카인럼학살 위령비와 희생자 가족묘를 참배하고 피해생존자 응오반끼엣을 만나기 위해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짧은 일정 속 목적지에 가기 위해 대형 버스를 이용했는데, 길이 좁아서 걸어들어갔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마을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마을 문턱,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손 흔들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들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와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에 힘입어 말을 걸며 장난도 치자 자전거 뒷자리를 선뜻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들녘을 끼고 벅찬 마음으로 열한 살 아이의 허리를 꼭 안고 저를 맡겼습니다. 너무나 작고 얇은 몸에 놀라고, 안전하게 태워주는 자전거 운행 실력에 놀라며, 카인럼마을에서 희생된 수많은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싼, 직파한 벼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마을 풍경을 담은 논물이 찰랑거리는 곳. 순수한 아이들의 깨끗한 웃음과 마을 사람들의 부지런한 노동을 곁에 두고 위령비를 향해 걸어가는 마음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함께한 기행단의 얼굴이 마을 풍경과 함께 빛나서 ‘우리에게 이런 얼굴이 있구나’라고 느꼈던 곳입니다. 참전군인들도 마을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며,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학살이 자행될 수 있었는지 쭈뼛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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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행 참가자들과 함께 위령비 참배를 하고 있는 카인럼 마을 아이들


반짝이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생명을 짓밟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는데, 응오반끼엣의 증언 중 더 믿기 어려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군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일흔 살인 응오반끼엣은 60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오신 걸까요. 고통스럽고 가난하고 척박한 삶에서 어떻게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셨을까요.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잡아주던 손길의 미세한 떨림에서 진실을 향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빚을 빛으로 바꿔준 하미마을의 환대


하미마을에서는 응우옌티탄과 함께 위령비 참배를 하고 다낭외대 한국학과 학생과 함께 피해자·유가족 개별 방문을 했습니다. 우리 조는 몇 해 전 증언을 시작한 응우옌티본과 그의 딸과 손녀를 만났습니다. 작은 집안에 모셔져 있는 희생된 가족분들께 분향한 후, 짧게나마 고통의 시간을 듣고 현재의 안부도 나누었습니다. 응우옌티본은 힘겹게 증언했고, 이를 통역해주는 분도 울면서 증언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응우옌티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응우옌티본은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줄 때 치유가 되는 것 같다 하셨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전하며 우리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셨습니다. 함께 사는 딸과 손녀도 웃음을 띠며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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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 마을의 응우옌티본 그리고 그의 가족과 함께 한 따스했던 시간


마음의 빚을 빛으로 바꿔준 환대는 생명으로 향하게 하고 싶은 마음을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내어준 자리가 서로 돌보고 함께 돌보는 환대의 자리라는 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한때는 한국 사람만 봐도 무서웠던 분들이 어떻게 증오를 넘어 환대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잔혹했던 만남을 아름다운 만남으로 변화시킨 사람들과 시간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피해생존자들을 만나기까지 모든 시작에 증언이 있었습니다. 증언을 듣고, 알리고, 함께한 조력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아이들의 힘을 확인하며 그 성장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고통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겪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의 삶을 보는 아이들이 진실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길에 함께하는 것이 국가 사과와 진실규명, 승소와 함께 생명을 되살리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살 피해자 마을에서 충만하게 받은 환대로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환대를 할 권리도 있는 사람이니, 내 마음에 누구든 앉을 수 있는 빈자리를 마련해놓아야겠다는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사진 | 한베평화재단


* 이 글은 <산위의마을> 46호(예수살이공동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