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딘성 안년시 년퐁사 낌따이촌 낌따이학살 집단묘지
▶ 1966년 1월 9일(양력) 빈딘성 안년현 년퐁사 낌따이촌에서 일어난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37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마을을 수색한 한국군은 43명의 주민을 포박하여 팜딘쩌우 할아버지의 집에 가둔 후 수류탄을 던지고 집을 불태웠다. 희생자 대부분이 노인, 여성, 아이였으며 6명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학살 피해 이후 신원이 확인된 시신들을 유가족들이 별도로 매장을 하였는데 그렇지 못한 시신들은 팜딘쩌우 할아버지의 집터에 그대로 묻혔다. 전쟁이 끝난 후 1975-1976년 경에 마을 주민들이 사건 장소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봉문을 만들어 집단묘지를 조성했고 1985년에는 집단묘지 위에 낌따이학살 증오비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2016년에 학살 50주기를 맞아 낌따이학살 위령관을 조성하면서 증오비를 철거하고 집단묘지를 되살렸다.
▶ 자료 출처: 낌따이 학살 사건 유적 자료집(2001년), 낌따이학살 유가족 까오반민 인터뷰(2021년 3월 7일)
▶ 2019년 5월 5일, 정태환 촬영
▶ 빈딘성 안년시 년퐁사 낌따이촌 낌따이학살 집단묘지
▶ 1966년 1월 9일(양력) 빈딘성 안년현 년퐁사 낌따이촌에서 일어난 한국군 민간인 학살로 37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마을을 수색한 한국군은 43명의 주민을 포박하여 팜딘쩌우 할아버지의 집에 가둔 후 수류탄을 던지고 집을 불태웠다. 희생자 대부분이 노인, 여성, 아이였으며 6명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학살 피해 이후 신원이 확인된 시신들을 유가족들이 별도로 매장을 하였는데 그렇지 못한 시신들은 팜딘쩌우 할아버지의 집터에 그대로 묻혔다. 전쟁이 끝난 후 1975-1976년 경에 마을 주민들이 사건 장소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봉문을 만들어 집단묘지를 조성했고 1985년에는 집단묘지 위에 낌따이학살 증오비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2016년에 학살 50주기를 맞아 낌따이학살 위령관을 조성하면서 증오비를 철거하고 집단묘지를 되살렸다.
▶ 자료 출처: 낌따이 학살 사건 유적 자료집(2001년), 낌따이학살 유가족 까오반민 인터뷰(2021년 3월 7일)
▶ 2019년 5월 5일, 정태환 촬영