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인 활동

평화교육[평화기행 후기] 이미 잊은 자의 글쓰기 / 이예본

2025-09-25
조회수 206


이미 잊은 자의 글쓰기

 

2025 여름 평화기행 참여자 이예본

 

  

잃어버린 무언가를 베트남에서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화기행에 신청했다.

 

신청할 때 내게는 호기로운 목표가 있었다. 신작 구상, 리서치, 결국은 완성까지 이르겠다는 고지. 당시에 내가 ‘잃어버렸다’라고 여긴 건 베트남전쟁 (혹은 미국 전쟁)에 대한 정보와 객관적인 사실, 현장성, 그리고 피해자들의 증언 같은 것들이었다. 그건 베트남에 가면, 평화기행에 참여만 하면 금세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도 전에 기대에 부풀었다. 이야기들을 모으고, 나름대로 여과하여 작품에 녹여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가늠하며 무슨 기법이라도 되는 듯 이전 평화기행의 기록과 자료들을 훑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내가 기대하던 바가 철저하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기행을 준비하며 펼친 두 권의 책1)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무언가 기묘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아주 작은 풀을 뽑았는데, 그 뿌리가 온 밭에 걸쳐있어 아무리 힘을 주어 당기고 뽑아내어도 끝을 볼 수 없는 느낌. 결국 밭을 다 뒤엎어야 하는 상황처럼. 이 거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까지 숨어있었을까. 어떻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땅 위에 올라있는 작은 풀 하나를 보고 그 식물의 전부를 아는 듯이 굴었던 부끄러운 나의 전신과 함께. 나는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했는데 - 정확하게는 전쟁 후, 몇 세대가 지나 전쟁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젊은 세대가, 하지만 지구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 중인 지금 ‘어떤 전쟁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전쟁으로부터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 이제는 ‘전쟁’이라는 두 글자가 담고 있는 무량한 층층이 두려웠다.


할 수만 있다면, 국가는 기억과 망각을 모두 계발하고 독점하려 한다. 시민들에게 그들 국가의 기억만을 남기고 다른 기억은 잊어버리도록 독려한다. 전쟁에 결정적 기여를 할 민족주의와 인종, 민족, 종교의 공동체 안에서만 순환하는 자기중심적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기억만 남기고 타자의 기억을 잊게 하는 이러한 지배적 논리의 힘이 너무 강해서 이미 소외된 사람들조차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타자를 잊는다.2)


그러니까 나는, 이미 다 잊은 채 감히 무언가를 쓰려 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와 목적을, 어쩌면 쓰려고 했던 이야기까지도 되돌아봐야 했다. 솔직히 분수에 맞지도 않는 걸 건드렸네, 싶어서 후회스러웠다.

 

 

평화기행 첫날과 둘째 날에 걸쳐 박물관과 유적지를 탐방했다. 초반 이틀은 ‘읽는’ 날이었다. 증적된 기록들, 추모비, 종군기자들의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고 해석했다. 이후 셋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는 읽으며 ‘듣는’ 일정으로, 생존자들과의 대담과 참배 일정을 소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마지막 날 조별로 유가족을 방문한 일이다. 내가 속한 ‘땅’ 조가 만난 부이티마이 아주머니는 하미마을 학살 당시 고작 1살이었고, 전쟁고아로 살아남아 일생을 버텼다. 마이 아주머니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인솔 활동가 없이 방문해서가 아니다. 낯선 그의 집에서, 그와 그의 남편 탄 아저씨가 우려낸 따뜻한 차를 마시며 보낸 사십여 분의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고,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집 안에 마련된 작은 제단은 마이 아주머니의 아버지를 모시는 곳이었는데, 아주머니는 선뜻 우리에게 향을 피워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마이 아주머니의 맞이가, 탄 아저씨가 쥐여준 향이 꼭 그들의 곁을 나눠 받은 것처럼 느껴졌고 내게도 그들의 자리가 마련되는 기분이었다. 얇고 옅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짧고 작은 순간이 연이 되듯이.

 

 

사람의 인연이, 누군가 죽은 뒤에도 작동하는 것이라면 나는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한국군은 물론 학살 피해자와도 연결되어 있을 테다. 평화기행 일정을 수행하고, 마이 아주머니를 만나고, 기록을 읽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만나 또 내가 모르던 것들을 직면하면서 조금씩 작은 범위로, 조금 더 사소한 단어로 다짐을 고쳐 썼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가까우며 미미한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기억하기. 라거나

잊지 않기. 라든가

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애도하기. 와 같은 행동들로부터.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걸 찾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되찾고 싶던 것이 단순히 명백한 사실, 현장성, 증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실마리는 찾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싶다가도…. 복잡한 마음에 더 큰 결과를 바라고 싶어질 때마다 보잘것없는 말로 쓰인 나의 다짐을 되새긴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전심으로 행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을 알고 있다. 쉽게 쓰지 않기, 머무르며 쓰기. 즉 잊은 자로서의 글쓰기.

평화기행이 끝나고 한국에서의 일상이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해진 지금, 다시 행하는 날들을 보내려 한다. 이 마음이 끝이 아닌 시작이기를 바라며.


1) 한겨레 21 고경태 기자의 『1968 2월 12일 (베트남 퐁니 • 퐁넛 학살 그리고 세계)』 과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타인 응우옌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학살을 다루는 정석적이고 치밀한 책이다.

2)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엣 타인 응우옌, 24p.


글, 사진 | 이예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