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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스케치] 워크숍 ‘피해자 애도하기’ - 베트남전쟁이 궁금한 책모임을 위한 가이드북 2부 워크숍(9/5)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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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궁금한 책모임을 위한 가이드북 2부 워크숍


[스케치] 워크숍 ‘피해자 애도하기’


9월에는 베트남전쟁이 궁금한 책모임을 위한 가이드북의 2부에 소개된 워크숍 중 활동 2 <피해자 애도하기>를 진행해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만들면서도 꽤 긴 고민을 하면서 수정을 했습니다. 그 고민 속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난감함을 나누고 싶어서 한여름부터 준비를 해서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0월 초의 긴 추석연휴라 단체들의 가을 행사가 꽤나 많이 늘어났더군요. 개강 초라는 악재도 겹쳐서 지난 워크숍에 비해서는 적은 인원이 신청했고 심지어 불참자도 많아 4명의 참가자와 재단 활동가들과 단촐하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기억투쟁을 하고 있는 단체 활동가거나 활동적인 회원들이라 정말 깊이 있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 활동 목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전시성폭력 등의 전쟁범죄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슬픔과 추모의 마음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피해자 입장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신 전해보면서 기억하고 기념하기.



삶의 부재와 파괴에 대해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 00명으로만 밝혀지는 것에 대한 저항을 하고 싶었습니다.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 너머의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가해국의 국민임을 인정하지만 내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 이외의 것들이 나오길 원했습니다. 가슴 속 여러가지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듯이 피해자 000명의 이름이라도 불러주길 원했습니다.

 

이름을 넘어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기를 원했습니다. 가이드북 만들기를 준비하면서 제일 처음 애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리라 결심하고는 달마다 수정을 해보았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왜곡하지 않기를, 내 이웃처럼 이들을 만나보길 바랐기에 자문도 구했습니다.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책과 기사와 간신히 남은 자료들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름만 남은 이들에게 진짜가 아니더라도 목소리를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나랑 똑같이 살아있었던 존재로 만날 수 있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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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전 전시된 유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 과거의 어떤 피해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이웃이었던 사람, 아주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으로 만나보길 원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행히 재단에 널리 알려달라며 각각의 사연이 담긴 유품 등을 보내주신 분들이 있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피해자들의 삶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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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넛 학살 희생자 응우옌티껀의 신분증


찐트와 찐티쓰의 어머니. 키는 1미터 50센티미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 

상냥하고 착한 사람으로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냄. 이른 새벽부터 일을 나가 온종일 논일, 밭일 등을 했고 

캄캄한 밤이 되어 집에 올 정도로 쉴 틈 없는 하루를 보냄. 다낭에 채소를 내다 팔기도 했음. 

5명의 자녀가 있고 아버지가 아이들을 꾸짖는 편이라면 어머니 껀은 자상하게 아이들을 보살펴줌.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지어 입은 적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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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팜티호아의 1969년 사진과 목발

 

하미학살 피해로 독일 의료선에서 4~5개월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퇴원 후 다낭에 머물 때 찍은 사진과 

학살 피해 당시 수류탄 파편상으로 두 발목을 잃고 사용했던 목발. 

아들 응우옌럽은 어머니 팜티호아를 부지런하고 유쾌한 농담을 잘했던 사람으로 기억. 

2013년 6월 팜티호아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 응우옌럽은 어머니의 삶이 

한국 시민들에게 보다 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품을 한베평화재단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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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호아 학살 유가족 응우옌니엠의 일기장 그리고 아내 도안티지엡의 초상화와 위패

 

응우옌니엠(1933년생)과 도안티지엡(1940년생)은 빈호아사 2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4명의 아이를 두었다. 아내 지엡의 키는 보통이었고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평범한 체격이었으며 

피부가 하얀 수려한 외모의 여성이었다. 아내는 주로 집안일과 논밭일 등을 하며 아이들을 돌봤다. 

당시 집이 너무 가난하여 부부는 항상 약간의 쌀밥과 구황작물 콰이미에 베트남식 젓갈 ‘느억맘’으로 끼니를 겨우 해결하곤 했다. 

설이 되어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새 옷 한 벌 지을 수 없었고 옷이 다 찢어져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을 지경이 되어야 

새 옷을 지어 입을 정도로 살림이 궁핍하고 힘겨웠다.




작은 전시이지만 묵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책과 기사들 등을 통해 피해자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은 내 가족의 평안을 바라듯, 내 이웃의 평안을 바라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아래의 질문을 참고 삼아 피해자가 보내는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피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질문이 어렵다면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먼저 떠올려 본 후에 그런 삶을 살고 싶었던 피해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기)

피해자가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피해자가 가해자/가해 집단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피해자가 현재의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쓰기 전에는 피해자의 세세한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쉽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쓰기 시작하자 손에서 울컥울컥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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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이런저런 상상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공통점은 “왜?”라는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해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대체 왜 그랬냐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봤다면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질문을 고치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냐고 묻고 싶다.”

 

“고약한 사람들은 풀밭도, 동네 사람도, 나도 죽였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 

그들은 물소를 안 키워봐서 그런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러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다”

 

“내 아이들은 왜 죽여야 했습니까? 내 딸 응우옌티오안은 왜 죽어야 했나요? 

왜 내 딸 응우옌티홍은 살해당해야 했나요? 갓 태어난 내 아이 응우옌반중은 왜 살아남지 못했나요? 

나는 왜 죽어야 했나요? 나의 남편 응우옌니엠은 왜 아직 이 질문들에 대해 어떠한 답을 듣지 못한 채로 시를 쓰고 있나요? 

나는 왜 지금 내 맏아들 응우옌타인뚜언의 이름을 불러줄 수 없나요?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언젠가?”

 

“묻고 싶다. 나를 살해할 때 당신의 손끝은 떨렸을까.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당신들의 나이가 팔순이라면, 당신들은 그날 나를 죽인 기억을 잊고 살아있을까. 

만약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들이 나를 기억하는 마음은 고통일까, 불편함일까, 끔찍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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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토해내보기도 하고, 다른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당신들이 부끄러운 존재가 돼서 기쁘다. 이건 나와 우리의 복수다. 

당신들이라는 수치는 다시는 나와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전쟁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될 것이다. 이런 교훈을 소중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널리 퍼뜨려줬으면 좋겠다. 수치를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

 

“겁에 질려 어디론가 뛰어가면서도 젖을 먹는 아이가 깨지 않기를 바랬지요.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내 아이가 깨지 말고 깊이 잠들기를 바랬어요. 

내 아이만이라도 살아서 다행입니다.”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도 여러가지 감정들이 오가서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당황스러움과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과 두려움과 애타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난감한 자리였습니다. 마치 피해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난감했던 때와 겹쳐졌습니다. 고작 입에서 나오는 말은 “미안합니다” 혹은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 뒤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감정과 사고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상황에 대해 안타깝고 피해들이 너무 아프고 슬프고 분노하기도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어느 정도 이 아픔에 대해 책임을 나누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습니다. 난감함 뒤의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감정과 생각들은 우리의 바램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을 누리고픈 바램, 삶을 이어가고픈 바램,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픈 바램 등이요.



“제게도 행복했던 이상과 제가 지키려했던 꿈과 화목했던 가족과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요한 풀밭에서 맛있는 풀을 찾아 천천히 먹는 걸 좋아했다. 동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살아가면서 그나마 행복을 느끼는 건 아이들의 웃음과 재롱이에요. 

너무나 사랑스럽지요. 고된 농사일로 지쳤을 때도 아이들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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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편지를 쓰고 낭독을 하는 시간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진 존재로 만나는 경험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편안하게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두렵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가 감히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을지 저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상상한다는 건 타인을 나처럼 살아있는 존재로 만나게 해줍니다. 기꺼이 감내 할만한 불편함과 난감함을 통해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 | 아침

사진 | 아침, 짜노, 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