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비꽝남성 하미학살 위령비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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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 학살 위령비

▶ 1968년 2월 24일(양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 마을에서 일어난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135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2001년 한국의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지원으로 위령비가 건립되었다. 주민들이 위령비 뒷면에 학살 관련 내용이 포함된 비문을 넣었지만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비문을 연꽃 그림으로 덮고 만다.

▶ 이재갑 작가, 2012년 8월 7일 촬영

꽝남성 하미학살 희생자, 생존자 명단


▶ 비고: 하미 위령비 앞에는 학살 피해일이 음력 1968년 1월 24일로 적혀 있고 양력으로는 1968년 2월 22일이다. 그러나 다수의 유가족과 인민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정확한 사건 발생일은 음력 1968년 1월 26일로 양력으로는 1968년 2월 24일이다. 위령비에 적힌 날짜는 학살 희생자 집단제사일이다. 위령비 건립 과정에서 집단제사일을 적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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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 위령비 뒷면의 비문


▶ 이하 비문 내용 번역

역사책은 기록하기를,

예로부터 디엔즈엉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신성한 기운을 머금은 락롱꿘과 어우꺼의 자손들이 호안선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땅을 넓혀 500년 전 이곳에 나라를 세웠다.  

백성들은 하미, 하꽝, 하방, 하록, 지아록 등에 마을을 세웠으며 본디 어질고 선한 그들은 평화롭게 아이를낳아 키우며 쟁기질과 괭이질로 땅을 일구고 채소를 가꾸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다. 하늘이 고요하고 바다가 잔잔하며 땅이 평온할 때까지는.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적들이 사납게 들이닥쳐 땅에 풍파를 일으켰다. 주민들을 한곳에모아 전략촌을 세우고 강제로 마을과 고향을 버리게 하였으니 칼로 자르듯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에 주민들은 땅을 잃고 강을 잃고 바다를 잃었으며 농사를 짓고 강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삶을 잃었다.

잔악함이여,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이여.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구르고 피가 흘러넘치고 끔찍한 전쟁으로 물야자나무 숲은 마른 머리카락이 빠지듯 산산이 흩어지고 강도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몸을 구부리고 밤새 흘린눈물이 고여 못을 이루었다.

단두대에 잘린 머리가 굴러다니는 광경이 다시 펼쳐지고 사원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으며 하지아(HA GIA) 숲은 마른 뼈만 하얗게 남았고 캐롱(KHE LONG) 선착장에는 주검이 더미를 이루었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 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 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친 것보다도 더 참혹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집 문턱에는 늙은 어머니와 병든 아버지들이 떼로 쓰러져 있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들이 끙끙대며 신음하니 또 얼마나 공포스럽던가. 허둥지둥 시체를 쌓아 올리는데 악의 탄환이 관통하지 않은 시신이 없었다.  시체에는 여전히 마른 피가 고여 있고 아기들은 어머니의 배에 기어 올라 차갑게 시든 젖을 찾았다.  

입과 턱이 날아간 아이는 목이 타는 듯 말라도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또 하나의 참극이 더해졌으니 탱크의 강철 바퀴가 무덤들을 짓뭉갠 것이다.

황혼이 서린 땅에는 풀이 시들고 뼈들은 말라가고 원혼이라도 나타난듯 구름은 푸른 하늘에 울부짖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하늘은 어두울 때도 있으나 밝을 때도 있어 25년 간 평화를 일구어 고향에 평온이 찾아왔다. 디엔즈엉 땅에도단  감자와 푸른 벼가 돌아와 풍년을 이루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와 새우가 넘치며 당의 지도 아래 주민들은 황량한 벌판을 개척했다. 그 옛날의 전장은 이제 고통이 수그러들고 과거 우리에게 원한을 불러일으키고슬픔을 안긴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사과를 하였다. 그리하여 용서를 바탕으로 비석을 세우니 인의로써 고향의 발전과 협력의 길을 열어 갈 것이다.

모래사장과 포플러 나무들이 하미 학살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할 것이다.

한 줄기 향이 피어올라 한 맺힌 하늘에 퍼지니 저세상에서는 안식을 누리소서
천 년의 구름이여,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2000년 8월 경진년 가을
디엔즈엉 사의 당과 정부 그리고 인민들이 바칩니다


* 참고: 비문 집필자 작가 응우옌흐우동(Nguyễn Hữu Đổ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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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비 뒷편의 비문을 덮은 연꽃 그림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